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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5 | [삶이담긴 옷이야기]
<삶이 담김 옷 이야기> -승가의 옷
최미현(2004-05-23 14:29:49)
<삶이 담김 옷 이야기> 승가의 옷 건너편 산 능선은 참 눈에 익다. 늦은 밤에도 눈을 감고 걸어도 내 발끝이 저절로 찾아 갈 것 같다. 세세생생에 이곳은 부처님의 땅이라 도솔산 도솔궁이다. 도솔궁이라고 이름하기에는 참 작은 집에 계시는 선운사 도솔암 지장 보살님은 오백년 세월을 두고 얼마나 많은 중생의 원을 간직하고 계실려는지. 그냥 자주 놀러 오라는 스님의 말씀대로 처음에는 &#48283;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현호색 꽃이 군락을 이루는, 상사화가 붉은 눈물 같은 그림자를 드리는 호젓한 산길을 커다란 나무와 동학혁명의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걸어 다녔다. 새벽이면 같은 시간에 수도 없이 많은 모든 절에서 동시에 도량석을 하고 예불을 드리는 그 동시성을 생각해 보면 부처님의 법이 이 땅에 존재해 온 오랜 세월을 되뇌일 수 있었다. 그러다 절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기도를 하게 되었다. 어느 해 봄인가 생식을 하는, 베일 것 같은 눈매에 단정하기가 맑은 얼음 같은 기도 스님이 계셨다. 하루는 이 스님이 한글로 독경을 시작했는데 듣고 있자니 눈물이 나왔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 눈치도 보이고 해서 슬금슬금 눈물을 훔치며 울었는데 점점 눈물이 쏟아져 염치 불구하고 펑펑 울었다. 눈물도 전염이 되는지 나중에는 기도하던 모든 사람들이 다 울었다. 그런 인연으로 나는 그 스님의 은사 스님으로부터 물려 받았다는 누비 두루마기를 고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다후다 겉감에 명주 솜을 두고 재봉틀로 촘촘히 누빈 두루마기는 그 당시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만든 것만은 틀림이 없는데 30년 세월이 지나 고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선 것이었다. 하안거가 끝나면 &#52287;으러 온다는데 작업실 책상 밑에 던져두고 한달을 넘겼다. 어느 날 커다란 회색 쥐가 온 집을 헤집고 다니는 꿈을 꾸었다. 아무리 쫓아내려고 해도 쥐는 도망을 다니는데 한 늙은 스님이 지팡이로 내쫓는 것이었다. 내가 감사의 인사를 드리자 네가 왜 나를 박대하느냐 하며 꾸지람을 하신다. 깜짝 놀라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15분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꼬박 앉아서 수선을 했다. 부처님의 제자 마하가섭은 부처님께 물려받은 옷을 평생 누덕누덕 기워 입었다. 그는 부처님의 만류에도 기운 옷을 벗지 않았으며 평생을 광야에 머물렀고 탁발 걸식으로 살고 분소의를 입는 것도 찬탄하고 싶다고 할 만큼 겸손하였다. 인도에서는 신이나 사제들은 봉제하지 않은 옷을 입었다. 천의무봉(天依無縫)으로 직조한 그대로 몸에 둘러 입었는데 사람의 손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았다고 해서 정의(瀞衣)라고도 한다. 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편단우견(偏袒右肩)이다. 스님들이 입는 가사는 이런 형태를 따르고 있는데 헝겊조각을 기워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논두렁 같다고 해서 5조가사 9조가사로 부른다. 아마 승속을 가장 엄연히 가르는 외형적인 상징은 이 가사가 아닌가 싶다. 절에서 신도들이 아무리 먹물옷을 입는다 해도 이 가사만은 두르지 못한다. 지난 1993년에 입적하신 성철스님은 두루마기 하나를 40년이나 입으셨다. 기우고 또 기워 누더기가 되어버린 그 두루마기는 스님의 무소유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남아있다. 비구란 걸사를 뜻한다고 했다. 3의일발(三依一鉢)에 머무름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본래의 정신이 흐트려지지는 않을 것이고 이런 청정한 분들이 계시므로 이 세상이 지탱된다고 믿고 있다. 아마도 그분들은 천상에서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깨끗한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이땅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하기에 누덕누덕한 두루마기를 입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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