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5 | [서평]
전설의 이야기로의 초대
장미영 전북대 강사(2004-05-23 14:42:22)
김훈 저 [현의 노래]
천 년을 훨씬 넘게 옛 삶터를 감돌며 유유히 떠다니는 전설의 이야기들. 그렇게 오래 된 이
야기가 있는 민족은 얼마나 행복한가. ‘역사적으로 유서(由緖)가 깊다’는 말은 ‘민족적
자긍심’이라는 말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 어설피 서너 구절로 드러났
던 대가야의 악사(樂士) 우륵과 그의 가야금에 관한 짧은 설화가 소설가 김훈에 의해 새
롭게 태어났다.
기원전 10세기에서 서기 1세기 사이에 존재했었다는 가야는 정확한 연도나 사회 상황을 전
하는 문헌사료가 없다. 가야의 역사를 기록했다는 ?가락국기?는 전하지 않는다. 가야 이
야기는 수로신화나 탄금대에 전설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처럼 오랜 세월동안 묻혀지고 잊
혀졌던 가야가 새롭게 소생하게 된 것은 김훈의 엄청난 상상력과 추측의 결실이다. 김
훈은 2003년 내내 서울 서초동에 있는 국립국악원 안의 악기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옛
악기들을 들여다보면서 그 악기들 내면에 잠들어 있을 무언가의 소리를 듣고자 귀 기울이
고 또 기울였다고 한다.
?현의 노래?에는 다양하고 풍성한 소리들이 등장한다. 장례 행진을 이끄는 쇠나팔 소리,
상여를 뒤따라가는 사람들의 울음 소리, 가래가 끓는 노인의 기침 소리, 시간을 쪼개내는
장끼의 울음 소리, 대 숲을 흔드는 바람 소리, 빈 들을 스치는 바람 소리, 억새밭의 바
람 소리, 쪼그리고 앉은 여자의 오줌 소리, 떡갈나무 숲의 빗소리, 풀벌레 소리, 새벽 닭
의 울음 소리, 아침 새의 우짖는 소리, 철마다 바뀌는 물 소리, 대장간의 쇠망치 소리,
다듬이 소리, 눈길에 소달구지가 미끄러지는 소리,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군사들의 말발굽
소리, 나룻터 뱃꾼들의 고함 소리와 노랫 소리, 강언저리의 수선거리는 숲의 소리, 낙
동강의 새 떼 소리, 새벽까지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 무성한 수숫잎의 서걱거리는 소리,
꼬리를 길게 뻗치는 피리 소리, 밭 두렁에 모여 앉아 지껄이는 사람들 소리 등. 이러한
소리는 잠든 고악기의 적막 속에서 작가 김훈이 끌어낸 옛 사람들의 삶이자 우리들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며 오늘의 우리가 막연히 추측하는 민족의 정취이다.
소리는 한순간의 찰나와 같이 느껴지지만 그것을 들었던 기억은 여기저기에서 문득 문득 향
수로 피어난다. ‘소리는 늘 새로움으로 덧없는 것이고 덧없음으로 늘 새롭다.’ 덧없으나
늘 새로운 소리처럼 ?현의 노래?는 민족의 옛 이야기를 가끔은 꿈 속에서나 상상의 세
계에서 감동적으로 경험하도록 전설의 현장으로 우리를 이끈다.
2004년에 되살려낸 기원전 5세기의 가야금 소리는 홀로 우뚝 아름답지 않다. 우륵의 가야
금은 당대의 일상적 삶의 소리와 엉키는 한편 시대의 욕망과 탐욕과 더불어 소리를 낸다.
우륵은 칼과 창으로 세상을 휘어잡으려 했던 야심 찬 인간들과 특별히 따로 구별되지
않는다. 가냘픈 명주실 12가닥의 가야금 소리는 끔찍한 살생과 버무려지고 무기를 만드는
쇳소리와 함께 한다.
명주실과 쇳덩이, 현의 소리와 쇠의 소리, 그것은 각기 스스로 자족한 세계 안에서 꿈꾸는
인간의 욕망이었다. 악기든 무기든 그것들은 모두 인간의 몸이 지닌 결핍을 메우려는 인
간의 보완물이었다. 김훈의 에세이, ?자전거 여행?에 등장하는 현대의 발명품, 자전거도 인
간 의 발을 연장시키려는 인간의 욕망과 꿈의 산물이다.
?현의 노래?는 현과 칼로 상징되는 역사적 인물들을 대조적으로 그려내는 듯 하면서도 선
과 악으로 그들의 삶을 단죄하지 않았다. 우륵은 순장의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던 백성들
속에서, 고을들을 태우고 부수는 연기와 말 먼지 속에서, 우물과 시궁창을 메우고 썩어가
던 시체들 속에서 가야금을 탔다.
한 때 서슬이 퍼랬을 가야의 늙은 왕은 항문이 열려 똥오줌을 저렸고 창자가 항문 밖으로
삐져 나와 있어 밑살에 수건이 스칠 때, 진저리를 쳐야 했다. 용맹스런 신하든 젖먹이 아
이든 젊은 부부든 나라의 명령 한 마디는 어느 순간 임금의 시체와 같이 생매장되는 순장자
가 되었다. 그 죽음에 우륵의 노래와 춤이 있었다. 순장을 피해 도망갔던 침전상궁 아라
는 우륵의 제자 니문과 한 때를 살다가 기어이 발각되어 순장을 당하고야 말았다. 그 죽
음에 우륵의 가야금이 소리를 내었다. 적군이었던 신라에 몰래 무기를 대던 가야의 대장
장이 야로는 그 대담함 때문에 칼을 맞아야 했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호기를 자랑했고 가
야 정복의 꿈을 이룬 신라의 이사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죽었다. 신라에 투항한 가야의
태자 월광은 절벽 위 초막에서 실종됐다. 우륵의 아내 비화는 독사에 물려 죽었고 우륵도
객혈하던 중 가래에 질식되어 죽었다. 모두 죽었다.
그 죽음들은 각각 형태는 다를지라도 한결같이 비루하여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김훈이
죽음을 통해서 살피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소리는 몸 속에 있지 않다. 그러나 몸이 아니면 소리를 빌려 올 수가 없다. 잠시 빌려오
는 것이다. 소리는 몸 속의 숨이 세상의 바람과 부딪치고 비벼져서 떨리는 동안만의 소
리다. 이 세상에는 같은 말소리나 같은 노래란 없는 것이다. 세상은 그 이전에 없었던 세
상으로 새로이 열리는 것이다. 사람의 몸이 소리를 빌리고 사람의 마음이 소리를 이끌어,
그 새로움은 언제나 새롭다. 새로운 소리에 사람이 실려서 사람도 새로운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인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아름다운 영혼은 순수한 차이를 느끼는 긍
정적이고 확정적인 새로운 사유의 이미지를 갖는다’고 했다. 우륵은 “지금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순간적으로 느꼈고 그 차이도 느꼈다.
“북은 가죽의 소리이고 피리는 바람의 소리이다. 징은 쇠의 소리이고 목탁은 나무의 소리
이다. 소리의 근본은 물(物)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런데 그 물(物)은 울려서 사람을 흔든다.
울림에는 주객(主客)이 없다. 그래서 소리가 울릴 때, 물과 사람은 서로 넘나들며 함께
울린다.” 서로 차이가 있기에 넘나들 수 있고 넘나들 수 있기에 함께 울릴 수 있고 함
께 울릴 수 있기에 하나의 협화음으로 합일을 이룰 수 있다. 우륵의 말은 전체의 관점에
서 다원주의적인 사고로 세상을 대할 때, 역사는 오늘을 사는 존재들에게 미래를 펼칠 것
이라고 강변하는 듯하다.
우리 인간이나 동물, 식물, 광물 등의 모든 존재들은 각기 독특한 그 나름의 특성을 갖고
있다. 그 다양한 특성처럼 모든 존재들은 자기 나름의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욕망
하고 꿈을 꾼다. 살아있는 동안은 모든 존재들이 그 나름대로 이야기를 생산한다. 각각의
존재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은 이야기끼리 서로 대화하며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전설로 부유하던 우륵의 이야기는 김훈의 손에 새로이 실리면서 우리 민족의 이야기로 새롭
게 태어났다. 이순신을 이야기했던 ?칼의 노래?와 비슷한 운율의 제목인 ?현의 노래?에서
우륵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민족이며 역사며 인간에 대한 ‘다시-보기’를 하라고 촉
구한다. 거듭 거듭 소생할 현재의 우리이야기는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노래를 해야 할지....
.. 고단한 숙제가 주어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