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5 | [문화저널]
<김규남의 전라도 푸진 사투리>
김규남(2004-05-23 14:20:19)
<김규남의 전라도 푸진 사투리>
‘아, 그렁게’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라기보다 어쩌면 살아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뜻과 무관하게 별의별 일이 다 생기는 게 인생인 까닭에, 어떤 인생에 대해서건 섣불리 성적 매기려 드는 누군가에게는 그저 당신 인생이나 잘 챙기라는 말밖에 달리 무슨 말을 하리요.
“오빠가 지 동생을 소개를 히가지고 결혼을 힜는디, 어떻게 결혼을 힜는가 허머는, 군인에 가 있으먼서 지 동생을 소개를 헌거여. 하 이놈이 저 전라남도 완돗사람인디, 하이고 사람도 잘 생겼제, 키도 크제, 덕집도 이렇게 좋제. 돈을 갖다가 부대럴 휩쓸어 버러. 그렁게 군대생활 헐 것도 없이 밤나 휴가만 간다 이거여. 아 그런디, 아 돈을 어떻게 갖다 썼냐 허고 나중에 알고 봉게, 저그 성 하나가 광주 검사였었어. 자유당 시절 때 지미, 검사라 허먼 돈 갈쿠질헐 때 아닌가. 하 긍게 고놈이 욕심 나갖고 지 동생을 주기로 힜어.
그리가지고 요러케 결혼을 허게 되았는디, 그 아부지가 뭣을 아는 양반이등가, 죽었으먼 죽었지 그리 안 여운다고 그러드라네. 근디 둘이 좋아서 산다는디 어치케 헐 거여. 그리갖고 목포서 결혼식을 히 가지고 완도를 가는거여. 아 그런디 저짝으 시아버지 되는 양반도 나이가 멧살이먼 히야허고 글안허먼 안 히얀다 이거여. 그런디 한 살을 까 버맀어. 글안허먼 가운데 살다가 죽는다 이거여. 근게 나이를 쉭여 버맀어. 쉭여 가지고 결혼을 힜어.
완도서 목포 나올 때 그땟돈 팔백만언이먼 큰 돈이여. 요샛돈으로 억대가 넘는 돈여. 하이튼 이백만언만 주먼 집 존놈 샀응게. 그런디 그놈으 돈을 삼년에 싹 녹야 버맀어. 한 테기 없이. 고 놈을 가지고 빠에 쓰고 머 지나가는 까마구도 주고, 그리가지고 한 삼년 잘 살았제.
(그 후 곡절 끝에 전남 무안 앞바다에서 김 양식을 하게 된다.) 그리가지고 그 해에 김을 아 몽땅 힜어잉. 그렁게 몽땅 박어가지고 여름에 팔얼달으 씨만 집어 느먼 되는 판인디 인자 일을 거운 마무리 히 가지고 암시랑않다: 히가지고 나는 여그를 왔고잉. 아 갑짜키 저그 로 점심을 먹으로 갈라고는디 느닷없이 택시가 딱 가로막도만 동서 죽었다고려, 열흘배끼 안 됐는디 만난 지가. 그리서 쫓아가서 봉게로 가겟집에서 쏘주를 먹다가 기관지로 넘어가 버맀다 이거여. 그날 저녁에 갖다 파묻어 버리고 도주히 버맀어. 왜 도주히 버맀냐. 바다에다가 몽땅은 박어 놨지마는 동네서 누구도 사들 안 히버러. 가만 놔 두먼 내 것인디 멀라고 사건는가 동네 것인디, 그르고 사방으서 빚진 놈만 달라들어. 그 많은 돈을....., 니기미 빚 안 졌겄어.
그리 가지고 말허자먼 자기 시누 되는 사람이 완도에서 거시기를 혀. 양주장을 허는디 근디, 그 참 히안허네 이얘기 들어보먼. 그 시누으 시아부지가 압을 못봐. 어찌서 압을 못 보는고니는 양주장 허고 돈이 만헌게 도독놈들이 와 가지고 양잿물을 찌클어 버맀어. 돈 뺏어 갈라고 그리서 두 눈이 다 멀어 버맀네.
그 양반이 말허자먼 사둔을 데리다가 방을 하나 줬어. 방을 하나 주어가지고 거그서 살먼서 뇌력허고 사는디, 아 그렁게 사람 사는 것 보먼 참 다 살 구녁이 있어. 참 히안혀. 아 열심히 뇌력허고 사는 것 시장바닥으서 다 빌 것 아닌가. 어치게 되았든지.
그런디 거그서 완도 사람 하나가 있었는디 여그로 말허자먼 버스 운전사여잉. 육지로 말허자먼, 거그는 뭣이 있는고니 배로 여그 전히 주고 저그 전히 주고 허는 사램이여. 아 그런디 고놈을 하루도 안 움직이먼 안 되야. 둘이 히여잉, 교대 히 감서. 아 그런디 장모 항갑이라고 이놈을 타고 가먼 좋은디 손님들 저기헝게 안 되고 인자 쪼고만헌거 경운기 대그빡 놓아가지고 타는 놈 있어. 저그집 식구만 타고 우르러니 갈라고잉. 그리서 갔다 오다가, 밤에, 그이튿날 교대히양게 갖다 오얄 것 아녀, 아 갖다 오다가 돌풍을 만나가지고 이놈이 어퍼저버리 가지고 식구들이 싹 다 저기히 버맀어. 그런게 저는 시엄을 잘 치고 헌게 살어 나왔어. 그러니 앵길디 댕길디가 없제잉. 저그 가족들 싹 죽어 버맀응게잉.
아, 그렁게 그 아짐씨한티 와서 쫓아만 안 내먼 내가 돈 벌어다 대 주고 그럴텅게 삽시다, 삽시다 건이를 허는거여 인자. 그렁게 옆에 사람덜이 그것도 갠찬헌 일 아니냐, 자식 갈치고 돈 벌어다 주는디 무슨 상관있냐 이거여. 그리서 이렇게 살아 그리서 한 칠팔 년을 살았어, 칠팔 년을 살았는디. 요놈이 가마니 생각헌게 꾀가 나덩가. 갈려 버렀어. 아 넘으 자식 갈치제 머 소용있겄어? 근게 하 이놈이 헛배 빠져 가지고 인자 갈려 버렀네.
아 그리도 식당까지 맨들아 주었드라고, 아 광주 터미널 옆으 OO식당이라고 다 간판까지 써서. 긍게 고생도 지지리도 힜어. 밤 열두시 안에 자 보덜 못 허고 네 시먼 일어나서 히얀다 이말여, 손님 받얼라머는 네시는 일어나서 히얀다 이말여. 그리도 머시매 둘, 가시내 둘 다 대학 갈쳤어. 지금은 멋을 허는가 몰르겄고만 그때 갈리고.......
여느 허름한 백반집, 할머니의 표정 없는 얼굴에, 박복한 놈의 인생, 되돌릴 수만 있다면 백번이고 되돌렸을 세월의 시침들이 구겨져 있지만, ‘베랑박’에 걸어놓은 자식들 졸업 사진, 그 빛나는 인생 훈장은 오늘도 태깔 좋게 빛나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