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4.6 | [문화와사람]
“너 행복하니?”
전주국제영화제 오창환 기술자막팀장(2004-06-12 12:10:00)
누구에게나 삶의 갈림길들은 찾아오는 법이다. 이쪽과 저쪽, 어느 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삶의 궤적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는 그런 갈림길들. 이런 갈림길은 때론 뜬금없이 찾아와 체 나침반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을 당혹시키기도 하고, 또 아주 단순한 계기로 간단히 선택되어지기도 한다. 갈림길에 선 사람들은 대게 두 가지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가고 싶은 길과 덜 가고 싶은 길. 하지만 문제는 가고 싶은 길은 험난함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덜 가고 싶은 길은 좀더 쉬운 길일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럴 때 선택이 필요한 것이고, 그 선택이란 것은 대게 머리를 쥐어뜯게 만든다. 그리고 가끔 그때 선택에서 버렸던 길들을 아쉬워한다. 누군가는 내내 아쉬워하기도 하지만. 올해로 3회째 전주국제영화제의 기술자막팀장을 맡고 있는 오창환(33) 팀장. 그도 이런 갈림길위에 섰고, ‘가끔’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걷고 있는 길을 동경하기도 한다. 그는 남들이 많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것이다.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너 뭐할래?” 영문학도이던 오팀장을 ‘영화쟁이’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것은 술자리에서 선배가 던진 이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살아가다 보면 가끔 누군가가 툭 던진 한마디가 아주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괴롭히는 화두가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아주 현실적인 선배의 이 질문 하나 때문에 일주일 동안 꼼짝 못하고 앓아 누워있었어요. 그리고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편입하게 됐죠. 당시에 영문학과에 다니고 있긴 했지만 정작 관심이 있던 것은 시나리오 쓰는 것이었으니까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기로 한거에요” ‘너 뭐할래?’라는 질문에서 그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됐을 때, 이제 그는 ‘너 행복하니?’라는 질문에 부닥치게 된다. 영화 <와이키키브라더스>에서 이미 생활에 찌든 친구가 소주잔을 기울이며 성우에게 물었던 말이다. 그리고 그의 졸업 작품 <어쩌면>은 그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해답이었다. <어쩌면>은 하고 싶었던 일만을 하고 살았던 한 남자에게 여자친구가 임신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된다. 남들 시선이나 현실 따위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던 주인공은 여자친구의 임신이라는 뜻밖이지만 현실적인 고려를 하지 않을 수없는 사건 앞에서 ‘안정적인 삶’을 꿈꾼다. 하지만 이미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마지막으로 장기매매까지 생각하지만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때에 맞추어’ 살고 있잖아요. 때 되면 학교가고, 군대가고, 결혼하고 이러는 것이 마치 ‘모범 답안화’ 되어 있구요. 하지만 영화하려고 뛰어든 사람들은 대부분 ‘때에 맞춰’ 살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가끔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안정적인 삶’을 부러워하기도 하구요.” 가끔 부럽게 느껴진다고 해서 이제나마 그 길로 뛰어들 생각은 없단다. 새삼 조직이라는 틀에 메일 자신도 없고, 영화에 대한 열정도 식지 않은 까닭이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결국 그 자리’다. 그럼 영화를 꿈꾸던 그가 지금껏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기술자막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유는? 그의 졸업 작품 <어쩌면>은 그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해답뿐만 아니라 약간의 ‘빚’도 안겨주었다. “졸업 작품을 찍으면서 여기저기에 200만원을 빚지게 됐어요. 제대하고 8개월 동안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모은 돈도 좀 있었고 학생이라 장비도 값싸게 대여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되더라구요. 빚까지 얻어 쓰면서 찍은 작품인데 마음에 들었냐면 그것도 아니에요.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 나랑 닮은 발가락을 찾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지. 왜 그 김동리의 <발가락이 닮았다>보면 주인공이 자식한테서 자기랑 비슷한 곳을 찾으려고 하잖아요. 딱 그 심정을 알겠더라니까요. 원하는 완성도에 도달하려면 똑같은 장면을 몇 번씩 다시 찍어야 되는 경우가 있는데 필름 값이 만만치 않아서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또 제작비 때문에 시나리오도 조금씩 수정해나가다 보니까 처음 구상했던 작품이랑 전혀 다른 작품이 나왔더라구요. 마치 주워온 자식 같았어요.” 작품에 대한 아쉬움도 잠시,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200만원이라는 빚을 어떻게 갚느냐였다. 그때 제 1회 전주영화제때 기획팀장이었던 이동기씨가 아르바이트 제안을 했고 그는 흥쾌히 승낙했다. 일단 빚부터 갚아보자는 심산이었다. 그 일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영화제 관련 일을, 그것도 전주에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가 전주영화제에서 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주영화제가 3회째를 맡이 하며 그에게 기술자막팀장을 제의 했을 때, 부천영화제에서도 함께 제의를 받았지만 첫 인연은 첫사랑의 그것만큼 끊기 힘들었다. “1회 때 정말 힘들게 일했어요. 영화제에 관련된 일을 처음 시작한 것이기도 하구요. 첫 회라는 것과 그곳에서 뭔가를 만들어 놓았다는 의미가 상당히 큰 거 같아요. 그래서 전주영화제에 애정도 그만큼 크고요.” 하지만 영화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서운한 적도 가끔 있다고 한다. “특히 눈에 보이는 단순한 경제적인 논리로 전주영화제를 재단할 때요. 이번 전주영화제 입장료 수입이 2억 밖에 안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전주영화제가 생겨서 영상위원회도 만들어지고 서울에서 전주로 영화 찍으러 내려오는 거 아니겠어요. 또 시민들이 전주영화제가 아니면 언제 세계의 독립영화들을 볼 수 있겠어요. 1년에 한 번 만이라도 그런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가치 있는 일 아닌가요. 꼭 경제적인 생산성보다는 온전히 태워서 조금이라도 주위를 밝힐 수 있다면 그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제가 만들에 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좀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부탁이다. 직책이 기술자막팀장인 만큼 기술자막팀 조직의 운영에 대한 걱정도 따른다. 전주영화제는 부산이나 부천영화제보다 기술적인 부분에 특히 많은 신경이 가기 때문에 그만큼 숙련된 경험자가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천이나 부산영화제의 경우 필름과 자막 일을 주로 하는데 반해 전주영화제는 디지털 영화를 주력으로 하잖아요. 그래서 필름과 자막, 디지털상영에 관한 일도 함께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디지털 영화의 포맷이 다양하기 때문에 더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로운 거죠. 여러 가지 일을 함께 배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전에 일단 일을 전수하기가 수월치 않아요. 경험을 통해 숙련된 기술을 연마해야 하는데 이쪽 일이 열악하다 보니까 같이 일해 볼 만 하면 그만두는 경우가 다반사거든요. 이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현재 부산, 부천, 전주영화제의 기술인력 중 3분의 2가 넘는 사람들이 각 영화제가 열릴 때마다 돌아다니면서 일을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상영도중 필름이 한번 끊어지면 그 많은 고생들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단 한번의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영화제 가 시작되기 한 달 전, 상영작들이 도착하면 거의 날 밤을 세다시피 하지만, 가끔씩 일어나는 영사사고는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사고들은 아마 10회가 넘어가더라도 없어지기는 힘들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놓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기계가 말썽을 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설명이다. 전주영화제 일을 하고 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차있다. 틈틈이 영화구상 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다음번엔 ‘행복하니?’라는 질문을 좀더 유쾌하게 풀어내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당신은 행복한가? 여전한 고민이지만, 그 끝은 언제나 ‘결국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와 있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일 지도 모른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