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6 | [문화저널]
이종민의 음악편지 / 밥딜런의 '바람은 알고 있지'
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2004-06-12 11:46:28)
“만일 내가 음식이라면” - 밥 딜런의 [바람은 알고 있지]
지구상의 60억 인구 중에서 12억 인구가 하루 1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고, 그들 중 대부분은 가뭄과 전쟁과 빈곤의 희생자들입니다. 또한 1억 5천명의 아이들이 거리에서 자고, 먹고, 일하고, 뛰어다니고, 꿈을 꿉니다. 만일 내가 비라면 나도 ... 물이 없는 곳으로 갈 겁니다. 만일 내가 옷이라면 세상의 헐벗은 아이들에게 먼저 갈 겁니다. 만일 내가 음식이라면 모든 베고픈 이들에게 맨 먼저 갈 겁니다. -- 김혜자 (굶주린 아이들을 위한 모금 연설에서)
한 여인이 있습니다. 한국의 전형적인 여인상, 어머니상으로 기억되곤 하는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연기자 중의 하나.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살며 화려한 조명을 받아온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녀 자신도 그렇게 믿고 싶었습니다. 마음속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는 “끝 모를 허무감만 없다면!” 진정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한 그녀로서는 막연한 허무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의 고통 받는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수십 시간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서 새우잠을 자고, 엉덩방아를 찌며 머나먼 비포장도로를 달리면서도, “나는 누구인가, 왜 이곳에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때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유도 모른 채 가난과 굶주림, 전쟁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신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왜 당신은 이 사람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가요?” 때로는 거칠게 항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답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널 보내지 않았는가?”
한국 최고의 여배우로서도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월드비전의 친선대사로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르완다, 방글라데시,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보스니아, 인도, 케냐, 우간다, 북한, 시에라리온, 아프가니스탄 등을 찾아다니며 전쟁과 가난 속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면서 행복의 참의미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외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마음의 눈과 귀를 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의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의 고통을 볼 줄 아는 눈, 나보다 더 큰 고통에 처한 사람의 외침을 듣고자 하는 귀가 있다면 여러분의 삶은 불행이란 단어를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제 어머니 모습을 너무도 생생하게 연기해주던 [전원일기]의 회장댁 사모님! 이제는 전 세계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의 어머니가 된 이 여인의 가슴에 노랫말 하나하나가 마치 “화살처럼 꽂히는” 곡이 하나 있답니다. 밥 딜런의 [바람은 알고 있지](Blowin' in the Wind)라는 노래입니다.
“전쟁이 금지되기까지 얼마나 많이 포탄이 날아가야 할까?”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할까?” 등의 가사내용이 특히 그녀의 여린 가슴을 저리게 했을 것입니다. 전쟁의 엄청난 폐해를 역사와 현실이 엄중하게 증거하고 있는데도 멈출 줄 모르는 ‘부쉬 족’들의 광기가 섬뜩하여, 배가 고파 소리 내어 울지조차 못하고 죽어가는 어린이들이 수억 명에 달하는데도 경제불황만 한탄하며 등을 돌리는 속 좁음이 안타까워,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게는 엉뚱하게도, 제 아내와 분위기가 비슷하기도 한 이 분이 한때 제 아내가 열렬히 사모했던 가수의 노래에 감동해 하고 있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옵니다. 학창시절 그의 이름을 아직 들어보지도 못한 저에게 제 아내는 그를, 그의 음악을, 그의 시를 칭송해댔습니다. 그 시절 질투심에서 그랬는지, 저는 그의 음악을 피하곤 했습니다. 그 덕에 그가 대변하던 6-70년대 자유와 저항의 문화, 심하게는 그린위치 빌리지의 예술에도 청맹과니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서 빨리 제도권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에 그의 반항심과 저돌성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를 20여년,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라는 책이 저의 이 옹졸함을 일거에 떨치게 했습니다. 뒤늦게 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게 해준 것입니다. 깨우침에는 오늘내일이 없다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사실 밥 딜런의 음악세계는 공연한 질투심이나 괜스런 부담으로 도외시하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로큰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음악으로부터 현대 모든 종류의 록 음악이 흘러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반전 포크 음악의 대변자인 존 바에즈도 그의 영향 하에 활동을 했으며, 셔릴 크로우나 오코너, 벡 등도 그의 지대한 영향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비틀즈도 [그녀는 당신을 사랑해] 따위의 노래를 넘어서지 못했을 것이며 롤링 스톤즈도 런던 남부의 초라한 밴드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지적대로, “엘비스 프레슬리가 우리의 몸을 해방시켰다면 밥 딜런은 우리의 영혼을 해방시켜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홉 개의 질문으로 이루어진 이 노래에서 그 질문 끝에 반복되는 “답을 바람은 알고 있지”는 무엇을 함축하고 있을까요? 흔히 우리말로는 ‘바람만이 알고 있지’로 번역되곤 하는데, 제 좁은 소견으로는 노랫말의 취지에 조금 어긋나는 듯합니다. 사람들은 모르고 바람만 알고 있다는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자연에 귀를 기울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인데 눈과 귀를 막고 있기 때문에 애써 어리석음을 반복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오월이 가고 있습니다. 사랑을 베푸는 데 어색해 하는 이들을 위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을 일부러 배치해 놓은 달!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혹 대상이 없다며 선물이나 꽃 하나 챙기지 않고 그냥 훅 보내시지는 않았는지요? 받아 기쁜 게 선물이요 사랑이라면 베풀어 더욱 뿌듯한 게 선물이요 꽃이요 사랑입니다. 아이들이 다자라 어린이날과 상관없다 쉽게 손 털지 마시고 우리들의 어머니 김혜자씨가 감싸고 있는 아프리카와 아프가니스탄, 아니 우리 북한의 굶주린 아이들을 껴안을 일입니다. 룡천에 성금 한번 보낸 것으로 자족해 할 일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손이 둘 있습니다. 오드리 햅번 말대로, 하나가 자신을 돌보기 위한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정호승 시인의 지적처럼 “서로를 안아주라고, 신은 우리에게 두 팔을” 준 것입니다.
이 노래 들으시며 바람소리에 귀 기울여 마음의 문 활짝 열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