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5 | [문화비평]
신세대와 촛불시위는 없다
변희재(2004-05-23 14:11:34)
총선이 때문에 잠시 중단되었던 촛불시위가 다시 열리고 있다. 한나라당의 홍사덕 전의원 같은 사람은 촛불시위 참여자들이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반면 이와는 반대로 촛불시위야말로 6월항쟁을 잇는 새로운 세대의 민주주의 운동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사실 2030 세대의 새로운 정체성에 관한 논의로 귀결된다. 특히 이미 10여년 전부터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던 신세대, 그들이 누구냐는 문제인 것이다.
80년대에 운동권이 있었고, 90년대에 신세대가 있었다. 1994년도에는 수백 만 명의 신세대들이 그렇게 세상에 다시 태어났다. 그들은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개성이 강하고, 주체성도 강하고, 좋아하는 것은 좋다고 말하고, 싫어하는 것은 싫다고 말하는 인종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 안에는 어떠한 계급적 구분도 없었다. 공장에서 신나게 일하는 사람은 "내가 좋아서 한다"며 신세대가 되었고, 압구정 오렌지들도 "내가 좋아서 돈 쓴다"라며 신세대가 되었다. 그렇게 거대한 세대 그룹이 90년대를 유령처럼 떠돌았고, 그 유령들은 언론 매체 곳곳에 나타났다. 2004년 대한민국에 그 신세대들은 이제 서른이 되었다. 그 많은 신세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최근 KBS <일요일 101%>에서는 '꿈의 피라미드'라는 취업시켜주는 코너가 방영되고 있다. 8명의 취업준비생들이 서로 경쟁하며, 서바이벌식으로 동료들을 하나하나 떨어뜨리며 최후의 승자가 된 한 사람이 취업에 성공할 수 있다. 건국 이래 최대의 실업대란이라는 현실이 오락프로그램에서도 취업이란 미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그 프로그램에서 한국 경제를 망친 주범들인 재벌 회사의 이사진들이 취업을 위해서는 어떠한 인간형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뛰어나고 협동심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 새로운 리더십이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미 그들은 90년대에 신세대로서 그런 능력들을 모두 갖추지 않았던가? 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걸까?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 어느 취업 준비생이 올린 "취업하려면 보수화돼라"라는 글이 잊혀지지 않는다. 모의면접 경시대회 때 이라크파병, 노사분규, 조중동 등 언론관에 대한 질문에 취업준비생들은 모두 보수적인 답변으로 일관하더라는 거다. 그들이 정말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기 보다는 취업을 하려면 그런 대답을 해야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 그 필자의 의견이었다.
매스컴 취업 전문사이트의 조사결과도 의미심장하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신문사 순위에서 취업준비생들은 한겨레신문을 꼽았다. 조선일보는 7위였다. 반면 가장 취업하고 싶은 신문사 순위는 조선일보가 당당 1위에 꼽혔다. 이를 보고 그래도 취업준비생들이 조선일보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올바른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측면만 보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파병, 노사분규, 조중동 언론관 등 자신의 생각과 다른 답을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이, 요즘 청년들은 조선일보가 언론의 정도를 걷지 않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회사에 입사하기를 열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그들은 영악하게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고, 그 세상의 이치란 정도와 명분보다는 권력과 돈이다.
그토록 당당히 자기 개성을 추구한다던 신세대들의 현재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신세대들의 바로 밑세대들, 현재의 대학생들의 모습은 더욱 더 비참하다. 더 이상 손을 써볼 수 없을 정도로 바닥에서 헤매고 있다.
대학생들의 의식이 끝없이 보수화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돌파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80년대에는 대학이 정치와 문화를 선도해나갔다. 대학을 중심으로 진보적인 정치와 문화가 전 사회로 퍼져나갔다. 90년대 이후부터 그런 거대담론이 통용되지 않자 대학은 제도권 대중문화에 편입된다. 그러면서 경제구조 문제까지 겹쳐 취업난이 지속되자 그들은 기성세대와 제도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대학생이라고 내세울 것이 뭐가 있는가? 그들의 의식이 더 젊은가? 더 창의적인가?
그나마 90년대 후반의 벤처붐 때 대학은 잠시 들썩거렸다. 서울대학교만 하더라도 학생들의 30%가 창업을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러다 벤처붐이 죽으면서, 서울대학교는 세계최대의 고시학원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고시를 하지 않는 나머지는 취업에 매달린다.
수십번의 취업시험에 떨어지다보면 제 아무리 도전적이고 패기넘치는 청년이라도 기성세대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 자신만의 가치관을 의심하며, 제도에서 원하는 사람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면, 자신이 제도권으로 진입했을 때, 거기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을 경멸하는 데까지 다다르게 된다. 고시공부할 때까지 정말로 법과 정의를 따르는 법관이 되겠다는 애들이 고시만 붙었다 하면 그때를 잊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청와대와 각 정당은 지금의 청년실업문제를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공기업 채용을 늘린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10대와 20대 청년들의 정치적 경제적 독립문제와 관련되어있다.
독일이나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도 청년실업문제로 골을 썩고 있다고 자위할 문제가 아니다. 국민소득 3만달러의 정체된 사회와 아직 1만달러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사회의 실업문제는 다르다.
독일이든 프랑스든 미국이든, 그들은 10대 때부터 정당생활을 하고, 때론 주식투자를 하고 대학에 입학하면 자립을 하고, 선거에 출마하기도 한다. 반면 우리의 청년들은 결혼을 하고도 집에서 지원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10대 때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죽일 놈 되고, 대학 때 스스로 독립하면 삐딱한 놈 취급당한다.
그렇게 20대 중반까지 아무 것도 혼자서 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고, 개떼몰이식으로 취업전선으로 내몰며, 거기서 탈락한 자를 비웃는다. 그런 구조에 편입되기 싫어 창업을 하려해도 창업에 대한 지원책은 전무하며, 창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 만큼 정치적 경제적인 자립을 할 수 있는 역량이 되는 청년은 거의 없다.
이런 구조를 그대로 놔두고 백날 청년실업대책을 마련하니 똑같은 결과만 되풀이되는 것이다. 오히려 실업대책을 마련하면 마련할수록 대학생과 청년들의 의식은 더 보수화되고 미래사회발전의 동력은 점차 줄어든다.
마치 신세대들이 세상을 다 뒤바꿔놓을 것 같이 요란한 광풍을 휘몰아쳤던 90년대 신세대론도 허구이고, 지난 대선 이후의 세대교체 바람도 허구이다. 지금의 우리 젊은이들은 점점 더 공고해지는 사회구조 속에서 취업대란에 신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과 의회의 권력투쟁에 불과한 탄핵문제에 목을 매단다? 사회 구조를 개혁하자는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의 생존권과 관련된 실업과 명퇴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러한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능력으로 치부하고 서로 살벌한 경쟁체제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다. 신세대의 동력이 없는데 젊은세대의 촛불시위의 운동성만 살아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