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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6 | [문화와사람]
고치 속 애벌레, 세상을 향해 나서다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4-06-12 11:40:53)
시인 박성우 그는 꼭 고치 속에 갇힌 사람 같다. 고치 속에서 절치부심하던 애벌레는 가까운 미래에 성충 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런데 그는 고치를 ‘두른다’거나 외피를 ‘걸치고 있다’는 표현보다 ‘갇혀 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좀 특별한 ‘애벌레’다. 고치 속에 갇힌 애벌레. 무언가로부터 살짝 주눅 든 것 같기도 하고, 자기 세계에서 빠져 나오 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은 그는, 집요한 시 쓰기 습관만으로 화려한 성충으로의 변신을 기대 하게 한다. 눈만 마주쳐도 금새 얼굴을 붉히는 시인 박성우(33). 유난히 수줍음이 많지만, 세상이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거미’ 중) 비정한 곳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는 그이다. “한 달 50만원만 있어도 적금 부어가며 살 것 같다”는 시인 박성우는 가난하고 내성적이다. 하지만 “혼자 숨어 살다시피 했다”는 지독히도 내성적인 그의 전력들이 어쩌면 시를 쓰는 그에게 가장 큰 자산이 되었을지 모른다. 세상에 편입되고 싶은 욕구는 부유하듯 불안하게 흘러온 그 자신을 슬퍼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편입과 안착에의 욕구, 그리고 결핍되고 불안한 삶 그 중간 어디쯤에서 시의 힘, 혹은 세상과의 소통방법을 발견한 듯 보인다. “헛짚은 날들이 지금의 나를 증명해놓았네/거짓말이고 싶었던 세월은 끝내 위증되지 않았네/ 천장 뚫고 내려와 아랫목 고집하는 물방울마냥/안전핀 없는 일상은 어디든 돌파구를 내고 싶었네/아무 곳이나 뿌리내려 자지러지고 싶었네”(‘개구리밥’ 중). 지난 2002년 첫 시집 <거미>가 출간되고 지금까지 6쇄를 찍어내면서 시인 박성우는 대중적 인지도와 문단의 주목을 동시에 잡아챘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를 부여잡고 날을 새우는 일이 부지수였다”는 젊은 시인, 심연을 지나치는 그 모든 심상들을 심장에 꾹꾹 눌려 새기듯 간절하고 비장하게 시를 쓴다. 가난한 젊은 시인이 주위 문인들에게 어여삐 보이는 까닭이다 . 지난 2월부터는 전북작가회의 사무국장을 맡아 일하기 시작했다. ‘감투 쓴 박성우’는 그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에겐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모두 놀라는 분위기예요. 시나 열심히 쓰지 무슨 사무국장이냐고 주위 반응이 다 그래요. 대 외적인 일도 해야 하는데, 저한텐 정말 너무 힘들어요.” ‘시나 열심히 쓰지’ 류의 반응은 냉소가 아닌 대견함이다. 벽 뒤에 숨어 얼굴만 비죽이 내밀고 머뭇거리던 그가 세상을 향해 어렵게 한 발 내딛어 그를 드러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정읍에서 태어난 박성우는 원광대 문예창작과를 야간으로 다녔다. 낮에는 봉제공장에서 일했 고,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미친 듯이 시를 썼다. 시는 비루하고 냉정하기만 한 세상에 그를 지탱해주는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11시쯤 되는데 집으로 곧장 들어와서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땐 미쳐서 시 를 쓴 것 같아요.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목숨을 걸고 썼어요. 봉제공장 월급이 45만원이었는데,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죠. 그 중에서 1~2만원은 시집을 사는데 썼는데, 그럴 땐 세상이 다 내 것 같았어요.” 내성적이라고 세상에 할 말이 없을 것인가. 그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수년전의 모 지역신문 한 귀퉁이에 노동자 시위에 나와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박성우가 보인다. “나름대로 세상에 할 말이 있는데 말을 못하니까... 그 통로가 시였어요. 외로움도 많이 타는 편인데 시를 쓰면 견딜 수가 있어요. 지금은 나태해져서 부끄러워요. 스스로가 한심하구요.” 지금은 그때처럼 목숨 걸고 시를 쓰지 못해 그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했다. 시를 그렇게 쓰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 때문에 크게 “아팠”기 때문이다. 그의 주특기인 ‘혼자놀기의 진수’도 요 즘은 스스로 즐기지 못하고 있다. 아, 연애여! 너 참으로 헛되고 치명적이도다 !“많이 아팠는데, 그 상처 때문인지 촉각도 둔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스스로 제 감정에 잘 빠는 편인데, 견디기 힘들 만큼 아프면 3인칭 관점을 써요. 사물과 감정, 내 자신을 객관 적으로 바라보려는 거죠. 그런데 요즘은 그게 잘 안 돼요. 밤에 누우면 잠이 오는 것도 아니 고, 어정쩡하고 싸늘한 느낌이에요. 아카시아를 보면 가슴이 철렁하구요.” “좋은 시는 감정을 적당히 감추는 맛이 있어야 한다”는 시인 박성우. 서른셋에 웬만한 사람은 다 알아챌 만큼 적당히 감추지도 못하고 사랑의 열병을 들켜버린 것이다. 상처는 아물어도 상처 자리의 옹이는 남겨질 터. 일찍이 “세상의 상처에는 옹이가 있”(‘옹이’ 중)음을 알고 있 는 그이다. 자기연민에서 벗어나 언젠가 그 옹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또 혼신을 다해 시 를 쏟아 낼 것이다. 그래서 모름지기 세상 어디에도, 세상 누구에게도 ‘실패한 연애’란 없는 법이다. 가난했던 아버지는 공무원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셨단다. 곤궁하기만 한 시인의 삶이 어찌 행복으로만 안겨졌을 것인가. 대학 조교로 있는 동안, 그의 어머니는 같은 학교에서 청소부로 일해야 했다. 미안함과 고마움, 슬픔과 분노는 시를 통해 깊고 서늘하게 전해진다. “막둥이인 내가 다니는 대학의/청소부인 어머니는 일요일이었던 그날/미륵산에 놀러 가신다 며 도시락을 싸셨는데/웬일인지 인문대 앞 덩굴장미 화단에 접혀 있었어요/가시에 찔린 애 벌레처럼 꿈틀꿈틀/엉덩이 들썩이며 잡풀을 뽑고 있었어요/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어머니, /지탱시키려는 듯/호미는 중심을 분주히 옮기고 있었어요/날카로운 호밋날이/코옥콕 내 정수리를 파먹었어요”(‘어머니’ 중). “코오콕 내 정수리를 파먹었”던 것은 연민과 자책이었겠지 만, 그래도 그는 그 스스로가 어머니를 닮아 성정이 밝은 편이라고 말한다. “어머니, 미륵 산에서 하루죙일 뭐허고 놀았습디요/뭐허고 놀긴 이놈아, 수박이랑 깨먹고 오지게 놀았지”(‘ 어머니’ 끝부분). 그는 종종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써먹을 시 구절”을 발견한다고 했다. “가난하게 사셨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고 사신 분들이에요. 남의 집 호박잎 하나만 따도 자식들에게 해가 될까 걱정하시는 분들이죠. 아버지는 내성적이셨지만, 어머니는 밝은 편이에요. 어머니 말씀을 가끔 메모해 뒀다가 시에 써먹기도 하구요.” 아직 그는 최저생계비를 걱정하며 청소하는 어머니를 뻐근한 가슴으로 바라봐야만 하는 가난 한 시인이다. 그래도 그는 “시가 없으면 나도 없다”고 믿는다. “요즘 시는 저에게 천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시가 없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라 고 믿어요. 생활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청탁받아 산문도 쓰는데 저에겐 너무 힘든 작업이 에요. 2백자 열다섯 장만 쓰려 해도 완전 탈진하고 말거든요. 단어 하나하나에 시비 걸고 검 열하듯 시를 쓰니까, 그 버릇대로 산문을 쓰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마다 나는 그냥 천상 시나 써야 될 것 같다고 생각을 해요.” 시인 박성우는 폐쇄적이거나 비감하지 않다. 다만 그 자신 “제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하기 위 해 지나온 흔적을 뒤돌아보며 나는 새”(산문집 <남자, 여행길에 바람나다> 중)가 되기 위해 고치 속에서 그만의 전설을 구축하는 중이다. 자기 안에 깊이 침잠할 줄 아는 진지함과 함부로 감상을 흩뿌려놓지 않는 무게감, 그리고 “인 맥으로 어찌어찌 떠보려는 글쟁이는 되고 싶지 않다”는 당당한 오기에서 묵직한 신뢰를 느 끼게 하는 시인이다. ‘고치 속에 갇힌 애벌레’, 그의 화려한 비상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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