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6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 관객은 감독의 미래다
신귀백(2004-06-12 11:26:22)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1. 감독은 관객의 미래다
대자보 한 장이면 몇 천명이 모이던 날이 있었지. 후일담의 시대도 막을 내린 마당에 거대서사는 플래시백으로도 유치한 거 아니야? 이 미분의 날들에 광장에서 방구석으로 들어갔으니 남녀이야기 밖에 뭐가 있겠나. 섹스지. 야한 것은 숨겨 논 파일에 있을 터이니, 교양 있게 그 욕망으로 가는 거야. 우리 삶에 꼭 정해진 내러티브가 있는 것도 아니라면 기승전결도 생략하지 뭐. 이미지를 조작한다는 혐의를 벗으려면 카메라 이동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어. 고정된 프레임 속의 움직임으로 가는 거야. 어때?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 우물 처음이지? <강원도의 힘>, 허무하지?
새롭긴 하지만, 뭐야? 중산층의 일상성을 보여주는 미니멀리즘적 서술 양식. 그래, 감독은 관객의 미래니 참지 뭐. "니들 다 그렇고 그렇지?" 하는 초기 영화를 비디오로 복기하면서, 시선을 들키는 것에 부끄러웠어. 대범한 척 유쾌하게, "맞다, 맞어" 했지. 선수들은 자기 패가 들켜도 당황하면 안 되거든. 평론가들이 먼저 그리고 마니아들이 김빠진 탄산소다 같은 홍상수의 장면들에서 감독의 병 따는 탄력 있는 소리를 유추해내고는 열광했었지. 난해함을 일종의 선민의식으로 바꾼 거야. 그런데, 처녀막을 탐하는 <오 수정>을 지나 한심한 년놈들의 <생활의 발견>에서 "그래서 어떻다는 거냐?"고 묻고 싶어진 거라. 동안에 허우샤오시엔이나 브레송을 봤거든. 어? 홍상수 브랜드를 의심해도 되는 걸까 하는 차에,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봤지.
2. 구순기는 미래가 아닌 퇴행이다.
김태우. 영화 유학을 갔다 왔지만 교수로 오라는 데는 없고 딱히 할 영화계획도 없는 그는 수염만 예술가야. 어디 한둘이겠나. 평창동에 집까지 마련한 유지태가 씨벌씨벌 하는데도 선배 김태우는 참지. <오 수정>의 귀싸대기 맞던 문성근처럼 있는 놈 두려운 줄 알거든. 유명대학의 강사 살푸대 유지태, 그의 목표는 예술이 아니라 오로지 교수에 있어. 신독(愼獨)과 거리가 먼 이 먹물들은 끊임없이 입을 쉬지 않지. “우리 한국 남자는 너무 섹스를 좋아한다고.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문화가 너무 후지기 때문이라고”. 대화 사이사이에 담배를 빨고 술잔을 빨대. 첫눈을 선물로 주고받던 간지러운 대사 뒤에 중국집 종업원에게 교수라며 감독이라며 예술을 빙자한 수작을 건네고. 제자는 캔커피를, 술과 안주를, 립서비스를 건네지. 물론 교수님 저질 아니냐고 개기는 제자도 있었지만 당돌한 여제자는 상돼지 유지태 선생님을 빨아주고. 주면 받는 성현아도 한때 애인이었던 남자를 빨고. 음, 진영이 바뀐 뒤에도 서로 빨고 빨아주는 세상에 대한 풍자겠지. (평론가들이 감독을 알아서 빨아준다고 주례사 비평이란 말도 있잖은가.) 구순기(口脣期 oral phase)! 입술활동이 생활의 중심이 되는 시기로 먹고 마시고 빨고 말하고 물고 하는 입이나 입술을 통한 쾌감추구가 가장 강한 유아기. 홍상수는 프로이트를 빌려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갖는 일상생활에서의 정신병리를 조롱하지. 이 조롱의 제목을 액면그대로 순진하게 해석하자면 그냥 빨아주는 그런 여자랑 노는 그런 지식인의 미래는 뻔하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3. 관객은 감독의 미래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창밖의 젊은 여자를 보며, 똑같이 성현아에 대한 기억으로 플래시백하는 시퀀스, 좋은 테이크야. 거기다 성현아의 아파트를 어슬렁거리는 개를 활용한 컷의 붙임도 공부가 되었지. 그런 그를 선수라고 칸이 불렀대. 영화 점유율 50% 넘는 아시아의 지식인들이 궁금하겠지. 그러나 프랑스 중산층의 생각이 예술에 대한 대표성을 지닌다고는 생각지 않어. 남의 시선만 훔칠 뿐, 자기의 동작을 보여주지 않는 그 앞에 이제는 나 반성문 더는 못쓰겠어. 이 동어반복 앞에 더 이상 낙천적일수도 낙관적일 수도 없어. 못 빨아주겠다, 이거야. 시장의 공포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면 감동과 따스함으로 갈 순 없나? 끌어당김도 미는 힘도 없는 그 지리멸렬함에 "홍상수,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관객의 험악한 소리도 들리네. 관객은 감독의 미래 아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