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8 | [건강보감]
'환자의 비밀' 어디까지 지켜야 하나
두재균
전북대 교수 산부인과(2003-04-07 11:04:10)
21세 여자, 미혼 여성이 응급실에 왔다. 얼굴은 헬쓱하고 하복부에 심한 통증이 있다고 한다. 대변이 마려워서 화장실에 가지만 대변은 나오지 않고 계속해서 대변 마려운 느낌만 느낀다. 최근 10일 동안 정상적인 월경이 아니면서 약간의 점상 질 출혈이 있다고 했다.
산부인과 진찰실에 환자를 옮기고 질을 통해서 골반강 내에 주사기를 꽂으니 응고되지 않는검붉은 혈액이 약 10cc정도 저항 없이 빨려나왔다. 복강 내에 심한 출혈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사전에 소변검사를 통한 임신 반응 검사도 양성이었음은 기본적인 사항이고, 진찰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처녀막 파열흔적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환자에게 물어 보았다. 혹시 성교경험이 있으십니까? 단연코 없다고 한다. 다시 한번 물어 보았다. 절대 없다고 하면서 주변의 눈치를 살핀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엄마 아빠 오빠 등의 가족들을 진료실 밖으로 나가게 하고 다시 물었다. 이 의사 오빠한테만 이야기 해주시오. 당신의 비밀은 절대 보장하겠소 하니 드디어 그 아가씨는 "흑"하고 흐느끼면서 두달 전에 딱 한번 성교를 했다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부모가 이러한 사실을 알면 맞아 죽는다고 했다.
신파극 같지만 실제로 흔히 있는 이야기이다.
계속되는 복강내 출혈로 혈압은 떨어지고 맥박은 빨라지면서 사경을 헤매던 아가씨의 목숨은 결국 응급수술을 통해서 살릴 수 있었다. 위에 열거하였던 환자의 증상과 병력을 종합해보면 진단 명은 비교적 쉽게 나온다. '자궁외 임신'의 한 형태인 '나팔관 임신'이다. 좁은 나팔관에서 더 이상의 임신이 지속되기 어려워 나팔관이 파열되어 복강 내로 출혈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수술이 끝난 뒤 환자보호자에게는 이제는 안심해도 좋으며 수술결과는 난소에 생긴 물 혹이 터져서 복강내 출혈이 생긴 것이라고 본의 아닌 거짓 설명을 해야 했다. 하지만 환자의 차트에는 거짓을 기록할 수 없으므로 있는 사실을 다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
따라서 의학적 전문지식을 가진 보호자라면 의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음은 당근(?)이다.
'환자의 비밀'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가? 형법 317조 (업무상 비밀누설죄) :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등이 그 업무처리 중 알게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할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의료법 19, 67조(비밀누설의 금지) : 의료인은 이법 또는 다른 법령에서 특히 규정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의료조산 또는 간호에 있어서 알게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한다. 19조의 규정에 위반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그우먼 이영자씨와 서울강남의 한 성형외과 의사가 벌인 다이어트와 지방 흡입술 비밀누설 파동은 의사의 환자 비밀 누설에 대한 새로운 논쟁거리를 제공하였다.
순진한 한 아가씨의 자궁외 임신 사실 비밀 보호와 돈과 거짓과 이해관계가 얽힌 이영자 비밀누설 파동을 보면서 앞으로의 법적 시비에 관심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