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6 | [새책 및 새비디오]
새책
문화저널(2004-06-12 11:59:52)
『신탁의 밤』 (폴 오스터 지음, 열린책들 펴냄)
1974년 시집 『폭로』로 미국 문단에 등단, 주제와 등장인물들이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되는 독특한 스타일의 소설을 즐겨 쓰는 폴 오스터의 최신 장편소설. 『신탁의 밤』도 폴 오스터가 즐겨 다루는 주제인 글쓰기의 의미, 허구와 현실의 관계, 우연과 시간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드니는 아내의 대부이자 선배 작가인 존 트로즈의 제안으로, 죽음 직전의 순간을 경험한 닉 보언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쓰게 된다. 소설 속 인물인 닉은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신탁의 밤>을 읽는다. 폴 오스터는 시드니 오언의 이야기를 하고 시드니 오어는 닉 보언의 이야기를 쓰고 닉 보언은 실비아 맥스웰이 쓴 『신탁의 밤』을 읽는다.
이렇게 세 겹으로 겹쳐진 이야기를 통해 폴 오스터는 우리에게 허구가 예언적이며 현실을 반영할 뿐 아니라 구체화시키기도 한다는 것, 세상은 생각처럼 온건하고 질서 있는 곳이 아니며,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11분』(파울로 코엘료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03년 유럽과 남미 등지에서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을 누르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책. 제목 『11분』은 성행위의 평균 지속시간을 뜻한다.
인간에게 사랑과 성은 어떤 의미인가, 성(性)에 성(聖)스러움이 담길 수 있는가. 그 성스러움에는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가 하는 주제로 영혼과 육체, 사랑의 문제를 재미있고 간명하게 풀어나간다. 젊은 시절 창녀였던 한 여성과의 우연한 만남이 이 소설을 탄생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파울로 코엘료는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연극 연출가와 극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이후 작사가, 기자, 소설가로 변신했다. 70년대의 생활상을 다룬 잡지 ‘2001’을 발간하였으며 이때부터 마법술과 연금술 등의 신비주의에 빠지게 된다. 소설로는『연금술사』, 『순례』, 『마법사의 일지』등 8권이 74개국어로 번역되어 경이적인 판매기록을 세웠으며, 현재 마르케스 이후 남미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현경과 앨리스의 神나는 연애 (앨리스 워커?정현경 공동지음, 마음산책 펴냄)
<컬러 퍼플>의 작가이자 ‘우머니스트’란 단어를 고안해 페미니즘 담론의 새 지평을 연 앨리스 워커와 유니온 신학대의 종신교수이자 여성, 환경, 평화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현경.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깨어있는 감수성을 갖고 살아온 이 두 사람이 여성이라면 누구나 던져보았을 법한 질문들을 두고 마주 앉았다.
이 책에 실린 시와 산문은 그 질문들에 대한 보고서다. ‘당신은 왜 페미니스트로 살아야 하는가’, ‘여성과 남성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등의 질문에 대한 두 사람의 대담은 가부장과 자본주의 사회의 굴레에서 출구를 찾아 헤매는 여성들의 시야를 시원하게 트여준다.
앨리스 워커는 1994년 미국 남부 조지아 주 이턴튼 출생으로 급진적인 역사가 하워드 진과 스토튼 린든의 영양을 받아 흑인 민권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정현경은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초교파 신학을 가르치며 종교간세계평화위원회의 최연소 위원 및 최초 아시아계 여성 위원으로 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좁쌀 한알 (최성현 지음, 도솔펴냄)
무위당이나 조한알로 더 잘 알려진 장일순 선생의 서거 10주기를 기념하여 원주의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에서 기획한 장일순의 일화집 겸 서화집.
장일순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20대 초반 아인슈타인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세계를 하나의 연립 정부로 만들고자 했던 ‘원 월드 운동’에 참여했었다. 20대 중반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원주에 대성중고등학교를 설립하고, 30대 초반에는 국회의원에 낙선, 중반에는 ‘중립화 평화통일론’을 주장하다 3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이후 천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 교수와 손잡고 각종 정치적 활동을 지원했다.
이 책은 장일순을 만났던 사람들이 그에게 겪었던 감동적인 일화들을 묶었다. 장일순이 그랬듯이 유명인사보다 원주에서 같이 산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의 얘기가 많다. 이밖에 장일순이 남긴 글씨와 그림들 한데 엮었다.
저자인 최성현은 동국대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고 산속에서 농사일과 번역, 글쓰기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