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5 | [문화저널]
<남형두 변호사의 저작권 길라잡이> - 대발이와 솜사탕
남형두(2004-05-23 14:25:38)
<남형두 변호사의 저작권 길라잡이>
대발이와 솜사탕
약 2년 전에 모 방송국 주말연속극으로 <여우와 솜사탕>이라는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었다. 이 드라마는 이와 같은 인기 외에 십여 년 전 당시로서는 공전의 히트를 친 주말연속극 <사랑이 뭐길래>의 극작가로부터 자신의 대본을 표절하였다는 이유로 제소당하여 다시 한번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원고(<사랑이 뭐길래>의 극작가)의 주장은 이렇다. 이 두 드라마는 모두 남자주인공(대발, 강철)과 여자주인공(지은, 선녀)의 사랑과 결혼을 둘러싼 양가의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로 되어 있는데, 구체적으로 남자주인공의 집안은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분위기이고 여자주인공의 집안은 여성위주의 개방적인 분위기라는 점에서 대조적 양상을 띠고 있고, 남녀 주인공들의 어머니들은 여고동창 사이로서 양가간의 혼사를 앞두고 서로 껄끄러운 관계라는 점,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의 집안에 들어가 시집살이를 하는 과정에서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변화되어 간다는 점, 억눌려 살아온 남자주인공 어머니의 지위가 강화되어 간다는 점, 결혼 후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상당히 길들여진다는 점 등과 같이 아주 유사하므로, 표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피고는 표절한 적이 없으며, 나아가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소설이나 희곡과 같은 “가공적 저작물(fictional works)”에서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전형적인 장면 또는 필수장면에 해당하므로, 저작권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저작권침해를 인정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원고측 드라마가 당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여 상당수의 시청자가 그 내용을 알고 있고, 그 대본이 출간되었으며, 두 드라마가 모두 같은 방송국 작품이라는 점 등에서 피고 극작가가 원고측 드라마의 존재 및 그 내용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으므로, 피고가 원고측 대본을 이용했다고 하는 관계(“의거관계”)가 인정되고, 둘째 주된 줄거리는 소재(아이디어)로서 저작권의 보호대상은 아니나, 구체적인 줄거리와 사건의 전개과정은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되며, 나아가 인물들의 갈등구조와 그 해소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상호관계 구도와 구체적인 에피소드의 동일성(예를 들어 남자주인공의 어머니들이 골치 아플 때 넥타이 등으로 머리띠를 두르는 모습) 측면에서 두 드라마는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하였다(“실질적 유사성”).
드라마나 소설의 줄거리(plot)를 저작권의 보호대상으로 하면, 뒤에 이은 창작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측면이 있고, 이를 보호하지 않게 되면 비슷한 내용의 드라마들이 무분별하게 많아지는 측면이 있다. 미국 영화 <레이더스-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뱀이 우글거리는 동굴 안에 보물상자가 숨겨져 있고, 그 뱀을 쫓기 위해 주인공이 횃불을 휘두르는 장면, 정글을 뚫고 지나가는 사람이 갑자기 새떼가 날아오르자 깜짝 놀라는 장면 등은 이러한 종류의 작품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장면묘사로서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여우와 솜사탕> 사건에서 중년여성이 가족불화로 머리가 아프면 넥타이로 머리띠를 두르는 것은 그런 류의 드라마에서 반드시 수반되는 “필수적인 장면묘사”라고 보기 어렵다. 넥타이를 두르는 대신, 아스피린을 먹는 것으로 하였으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