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6 | [저널초점]
한옥의 세월
사단법인 한옥문화원장 木壽 신영훈(2004-06-12 12:19:57)
소리가 국내 제일인 고장 전주시청에 근무한다는 젊고 가냘프고 예쁜 아가씨 공무원이 찾아 왔다. 순창의 <대도대한> 도량의 한 건물의 넓은 방에서 우리는 만났다. 동행한 도편수와 그의 친구, 모형을 전문으로 탐구한다는 사람들과 다 같이 모였다.
예쁜 공무원이 보라고 건너 준 자료에는 노란 종이에 「전주문화영재캠프」라고 큼직하게 씌여 있었다. 문화영재교육을 설명하는 안내문 다음 장을 펴니 ‘뚝딱 뚝딱 한옥 만들기’라는 항목이 보이고 몇몇 아이들이 한옥의 모형을 조립하고 있는 장면의 사진이 실렸다. 아주 긴장한 표정의 아이들이 모형 둘레에 섰고 두어 아이는 조립하는 시늉을 하고 있다. 옆의 다른 사진들에는 발랄하게 웃고 즐기는 표정의 아이들이 가득한데 유독 여기만 긴장한 아이들이 웃지 않는 얼굴에 눈을 똑바로 뜨고 모형을 바라다보고 있다.
그렇긴 하지만 내게는 아주 보기 좋은 사진이다. 그 사진 아래에 ‘뚝딱 뚝딱 한옥 만들기’라는 큰 글자 아래로 사진 설명이 있는데 「전통문화센터내의 혼례관을 모델로 한, 가로 1.8 ~ 세로 1.5 높이 1미터의 모형한옥을 불록형태로 제작. 한옥의 심미성과 과학성을 공부하고, 우리 지역의 문화 역사적 가치와 자부심을 함양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하였다.
찾아온 예쁜 공무원이 이 일을 주관한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다른 고장에서는 거의 생각하기 어려운 일을 이 고장에서는 기획하고 실천하는구나 싶어 몹시 대견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예쁜 공무원에게 “한옥이 무엇이냐?”고 화살을 날렸다. 주눅이 든 사람이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가 보다. 그래 일장 설화가 시작되었다.
“전통문화센터”라면 그 한옥도 전통한옥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대답이다. 무엇을 전통한옥이라 하느냐고 재차 물으니 대답이 막히고 말았다. 전통한옥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옥은 다른 나라 집과 다른 독특한 구조를 지닌 이 땅에 지어져 온 모든 건축물을 일컫는다. 수 천년동안 각양각색의 집이 이 땅에 조영되어 왔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단지 양옥이라 부르는 유형만 여기에서 제외될 뿐이다.
그 중의 살림집은 구석기 시대로부터 이 땅에 지어지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들은 각양각색이며 시대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하며 지역에 따라서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이룩되어 왔다. 그러다가 한옥이 완성되기에 이르는데 이는 북방문화가 남쪽으로 흐르고, 남쪽 문화가 북방으로 흘러가며 절충하고 삽입하고 정제되는 오랜 과정을 거쳐 드디어 하나의 정형을 이루게 되었고 다른 나라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구조를 구비하였다.
북방에서 꼭 소용되는 구들 들인 온돌방과 남방에 필요한 시원한 기능을 지닌 마루 깐 대청이 나란히 채택된 것이다. 난방 할 수 있는 구들과 냉방이 가능한 대청의 만남은 다른 나라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것이므로 이를 우리는 우리가 입는 의복을 한복이라 하고 먹는 음식을 한식이라 하듯이 한옥이라 부르자고 하였다.
한옥은 이래로 각 고장마다 들어서는데 산골짜기와 들녘의 특성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하게 되었고 추운 지방에서는 겹집을 유행시킨 것처럼 따뜻한 남방에서는 홑집을 발달시키는 특성을 보였다. 그만큼 한옥은 적응력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는 넓은 도량을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전주라면 이들 한옥의 지역성 중에 어떤 유형을 택한 것 같으냐고 물으니 예쁜 공무원은 얼른 홑집 계열이라고 대답한다. 옳은 대답이다. 그렇긴 해도 계층에 따라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집의 모양은 천차만별로 조영될 수 있었다. 그만큼 한옥은 구성이 널널하기 때문이다. 같은 집이어도 식구가 많은 댁에서 새로 집을 지을 때 어머님은 안채의 대청의 넓이를 지정하신다. 효자 아드님은 어머님 말씀 따라 집을 짓되 대청을 넓게 한다. 가세가 번창하여 아이들이 많아 제사 드리는 장소에 들어설 수가 늘었으므로 대청이 좁으면 불편하다는 점을 어머님은 고려하신 것이다.
한옥은 어머님이 지으신다고 예로부터 일러왔다. 살림살이 하는 곳이 한옥인데 살림살이의 주도권이 어머님에게 있으니 그 분의 요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면 합당한 살림집이 되기 어렵다.
안채가 한옥의 중심건물이어서 언제나 제일 크고 사랑채는 안채보다 작은 것이 보통이다. 이는 심지어 왕궁에서도 마찬가지이니 경복궁만 해도 왕비전인 교태전이 임금님 침전인 강령전보다 그 규모가 크고 왕비전의 부속건물과 뒷마당과 뒷동산의 치장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임금님 침전에는 없는 시설이다.
우리의 집은 거처하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서양식으로 개념을 정리하는 집과는 그 속내가 다르다. 우리 집은 머물다 가거나, 행복하게 휴식하는 집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고 살림살이의 장소이다. 생활의 논리가 문화라면 그 문화가 성장하고 유지되는 곳이 우리의 살림집이며 그 집을 우리는 한옥이라 부른다.
한옥의 구조에서 우리나라에 소개된 양옥과 다른 점은 한옥에는 처마가 깊다는 구조적인 특성이다. 서양에서도 지중해연안에 가면 처마 있는 집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양옥만이 서구적인 집이 아님을 알게 되는데 6.25이후로 값싸게 짓는 집만을 양옥이라고 발전시키는 바람에 오늘의 우리 식견이 한편으로 쏠리게 되고 말았다.
처마가 깊다는 것은 기둥 밖으로 돌출한 서까래로 인하여 형성된 처마가 모자의 차양 같은 구실을 하여 직사광선이 집안에 들어서는 일을 막아준다. 아무리 더운 여름철이라도 큰나무 그늘 아래는 시원하듯이 처마 아래 그늘은 늘 시원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여름에 대청에서 시원하게 여름을 지낼 수가 있다.
뙤약볕이 쏟아져 내릴 때 모래 깐 마당은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날만큼 무덥다. 마당에서 더워진 공기는 찬 공기 찾아 대청으로 몰려든다. 시원해진 대청의 공기는 더운 공기와 교류한다. 뒤곁 나무숲의 찬 공기도 마당 쪽으로 흐르려 한다. 대청이 가로 막긴 하였으나 대청 뒷벽에 열린 바라지창으로 해서 재빨리 안마당으로 흘러간다. 그 바람에 대청엔 바람기가 많아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게 된다. 여름에 대청이 시원한 까닭이다.
방은 천장의 높이를 앉은 이 키 높이에 서 있는 사람의 한 길로 설정한다. 대략 7.5척이다.
서 있는 이의 키 한 길을 5척으로 평균한다. 앉은키는 2.5척이 된다. 이 7.5척은 15척의 절반인데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들 방의 넓이를 일변 15척식으로 하여 15척 × 15척을 기본으로 설정하였다. <삼국사기>에 수록된 건축법령의 조항인데 15척의 백성들 집에 비하여 신분이 상승하면 18척, 21척, 24척의 넓이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법령이 조선조에 이르도록 면면이 이어졌다. 단지 조선조에서는 백성들에게 소나무를 사용할 수 없게 하여 목재를 활엽수를 주로 사용할 수밖에 없어 초가집들은 그 간살이를 8척으로 설정하게 되었는데 그 8척은 16척에서 유래된 것이며, 16척은 방 넓이 15척에 기둥 두께 1척을 더한 것이다. 열악한 건축자재를 고려하여 15척을 반으로 나누려 하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보통 앞에서 바라다보는 기둥 간살이 보다는 앞에서 뒷벽까지가 넓다. 그 넓이에 앞퇴를 더하면 다시 15척에 방불한 수치가 된다. 심라에서는 구들이 없으므로 15척을 한 공간으로 다 사용하여도 무방하나 조선에서는 구들이 채택되므로 해서 퇴와 방으로 나누게 되었고 그래서 방 넓이가 그만큼 줄어들게 되었다. 그런 차이가 있을 뿐 15척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넓이의 방에 앉았을 때 천장 높이는 사람의 신체를 고려하여 설정한다. 사람은 기가 돈다고 한다. 기는 나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체로 되돌아들어야 기가 고르게 유지된다고 하였다. 기가 알맞게 대류하여 다시 사람에게 되돌아가는데 지장이 없게 하려면 알맞은 높이의 천장이 설정되어 있어야 한다. 한옥은 그 점을 충분히 고려하였다. 그것을 모르는 이가 천장을 내리면 기가 쇠하여진다. 건강에 좋을 리가 없다. 누군가가 바싹 천장을 내린다면 앉은 주인은 기색하고 말 것이다. 반대로 천장을 높이면 기가 승하게 되고 버썩 높이면 기고만장이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만큼 천장 높이는 인체와 직결되어 있다.
대청에 나서면 천장은 훨씬 높아진다. 서서 움직이는 이의 신장 5척에 한길 높이 5척을 더하여 10척으로 잡기 때문이다. 그런대 아파트는 방이나 부엌이나 거실이나가 한결 같이 같은 높이이다. 그러니 답답하여 주부들이 자꾸 밖으로 나가려 한다.
한옥이 불편하다고 하는 첫째가 부엌이 멀다고 한다. 그 통에 아파트 주방은 씽크대 옆에 냉장고, 식탁 등등이 배열되어 있어서 전업주부는 하루의 상당한 시간으로 고 사이에서 맴돌고 있다. 동선을 짧게 해야 한다고들 해서 그렇게 하였다는 변명이나 그로 인하여 주부들이 문화병을 앓게 되었다면 그것은 어떤 문제에 해당하는지 모르겠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시절에는 주부들이 자궁암을 앓지 않았다고 한단다. 의학계의 소식이다. 지금이라도 다시 아궁이를 만들어 주라고 권한다. 사랑하는 부인을 위해서...
이제 아파트시대가 차츰 극성기에 도달해서 한국 백성의 대부분이 아파트 경험을 하였으니 곧 시들해질 시기가 가까워 오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미래학자들의 충고를 들었다. 아파트라는 양옥에 밀렸던 한옥의 시대가 되돌아오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는데 예쁜 전주시 공무원을 만나니 한옥의 시대가 많이 다가섰음이 실감나고 그의 준비가 시의적절하다고 여겨졌다. 세상에 저런 마련이 있다니 고맙고 반갑다. 한옥문화원의 외로움이 이제 하마 가시려는가 싶기도 하다.
모형을 만들어도 궁궐이나 절간 보다는 살림집을 대상으로 삼아 보라고 말 하면서 긴 이야기를 끝을 내었는데 우리 예쁜 공무원은 전혀 지루하지 않은 얼굴을 하면서 명랑하게 웃었다. 그이 밝은 모습에서 전주시의 한옥문화가 옳고 바른 발전을 할 것이란 징후를 읽었다. 고마운 일이다. 우리 다 함께 그 예쁜 공무원의 소임이 충실히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면 전주라는 문화도시는 소리뿐만 아니라 소리를 할 수 있는 집을 발전시키는데도 좋은 고장이 될 것 같다는 간절한 생각을 하면서 예쁜 공무원과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