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4.5 | [문화저널]
<화가의 산 이야기> - 신들의 영역, 8000미터의 도전
이상조 화가, 산악인(2004-05-23 14:21:39)
<화가의 산 이야기> 신들의 영역, 8000미터의 도전 지난 주 도봉산에서 작은 모임이 있었다. 5월 1일 배핀 아일랜드(Baffin Island)로 원정을 떠나는 3명의 원정대원들의 출정식이었다. 원정대와 가까운 산 친구들만이 모인 조촐한 모임이었다. 배핀 아일랜드는 캐나다 북동쪽에 위치한 섬으로 북극에 가까운 곳이기에 접근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운 곳이다. 전세 비행기가 그들을 그곳 얼음 위에 내려놓고 약속한 일자에 모터보트로 다시 데리러 가야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곳이다. 원정대가 그곳에 도착할 때는 바다가 얼어 있다가 4개월 후 원정대가 귀환할 때는 해빙이 되기에 보트로 귀환해야만 한다. 내셔널 지오그라피 1999년 1월호에 소개되었던 곳이기도 한, 인간이라곤 극소수의 원정대만이 찾아든 곳이기에 오염되지 않은 천혜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 배핀 원정대는 귀환할 때까지 문명세계와 연락할 방법이 없다. 그들 스스로 연락을 단절한 채로 등반에만 몰입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고난을 그들 스스로 해결하여야만 한다. 어려운 일이다. 짧게는 800미터에서 길게는 1200-1300미터의 수직의 암벽이 있는 봉우리가 50여 개가 있다는 곳인데 그들은 그 곳에다 몇 개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고 한다. 인간한계를 극복하려는 머메리즘을 실현할 적절한 곳이다. 그 날 도봉산에 모인 우리는 모두들 숙연하게 도봉산 신령님과 먼저 세상을 떠난 산 친구들에게 그들이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때마침 도봉은 온갖 꽃들이 만발하였고 바람은 그 꽃잎들을 하늘 높이 날려 올리는 흔치 않은 멋진 광경을 보여주며 그들의 장도를 축하해 주었다. 히말라야(Himalaya)는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로 눈(雪)을 뜻하는 히마(Hima)와 거처(居處)를 뜻하는 알라야(Alaya)의 합성어로 ‘눈의 거처’ 즉 만년설의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 히말라야가 영국의 ‘인도측량국’에 의해 대 측량사업이 이루어지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자 세계 열강의 산악인들이 히말라야의 고봉을 오르기 위한 경쟁에 돌입하였다. 특히 8000미터 이상의 독립 봉 14개를 오르기 위한 경쟁은 각국의 산악인들만의 노력이 아닌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루어진 전쟁과도 같은 경쟁이었다. 1895년 머메리가 낭가파르밧에 도전한 것을 시작으로 각국은 많은 산악인들의 희생과 실패를 딛고 차례차례 8000미터 고봉의 정상에 선다. 1950년 프랑스는 안나푸르나(Annapurna, 8091m)를, 1953년 영국이 에베레스트(Everest 8,848m)를 같은 해 독일이 낭가파르밧(Nanga Parbat 8,125m)을, 1954년 이태리가 K2(8,611m), 오스트리아가 초오유(Cho Oyu 8,201m)를, 1955년 영국이 캉첸충가(Kangchendzonga 8,586m), 프랑스가 마칼루(Makalu 8,462m)를 1956년 스위스가 로체(Lhotse 85,16m), 일본이 마나스루(Manaslu 8,156m) 오스트리아가 가셔브륨2봉(Gasherbrum2 8,035m)을, 1957년 오스트리아가 브로드피크(Broad Peak 8,047m)를 올랐고 1958년 미국이 가셔브륨1봉(Gasherbrum1 8,068m)을 1960년 스위스가 다울라기리(Dhaulagiri 8,167m)를 오른 후 1964년 중국이 자국 내에 있는 시샤팡마(Shisha Pangma 8,013m)를 오름으로써 8000미터 쟈이언트봉 14좌가 모두 등정되었다. 흔히들 이 경쟁은 산악인들의 순수한 등산의지 외에 ‘제국주의적 국민의식의 반영’이라는 배경을 갖는다고 한다. 19세기말 유럽의 상황으로 볼 때 당시의 히말라야 원정은 대외팽창이란 국가 정책과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8000미터 고봉 14좌가 모두 등정된 이후 또다시 히말라야에서 인간 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알프스에서처럼 바리에이션 루트와 벽 등반, 무산소 등반, 또한 개인의 14좌 완등 경쟁 등등... 1953년 독일의 낭가파르밧 원정대의 헤르만 불(Hermann Buhl)은 대장의 퇴각 명령을 거부하고 5캠프에서 표고차 1220미터를 혼자서17시간을 등반하여 정상에 선다. 그러나 41시간에 걸친 하산은 지옥 같은 것이었다. 그가 남긴 등반기 ‘8000미터의 위와 아래( Achttausand Drber und Drunter)'에는 그가 신들의 영역이라는 8000미터를 넘어 정상을 향해 오르고 내려 올 때의 고독한 고난의 상황이 감동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김영도 님의 번역서를 옮긴다. “...심한 피로가 엄습했다. 온몸을 얻어맞은 듯하고 숨이 가빠 헐떡거렸다. 살기 위해 필요한 산소를 얻으려고 그야말로 몸부림치는 느낌이었다. 다시 고소현상이 강하게 일어났다.-목이 타기 때문일까? 1미터 1미터가 의지의 싸움이다. 나는 나를 밀고 나가 드디어 어깨 가장자리에 섰다. 8000미터를 넘어선 것이다. 오후 6시였다. 이 사실을 알고 나는 놀랐다....여기까지 한 시간이면 될 줄로 생각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가지 못하겠다. 내 눈에는 정상이 아주 가까워 보인다. 바로 앞에 손으로 잡힐 듯이- 눈을 쓴 지붕 같다. 그러나 거기에 도달하기는 이제 글렀다. 지금의 내 처지로는 정상은 한없이 멀기만 하다...이제 조금은 용기가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참아가며 몸을 끌다시피 했다. 여기서는 오직 정신, 정신이 나를 명령할 뿐이다! 그 정신은 결국 위로 오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몸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짧은 설원을 가로질러 고생 끝에 암괴 위에 올라갔다. 드디어 정상 바로 밑에까지 온 것이다.... 이 바위 뒤에 정상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얼마나 멀까?...나는 더 이상 바로 설 수가 없다... 나는 네발로 기어서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드디어 나는 이 산의 최고 지점에 섰다. 저녁 7시였다. 지금 여기에 나는 지구가 생긴 이래 인간으로 처음 서있다. 내가 바라던 목표, 그 지점에 서있다. 그러나 마음이 취해서 잠길 행복감도 즐거운 환희도 일어나질 않는다. 승리자로서의 고양된 기분도 없다... 그저 모두 끝났다는 느낌뿐이었다!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눈 위에 쓰러졌다....나는 더 이상 위로 오르지 않고 더욱 전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생각하니 그것이 기뻤다. 아직도 멀었나 하며 위를 더 이상 바라보지 않게 됐으니 마음이 놓였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정상에서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하는 물음에 자연스런 답이 된 헤르만 불의 등정 기록인데 하산 시에 겪는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떨어지면 3000미터를 낙하하는 좁은 공간에서 서서 밤을 지새는 그의 고통스런 기록은 8000미터 위에서의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넘는 사투를 독자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피로가 덮친다. 나는 거의 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고개가 앞으로 숙여지고 눈이 그대로 감긴다. 졸음이 왔다. 갑자기 눈을 떴다.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된건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놀라서 나는 정신을 차렸다. 가파른 암벽에서 확보도 없이 -낭가 파르바트에서-발 밑에 허공이 입을 벌리고 있다. 시커먼 낭떨어지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눈을 뜨고 있도록 하지만 다시 잠에 취해버리려 한다. 나는 선 채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면서 몸의 균형을 잃지 않으니 이상하다. 내 슈톡은 어디 있는가? 아 큰일이다! 조용히! 조용히! 슈톡은 그대로 있었다. 나는 슈톡을 단단히 쥐었다. 추워서 등이 써늘하지만 괜찮다. 오늘 밤이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의지가 육체를 지배하면 육체의 고통은 느끼지 않을 것이 아닌가? 기온은 영하 20도 정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 이하는 아니리라. 달이 있으면 좋겠다. 자정쯤 되면 달이 뜨겠지. 그러면 나는 계속 내려갈 생각이다. 그때에는 밤도 그다지 길지 않을 것이다. 꾸벅꾸벅 졸며 나는 시간을 보냈다.... 달이 어디 있는가? 달은 정상 뒤에 숨어 있다. 결국 나는 밤새도록 여기 있어야 하는가? 이 좁디좁은 곳에서 아침을 기다려야 하는가? 그 때까지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이다.... 사면 여기 저기에 산들바람이 스쳤다. 주위는 다시 고요해졌다. 죽은 듯이 고요하다. 끝없는 침묵. 몸의 감각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추위는 더욱 견디기 어렵다. 손에는 두터운 장갑을 꼈지만 얼굴이 얼어온다. 두 손이 꽁꽁 얼어서 뻣뻣하다. 그러나 특히 발이 문제다. 추위가 몸 전체에 번진다. 발가락은 감각을 잃은 지 오래다. 처음에는 발가락을 움직여 보려고 했는데 내가 서있는 곳이 뒤뚱거려서 꼼짝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주 조심해야 했다... 이 밤의 장엄함이 나를 사로잡는다. 장려한 별 하늘이 머리 위에 펼쳐졌다. 나는 한참동안 하늘을 올려다보고 큰곰자리와 북극성을 멀리 지평선 위에서 찾았다... 배가 고프고 목이 타는 것이 절실히 느껴졌다. 그러나 내게는 아무 것도 없다. 시간이 빨리 가면 좋으련만 느리기만 하다. 너무 느리다. 이 밤이 끝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겠다. 그러나 멀리 저쪽 톱날 같은 연봉 뒤에 빛 한줄기가 비추더니 그것이 차차 위로 올라왔다. 동이 트고 있었다! 아침은 마치 구원의 손길 같았다... 드디어 마지막 별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날이 밝았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