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4.6 | [문화시평]
실패한 혁명가 허균의 이상과 현실
정초왕 전북대교수. 독어독문학과(2004-06-12 12:15:03)
하늘 <땅과 새> 땅과 새는 이미 지난 4월의 제20회 전북연극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여 5월 22일 대구에서 열리는 전국연극제에 도 대표로 참가하는 작품이다. 또한 극단 하늘과 극작가 김정수가 짝을 이룬 두 번째 창작 초연 작품이기도 한바, 그들 입장에서는 지지난해 ?종이새?에 기울였던 노력까지도 함께 보상받은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연극제 기간에 불가피한 사정으로 작품을 관람하지 못했던 필자로서는 전국연극제 참가를 앞두고 다시 한번 무대에 올려진 재공연의 기회가 몹시 반가운 것이기도 했다. 5월 9일의 두 번째 공연을 보았다. 객석의 불이 어두워지고 애잔한 음악이 흐르면서 무대 조명이 희미하게 밝아오면 모반이 발각되어 처형을 앞둔 ‘허균’의 마지막 심문 장면이다. 앙칼진 심문의 목소리와 고통스러운 신음, 허균과 그의 재능을 아꼈다는 ‘광해군’의 가시 돋친 설전. 그리고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허균의 삶의 연대기(?)가 순차적으로 펼쳐진다. 허균의 두 여인, 임진왜란 피난길에 난산 끝에 죽은 애정 깊은 아내 ‘김씨’, 그리고 고통과 절망에 빠진 허균에게 삶의 위안이 되어준 기생 ‘낙빈’이 등장하고, 관아에서 호민론을 쓰고 있는 허균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마침 관아에 도적이 들어 그 괴수가 잡히는데 ‘홍지재’라 하는 인물이다. 그가 관아의 담을 넘게 된 사연을 들은 허균은 동정심과 함께 그에게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고민 끝에 자신의 단도를 줌으로써 결과적으로 탈주를 돕게 된다. 탈옥했던 홍지재는 며칠 후 친구인 ‘이부사’가 원님으로 있는 이웃 관아에 잡히게 되고 다시 자기 관아로 데려오기는 하지만, 탈주와 단도의 출처로 인하여 쏟아지는 질책을 모면하기는 어려운 지경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홍길동’과 그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허균의 만남과 논쟁 장면이다. (자신을 창조해낸?) 허균을 맹렬히 질타하는 홍길동과 인간적(?) 고뇌에 빠진 허균의 대립, 그러나 결국 허균은 홍지재를 처형하고 만다. 광해군으로부터 경고의 메시지를 받은 허균은 본격적으로 백성을 위한 개혁을 추진하게 되는데, 홍길동은 허균이 지칠 때마다 자극을 주면서 개혁을 위한 힘을 북돋우는 분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한편으로 홍길동과 낙빈은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하여 찾아온 이부사를 동지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에게 ‘홍길동전’을 보여준다. 허균은 나라의 대대적인 개혁을 위해 광해군에게 장문의 상소를 올리나 별 반응을 얻지 못하고 실망한 나머지 결국 ‘모반’을 준비하게 된다. 홍길동과 그의 병사들을 이끌고 활빈당의 본거지에 모습을 드러내는 허균. 그곳은 홍길동전의 배경인 동시에 허균이 모반을 도모하는 현실의 장이기도 하다. 교차되는 현실과 꿈... 그러나 꿈은 사라지고 다시 어두운 형장. 허균의 능지처참형이 거행되는 가운데 길고 긴 마지막 비명, 그리고 ‘희미하나 뽀얀 달덩이 같은 꼬마 홍길동’의 웃고 있는 모습... 극작가 김정수는 이 작품이 단순한 허균의 일대기가 아니며, 홍길동전은 더 더욱 아니라고 한다. 시대를 불문하는 중요 화두인 정치와 예술, “‘이질적”이지만 “사람, 당대의 민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소통을 갖는” 이 둘의 관계를 “시대적 고민 안에 담아 보고자 했다”고 자신의 의도를 피력한다. “실패한 혁명가 허균”과 “그가 남긴 홍길동전 사이”의 관계는 “정치라는 현실적 그림과 예술이라는 이상적 그림만큼의 거리감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에 실린 글에서 그가 계속 말하듯이 ’혁명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 중에 ’어느 시기에나 그 중심이 되는 젊은이들‘이 있고, 예술은 ’그들이 꿈꾸는 혁명적 의지를 표출하는‘ “다분히 감성적인” 매체로서, “혁명과 예술, 이 각기 다른 색깔의 두 날개는 이렇게 상호보완적 한 쌍을 이루는 것”이라는 사실, 이 모두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일 것이다. 이를테면 작품의 제목 “땅과 새”의 함의는 이렇다. “‘땅’은 우리가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이며, ‘새’는 꿈꾸는 한 사람, 혹은 그의 이상향”으로서 “끊임없이 갈등할 수밖에 없는 이상과 현실, 신념과 타협, 비상과 안주는 바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점을 토대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있는 한 현대극”이 될 수 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이 역시 이론이 제시되기 어려운 진실일 것이다. 무엇보다 역사발전을 믿고, 이상과 현실의 상호 대립과 갈등, 그리고 그 지양의 과정 속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홍길동이 건설했다고 하는 ‘율도국’은 아닐망정, 최소한 허균이 살던 봉건적 가부장적 사회체제를 벗어나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면 말이다. 사실 다른 한편에서 보자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주제가 아니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결국 이러한 의도가 작품의 공연을 통해서 얼마만큼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적절히 전달될 수 있었는가에 있을 것이다. 우선적으로 관심을 끌며, 또한 기발한 착상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은 극의 주인공 허균이 자신의 작품 속에서 그려낸 인물인 홍길동과 극 속에서 대면하여 토론하고 논쟁하며 마침내는 행동을 함께 하는 데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극 속에서 허균은 ‘현실’의 인물이며 홍길동은 ‘꿈’의 인물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분열된 자아의 갈등”에 빠진 ‘불우한 천재’ 허균은 그 때문인지 “도덕적인 가벼움”까지 지녀 경박하다는 평가마저 따르는 처지이니, ‘모순이 있을 수 없는 이상적인 인물’ 홍길동으로부터 질책을 당하고 논박을 당해 마땅하다. 그러나 극적 진행 과정에서 둘 사이의 이러한 대립이 설득력 있게 적절히 형상화되고 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허구의 인물인 홍길동이 직접적으로 극적인 현실에 개입하여 마침내는 모반에 동참하는 것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려는 극적 양식상의 의도가 있었다 할지라도, 허균과 홍길동이라는 두 인물간의 대립구도까지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같은 ‘현실 속의 인물’로서 광해군과의 대립구도도 좀 더 분명하게 하면 좋지 않을까? 오로지 군주와 신하의 대립만이 아닌 일종의 노선의 차이로서. 공연 초반이 가라앉은 분위기여서 관객의 집중력을 끌어 모으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고, 주요 배역의 인물 형상화와 연기력에도 미흡한 점이 엿보이며, 세트 디자인도 재고해볼 여지가 있어 보인다. 물론 사소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그러한 것들이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잔재주 부리지 않는 정극을 보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던 것도 참 오랜만이 아닐까 한다. 부디 좀 더 다듬어 전국연극제에서 좋은 성과 거두고, 희곡으로서도 한 장을 장식하는 작품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정초왕 / 성균관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브레히트를 전공했다. 전주시립극단 상임연출을 지냈으며, 전북대 교수로 있으면서 연극론과 영화의 이해, 독일 시 등을 강의하고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