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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7 | [문화저널]
송만규의 섬진강 굽이굽이……
김미선 / 전북대 미술학과에 출강하고 있으며, 서울 청담동 <갤러리 서화>에서 (2004-08-09 10:47:59)
북송(北宋)의 유명한 서화가(書畵家)이자 비평가였던 미불(米?, 1051~1107)은 ‘미점산수(米點山水)’라는 독특한 기법을 창안하여 천하에 이름을 날렸고, 훗날 프랑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인상파(印象派)의 비조(鼻祖)를 이루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미불의 산수뿐만 아니라 20세기 현대미술을 낳았던 여러 요인 중 하나인 일본의 목판화 ‘우키요에(浮世繪)’와 동양(東洋)의 서체(書體)적 화법은 서양(西洋) 미술사에 있어서 가공할 만한 충격과 업적을 남겼던 사례도 널리 알려진 일이다. 당시 유럽의 화가들은 그들이 그렇게 애타게 갈구하고 닮게 모사하려했던 자연 모방(模倣)의 문제에 있어서……그들 최고의 발견이라고 생각했던……원근법(遠近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도 훌륭하게 표현되는 무위(無違)의 풍경과 이국적인 화법에 단순한 유행을 넘어 경이(驚異)까지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그림에서 우리와 같은 무위자연의 향수를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쉽게도 유럽의 화가들은 가장 중요한 동양인의 정서(精書), 그리고 문인화(文人畵)의 깊은 정신에 대해서는 문외한(門外漢)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야만인이었던 것이다. 필자가 송만규의 글을 쓰면서 서두를 이렇듯 장황하게 서양미술사에서의 비화(?)를 들먹이며 시작 한 이유는, 직접 섬진강에 가보지 않았던들, 잊고 있었던 섬진강 물줄기의 곳곳이 그 골짜기와 강줄기를 품어보고 사랑하지 않았던들, 필자도 송만규의 자연에서 얻은 감동의 10분지 일도 얻지 못했을 바바리안(barbarian)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송만규의 이번 전시는 2001년 ‘언강 끝에서 꽃을 줍다’展 이후로 3년 만에 선보이는 4번째 개인전으로, 서울 공평아트센터와 전주 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순회를 통해 발표되었다. 필자는 송만규를 전주에서 처음 만났다. 작가를 본 첫 느낌은 눈동자가 참 맑아 굳이 어디에 빗대자면, ‘호기심 어린 소년의 사심 없는 촉촉한 눈망울을 갖고 있는 사람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작, 작가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는 그가 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 민중미술의 정치적 참여 경력과 미술을 생업(生業)으로 하는 작가에게 무수히 많았을 삶의 고충(苦衷)만을 막연히 짐작할 뿐 이었고, 아무런 대비 없이 송만규의 너무 맑아서 서글픈 섬진강을 대면한 것이다. 이번 전시의 중요한 화두(話頭)는 차분하고도 강렬하게 다가오는 서성성(抒情性)이다. 화폭에 만연한 서정성은 작가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왔던 시인 김용택의 전시에 부쳐진 시(詩)에서 너무나 살갑게 잘 표현되고 있다. 그 중 한 구절을 빌어 이야기 하자면, 송만규의 화폭에는 강이 흐르고, 달이 뜨고, 별이 질 때도 강이 흐르며, 새가 울고, 농부들의 신 새벽 잔기침 소리, 긴 밤 새둥지에서 작은 새가 뒤채는 소리, 나뭇잎이 조용히 지는 소리, 산을 넘어가는 밤바람 소리, 강물을 차며 튀어 오르는 고기들의 흰 번쩍임! 그리고, 눈이 날리고, 얼었던 강이 쩍 하는 얼음 깨지는 소리와 함께 한여름 후두둑 빗소리가 들린다. 이렇듯 거울같이 맑고 고요한 수면(水面)은 새벽강의 어스름한 여명과 물안개로 극대화되면서 조용하고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담조(淡調)의 청아한 시적(詩的) 분위기를 자아낸다. 섬진강 산수의 10년 결산으로 제작된 이번 전시를 이전(以前) 전시와 비교하면, 이전에는 섬진강 발원지 진안부터 하동 광양까지의 섬진강과 주변 인물들의 풍습을 담은 기행산수화전(紀行山水畵展)의 양상이라면, 이번 전시는 자신의 작업실 주변에서 매일 산책하며 바라보았던 일상(日常)을 옮겨놓은 섬진강의 자연 그 자체를 그리고 있다. 민중미술에서 대형걸개 그림을 그렸던 강인한 행동력은 이번 전시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데, 그것은 길긴 작품형식의 ‘새벽강1(93×2100cm)’, ‘언강(104×2400cm)’에서 이다. 이 작품들은 길이 20m 이상의 대작(大作)으로, 실경(實景)에 입각한 부분 스케치 수백 장(丈)을 기반으로 해서 마치 이른 아침 강을 따라 걸어가듯 섬진강의 여정풍경을 펼쳐 보였다. “매일 작업실 부근의 강변 4km를 산책하며 자연의 고요와 맑음에서 감동을 받는다”는 작가의 진솔한 자연주의적 심상은 물 버들이 드리운 소품(小品)부터 대형화폭에 굽이굽이 자리 잡은 대자연의 섬진강에 까지 그의 화폭에 무르녹아 잔잔히 흐르고 있다. 작가는 오직 섬진강의 사계(四季)를 주제로 단순한 사생(寫生)이나 사색(思索)에 머무르는 것을 경계하며, 옛 선비들의 추상(秋霜)과 같은 진경산수(眞景山水)의 투철한 관찰력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소박한 듯 조용히 담소(談笑)를 나누는가 하면 빠르게 행동하는 필력(筆力)이 있고, 정적(靜的)인 화풍으로 전통을 고수하는가 하면 화면은 무섭게 진취적임을 간파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준법에 있어서 철저하게 전형적 수묵화 기법에 준하여 작업에 임하면서도 투철한 프로의식에 입각해서 현대적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을 기하였고, 맑고 고요한 화폭은 섬진강 대자연의 내적울림에 귀 기울이면서도 작가의 치열한 삶의 정신을 투사(透寫)하고 있다. 즉, 작가는 전통 산수화의 틀 안에서 치열하게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화선지가 지닌 특성, 물을 빨아들이고 묵(墨)이 서로 번지고 뭉개져 버리게 하는 물리적(物理的) 특성은 자연의 생명력(生命力)과 파멸(破滅)의 습성(習性)을 가장 근접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자연친화적이고 현대적인 조형수단이다. 작가는 자연의 신비스러운 비밀을 극명하고도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소재 위에, 극도로 제한된 시선(視線)을 통한 감필(減筆)과 여백으로 섬진강의 모든 생명력으로써 풀 한포기 조차 놓치지 않으면서 대자연의 웅대함에 겸허하게 순응하며 명상(瞑想)하는 자아를 투영한다. 이러한 작가의 부단한 노력은 비단 작가만의 명상 뿐 만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체성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송만규의 자연과의 내면적 교감은 고려 말 조선 초에 활동했던 위대한 시인 이색(李穡, 1328~1396)이 당대 화공들에 대해 언급했던 “그림자 속에서 그림자를 그리려고 한다”는 예술의 신비 사상과 닮아있다. 순백의 화지 위에 인간적이고 따뜻한 무위(無爲)의 먹빛은 무한한 남도 선비의 정신성을 더없이 다양한 현대 수묵산수로서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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