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6 | [문화저널]
최승범의 풍미기행
최승범 / 고하문예관 관장(2004-06-12 11:44:07)
삼삼한 백하젓의 맛
새우젓 생각이자, 사재(思齋) 김정국의 일화가 떠오른다. 그가 벼슬길에서 물러나 고양(高陽) 시골에 물러나 있을 때의 일이라 했다. 하루는 삿갓에 베옷차림으로 채소밭을 매고 있는데 젓갈을 파는 한 노파가 지나가다가,
-‘영감요, 내 젓갈을 사세요.’
하였다. 못들은체 호미질만 하자, 노파는 젓갈통을 인채로 서서,
-‘내 젓갈은 다 팔고 그리 많지 않소. 값을 따지지 않고 드릴 터이니 영감이 털이하여 저녁 찬을 장만하소.’를 되풀이 하였다. 그래도 대구를 않자 노파는 혀를 끌끌차면서
-‘이 사람은 귀머거리구나. 그렇지 않으면 조백(?白)이 없기가 어찌 이에 이르리오.’
하면서 가더라는 이야기다. 나의 어린시절만 해도 시골살이에서 젓갈통을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진 젓갈장수를 만나기란 흔한 일이었다.
젓갈통엔 때로 색다른 젓갈도 들어있었으나, 새우젓이 주였다. 남원지방에서는 ‘새비젓’으로 일컬었다. 내 기억으로 처음 대한 새우젓은 빛깔이 뽀얀 ‘백하젓’이었다. 뒷날 전주의 ‘한일관’(고사동 1-148, 저때의 여주인은 박강임)에서 새우젓에도 ‘오젓’ ‘육젓’ ‘추젓’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젓갈을 담근 시기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었다. ‘한일관’에서는 소래(蘇萊) 포구에서 구입한 ‘오젓’과 ‘육젓’만ㅇㄹ 사용한다고 했다. 5월?6월의 새우라야 살이 올라 맛이 좋고, ‘추젓’은 가을에 담근 새우젓을, ‘백하젓’은 ‘동백하젓’으로, 겨울에 담근 새우젓이라는 구분이었다.
어린시절의 저 백하젓은 소금기가 덜하다는 생각이었고, 저 새우로는 무침도 찌개도 탕도 삼삼한 맛으로 즐길 수 있었다. 애호박나물이나 계란찌개?계란탕에도 저 백하젓이 들어가야 맛이 돋았다. 실파를 송송 썰어넣은 백하젓탕국만으로도 밥 한 그릇은 달기만 했다. 돼지 고기 편육도 백하젓무침을 곁들여야 질리지 않은 맛이다.
이러한 백하젓도 콩나물국밥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콩나물국밥에는 오젓이나 육젓이 국물의 향과 간을 돋우어 주기 때문이다.
간밤에 과음한 술속을 달래는 데엔 콩나물국도 좋지만, 나는 때로 집에서 새우젓탕을 부탁하기도 한다. 적당량의 새우젓만을 넣고 끓인 맑은 장국에 파썰이 양념을 하는 것만으로 새우젓탕은 완성된다. 몇 숟갈 밥을 말아서 훌훌 먹자면 개운하고도 시원한 맛이다. 삽시간에 간밤의 숙취도 어디론가 날라가 버린다.
민간에서는 흔히 새우젓을 ‘소화제’로 일컫기도 한다. 그래, 돼지고기나 감을 먹고 체하면 새우젓국을 마시고, 어린아기의 이유식용 죽에 새우젓으로 간을 하기도 한다.
10년 전이던가. 김재룡 시인은 ‘새우젓’이란 작품을 발표한 바 있다. 일종의 사회풍자 시였다.
-‘난 새우젓이다/ 톡톡 튀어 오를 줄도 알던/ 펄떡이던 청춘이 오만가지/ 타협과 위선으로 얼룩진 일상으로 젖어버린/ 그대는 새우젓이다.’
-‘고래싸움에 등이 터져버리고/ 곰삭은 분단이 맛있는 나라/ 누구나 새우젓을 좋아하는/ 우리들은 새우젓이다.’
‘새우젓’ 시의 후반 2련이다. 역설적이기도 하다.
이젠 여름철인데도 지난날의 꽁보리밥 시대는 사라졌다. 여름을 타는 사람이면 새우젓으로 입맛을 챙겨볼 일이다.
흥얼흥얼 ‘새우젓’의 시행도 곱씹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