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6 | [문화저널]
소쩍새 우는 고향에서
김도수 / 진뫼마을 주말명예이장(2004-06-12 09:40:46)
현호야!
꽃피는 봄이 고향에도 왔다 갔단다. 앞산과 동네까끔에 산 벚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지고, 강변엔 자운영 꽃이 붉게 피었다 지고 지금 너희 집 마당엔 잡초들이 푸른 멍석을 깔고 민들레 홀씨 되어 마을 곳곳으로 다 날아가 버리고 꽃 대가리만 덜렁 남아있단다.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기 시작하면 해마다 찾아오는 소쩍새가 올해도 어김없이 마을에 또 찾아왔단다. 날이 저물며 소쩍새 구슬피 울어대기 시작하는 주말 저녁, 마을회관 앞 모정에 앉아있는데 한동안 마을에 안 계시던 정호네 어머니가 비닐봉지에 생선 한 묶음을 싸 들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니 쓸쓸했던 마을이 갑자기 환해지며 회관 앞에서 떠들고 놀던 깨복쟁이 친구들이 오늘따라 겁나게 보고 싶구나.
집으로 가는 정호네 어머니 뒷모습을 바라보니 먼 곳으로 떠나 까맣게 잊고 지내던 부모님들이 갑자기 한 분 한 분 떠올라 마을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윗것테 너희 집부터 시작해서 오금이네 집까지 내려왔다가 바로 옆에 붙어있는 우리 집을 바라보니 ‘아이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떠나가셨지’ 생각을 하니 평소 잊고 지내던 부모님이 오늘따라 무척 보고 싶구나. 마음은 아직도 부모님 곁을 떠나지 못한 어린애인데 우리 나이가 벌써 40 중반을 넘어선 믿기지 않는 현실에 그만 두 눈을 감고서 소쩍새 소리만 하염없이 듣고 있었다.
현호야!
오늘밤은 어쩌자고 소쩍새가 한꺼번에 서 너 마리씩 몰려와 이리도 구슬피 울어대는지 참말로 미치고 환장 허겄다. 오늘따라 혼자 고향에 왔더니 잠은 안 오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밤마다 모여들던 뜨근뜨근한 큰 집 골방이 그립구나. 그 때 너랑 문수 형이랑 골방에서 어떻게 세상을 헤쳐 나갈 것인지 한 숨을 푹푹 내쉬며 신세타령을 하던 그 봄날이 불현듯 떠오르는구나. 재수를 해서 대학을 갈까, 서울로 돈을 벌로 갈까, 갈팡질팡 고민을 하던 그 때도 오늘 밤처럼 소쩍새가 구슬피 울어댔지. 밤마다 소쩍새가 어찌나 구슬피 울어대던지 우린 골방에서 결국 전주로, 서울로 모두 떠나고 말았지.
부모님께서 항상 우리들 곁에 머물러 계실 것만 같았는데 이젠 고향 마을은 자식새끼들 다 떠나가 버린 어머니 홀로 집 지키는 외로운 마을이 되어버렸구나.
현호야, 소쩍새 떠나기 전에 고향에 꼭 한번 내려 오거라. 매운탕에 쐐주나 한잔 찌클며 흘러가는 세월을 붙들고 옛 추억을 더듬어보게.
그럼 잘 지내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