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5 | [문화와사람]
디지털 시대에 천년 전의 메시지, 학성강당의 김수연 할아버지
최정학(2004-05-23 14:09:08)
공자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삼는 학문. 실천적 도의(道義)에 입각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의 실현을 본지(本旨)로 삼아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준봉(遵奉)하는 학문이다. 공자가 죽은
후 맹자는 인의(仁義)를 내세워 성선양기(性善養氣)를 설하는 동시에 인정(仁政)의 필요성
을 주장하였고, 순자(荀子)는 예(禮)를 주장하여 성악설을 내세우는 동시에 권학(勸學)의
필요성을 주장하였으나 전국 시대 말기에 이르러 이 학문은 쇠퇴하였다.
다시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소멸하는 듯하였으나 한무제에 이르러 다시 부흥하여 교학으로서
의 태세를 갖춤으로써 유학이 성립되었다. 국학으로 채택되어 정치적으로 지지를 받는 체제
속에서 유지되어온 학문으로 전한(前漢)시대에는 경세치용(經世致用:정치적 실용)의 학
문으로, 후한(後漢)시대에는 훈고학(訓
學)으로 발달하였고, 당나라 때에는 정의(正義)의 학으로, 송(宋)나라 때에는 성리학
(性理學:朱子學)으로, 명나라 때는 심학(心學), 청나라 때는 실사구시에 바탕한 고증학
(考證學)으로 변천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유학에 대한 백과사전의 설명이다.
유학은 오늘날 우리 시대 학문의 주류에서 밀려난지 오래다. 서구의 사고방식을 배우며 자
라난 세대에게 그것은 이미 지나가버리고 잊혀져버린 과거의 세계관이 된 것이다. 심지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다.
하지만 이미 ‘폐기’처분되다시피 한 유학의 맥을 잇고 있는 사람이 있다. 김제 학성강당의
김수연(78)할아버지. 동래 오익수 선생과 서암 김희진 선생에게 천문, 지리, 역학, 성리학을
전해 받고 스물아홉이 되던 해 농사일 틈틈이 후학을 양성하던 것이 지금까지 50여년이
되었다. 현재 선생께서 배출하신 문하의 제자들만 수천, 대성하여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제자 또한 무수히 많다.
김할아버지는 현재 김제시 성덕면에서 후학들을 양성중이다. 할아버지의 뜻을 기린 그의 자
손들이 해학(海鶴) 이기(李沂) 선생이 공부했던 서당터에 학성강당을 차려준 것. 지난 199
9년 설립된 학성강당은 입소문과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현재는 이곳에 상주하며 할아
버지께 한학을 배우는 일반인이 17명에 학교가 끝나면 이곳에 와서 한 시간씩 한문공부를
하는 초등학생들이 60여명에 다다른다. 방학이 되면 서울 등 대도시에서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방이 부족할 정도라고 한다.
사람의 착한 본성을 깨달아야
김할아버지와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할아버지께서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상당히 꺼려하신
것이다. 할아버지를 취재하기 위해 2박 3일 동안 학성강당에 진을 치고 기다리던 방송사도
있다고 하니 그의 고집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하긴 그런 고집이 아니었다면 이 시대
에 한 평생을 유학에 전념하며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서적 가득한 할아버지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왜 언론과의 만남을 피하시는지를 여쭤볼 수밖에 없었다.
“천지는 만물을 순환시키면서도 그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지 털끝만치도 나 잘했다고 하
지 않잖아. 사람도 천지의 기운을 받고 나온 것이야. 자연스러운 것을 가지고 뭘 잘했다고
자랑을 해. 신문이나 테레비에 나오는 것은 결국 내 자랑 밖에 안 되는 거지”
명쾌하고도 간결한 논리다. 한 평생을 유학에 전념하다보니 이제 그것은 학문의 차원을 넘
어 그의 생활에 체득된 것처럼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당연스럽게 느껴진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유학 중에서도 중국 송?명나라 때 주자에 의해 집대성된 성리학. 성리
학은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로 대표되는 인간의 본성에 관해 현재까지도 명확한
결론 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유학의 대표적인 학파다. 그는 이 성리학만이 이 시대
의 타락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지금도 성리학에서는 성선설과 성악설 둘 중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확답이 내려지지 않는
상태지. 어려운 문제야. 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착한 것이 사실이지”
수백 년이 넘게 지속되어온 성리학의 주된 논쟁거리를 할아버지는 ‘성선설’이 옳다는 것으로
간단하게 귀결 짓는다. 까닭은 이렇다. 만약 ‘성악설’이 맞아 사람의 본성이 악한 것이 진
실이라면 세상의 도덕이나 윤리, 유교 같은 학문 등이 처음부터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악한 일을 저질러도 그것이 사람의 본성에서 기인하는 것인데 무슨 도덕
, 윤리가 필요할 것이며, 참되게 살기위한 학문 따위가 어떻게 생겨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의 본성이 착한데도 세상에 온갖 악이 난무하느냐. 이것이 문제다.
본격적으로 성리학에 관한 말이 나오자 김할아버지의 말에 힘이 들어간다.
“사람의 본성이 착한데도 악한 일들이 난무하는 것은 다 핏 기운 때문이야. 사람한테는 9개
의 구멍이 있어. 핏 기운이 몰려 있는 곳이지. 그래서 눈구멍은 좋은 것만 보려고 들고 나쁜
것은 안 보려고 들어. 귓구멍은 좋은 말, 달콤한 말만 들으려고 하지 쓴 말을 들으면 획
토라져버리고 다시는 안 들으려고 하는 거야. 콧구멍도 마찬가지야. 좋고 단 냄새만 쫓아
가지 독한 냄새, 송장냄새 좋아하는 콧구멍은 없잖아.
성리학을 배우는 것은 자기 양심, 즉 착한 본성을 깨달아 몸뚱아리로부터 비롯되는 이런 핏
기운을 물리치기 위함이야“
가랑비에 옷 젖듯
김할아버지의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런 성선설적 사상에 영향을 끼친 스승은 율곡학파였던
서암 김희진 선생이다. 김할아버지는 지금도 서암 선생께 사사받은 것을 커다란 행운으로
여기고 있다.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는 제자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도 커다
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똑같은 성리학 경전일지라도 사람에 따라서 그 뜻은 수백, 수만 가지로 달라. 성선설과 성
악설도 그래서 나뉘는 것이고. 헌데 서암 선생께서는 나에게 인간의 본래 성품이 선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셨지. 선생께 인간의 본성이 더없이 맑고 착하다는 것, 그래서 본성을 깨
닭아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듣다보니까 이슬비에 옷 적셔지듯이 나도 모르게 그 생각에
적셔지게 되고, 어느 날 정말로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해 깨닭게 된 거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야. 매일매일 갈고 닦아야 해”
마침 할아버지께 한학을 공부하는 초등학생 두 명이 들어와 공부마치고 집에 돌아가겠다는
인사를 한다. 보통의 목례와는 다른 큰절의 약식 쯤 되는 인사다. 어린이들이라 할아버지께
인사를 하면서도 서로 장난하기에 바쁘다. 그런 아이들을 보는 할아버지의 얼굴엔 사랑
스러움이 가득하다.
“저녀석들이 여기서 공부한지 한 2년 쯤 됐나. 그사이 성질이 많이 순해졌지. 매일 보고 듣
는 말이 ‘어른들 말씀 잘 들어라’,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하는 말들이다 보니까 녀석들도
모르게 그런 생각들에 적셔지는 거야”
할아버지는 요즘 세태에 걱정이 많으시다. 흉악한 일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서양의 물질문명이 들어오면서 사람들이 점점 자신의 본래 성품을 잃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좋은 일만 하고 살수는 없는 거야. 누구나 나쁜 일을 할 수는 있는 거지.
하지만 진짜 문제는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짓을 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사람의 성품이 본래 나쁜 것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것이지. 나
쁜 짓을 한 사람에 대해서도 그 사람의 본래 성품이 악한 것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은 정
말 위험한 일이야”
때문에 할아버지는 인간의 본래 성품이 선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점을 몇 번이고 강
조한다.
“조선 말엽에 잘못해가지고 나라가 망한 것만 들춰서 성리학이 구식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때만보고 성리학을 낡은 것이라고 보는 것은 미련한 소견이여”
어쩌면 현대사회의 병리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은 ‘낡은 것’이지만, 소박하고 울림 있는 김할
아버지의 말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