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5 | [저널초점]
<테마기획> 현장일기 '일터'를 찾아서 2
김회경, 최정학(2004-05-23 13:59:12)
밤을 달리는 투잡스족들, 대리운전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다양하고 새로운 직종들이 생겨나고 있다. 대리운전도 그중 하나. 음
주 후 차를 가지고 가야 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운전을 해주는 신종직업이다. 어려운 경기와
강화된 음주운전 단속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일명 ‘뜨는’ 직종이 되었다. 밤에 일
한다는 특성상 부지런한 직장인들에게 투잡스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 이들에게 대리운
전은 본업이 끝나고 몇 시간 동안 제법 짭짭한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최상의 아르바이트
다. 고객들에게도 택시비보다 약간의 비용만 더 지출한다면 차 걱정 없이 술자리 기분을
맘껏 즐길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직종이다.
귀빈대리운전을 하고 있는 김종열(42)씨. 그는 20여 년 동안 화물차운전을 하다가 3년 전
부터 중고차매매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중고차 거래가 뚝 끊기자 밤에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2년 전부터는 아예 대리운전 업체를 차려서 운영중이다
. “피곤하기는 하지만 대리운전이라도 해야 가족들을 먹여 살리니까 하고 있는 거에요.
평생 차로 먹고 살아온 저 같은 사람한테는 이 이상의 일도 없구요” 물론 지금도 낮에는
중고차 매매업을 하고 있는 ‘투잡스족’이다.
이정태(37)씨도 투잡스족이다. 낮에는 화재보험설계사 일을 하고 있는 그가 밤에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는 이제 2개월 됐다.
“육체적으로 힘이야 들죠.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시작하게 됐는데 지금은 재밌기도 해요.
아무리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지만 재미가 없으면 어떻게 일을 계속 할 수 있겠어요. 낮에
일해서 버는 봉급은 손 하나 대지 않고 고스란히 저축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구요.
많이는 못 벌어도 한달 용돈은 나오니까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대리운전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그는 가끔 험한 꼴을 보기도 한다. 막내 동생뻘처럼 보이는 고객이 술에 취해 ‘원한을 갚
으러 간다’며 칼을 꺼내든 것. 아무리 고객이라지만 그러지 말라고 한마디 타이를 수밖에
없었던 이씨는 큰일을 당할 뻔 했다. 아무래도 취객들이 주 고객인 만큼 이런 일들은 한
번씩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더 많은 좋은 고객들과 경제적인 여건이 대리운전을 계
속하게 만드는 매력이라고 얘기한다.
현재 전주에서 성업 중인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는 대부분 시급제. 보통 시간당 4천원으로 높
은 편이다. 때문에 방학이면 아르바이트를 구하려는 대학생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대리운전을 창업하려는 열풍도 대단해 전주에도 수없이 많은 대리운전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서비스업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신고만 한다면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고 초기투자자본도 적게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는 시장이 포화상태에 다다라 대리운
전 업체들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한 건에 2만원정도 하던 서비
스요금이 현재는 1만원에서 8천원까지 떨어진 것. 영세한 후발업체들이 경쟁력 강화를 위
해 합병하고 있는 추세에까지 와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폐업하는 업체도 속속 늘어나고 있다.
“대리운전 열풍의 배경에는 무엇보다 일자리 부족이 큰 원인을 차지하구요. 사람들이 힘든
일은 기피하는 현상도 한몫해요. 운전이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잖아요. 요즘은 또 다들
운전 정도는 하구요. 하지만 대리운전이 단순히 운전만 하는 것이라고 무작정 뛰어든다면
큰 오산이에요. 고객에 대한 친절함과 차별화된 서비스가 없다면 곧 퇴출당하고 말아요”
전주에서는 대리운전으로 잔뼈가 굵은 김종열씨의 설명은 결코 쉬운 일은 없다는 말을
새삼 실감케 한다.
전주 대리운전의 신화 강미숙(38)씨
강미숙씨의 핸드폰에는 단골고객 전화번호만 158개가 저장되어 있다. 요즘 흔하게 볼 수
있는 ‘고객 관리’도 하고 있지 않지만, 그의 휴대폰에는 단골을 자처하는 고객들의 번호가
하루하루 늘어가고 있다. 단골 고객들이 많으니 그가 일하는 건수도 남들에 비해 거의
두 배 가까운 하루 열건 이상을 해내고 있다. 대리운전업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는 하
지만 그에게는 다른 나라 얘기다. 너무 바빠서 연락이 오는 모든 단골 고객들을 모실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움이라면 안타까움이다.
그는 차에 관한한 그 어떤 남자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자동차 공업사에서 경리일을
시작으로 자동차 배달, 운전학원 강사 등 지금껏 자동차와 관련된 일만 해왔고, 대형운전
면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대리운전이 자신의 천성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떤 특별함이 이렇게 한번 만난 고객은 그를 잊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전 절 불러주는 고객을 한 번도 ‘고객’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가족처럼 생각하는 거
죠. 항상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하고, 손님들하고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거의 술 한
잔씩 하신 분들이라 그런지 속에 담아두었던 얘기들을 많이 해요”그가 갖고 있는 특별함은
그렇게 특별할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
다. “속상한 일 있으면 위로해주고, 기쁜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해주고 그러다보면 자연
스레 친밀감이 생기죠. 그래서 한번 절 만난 분들은 단골 고객이 되는 거구요. 뭐 특별한
거 있나요. 단골고객인데 너무 자주 본다 싶으면 술좀 그만 좀 드시라는 잔소리도 많이
해요. 참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리는 것은 가장 기본이겠죠” 결국 진심으로 대
하는 마음이 고객에게는 가장 큰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대리운전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특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투잡스족이 되려는 여성들에게는 밤에 할 수 있는 건전한 아
르바이트로써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
단, 부킹을 하자고 ‘추근덕 거리’는 취객은 딱 질색이다.
장례문화의 변화 속에 흔들리는 장의사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았지. 그런데 3,4년 전부터 장례식장이 하나둘씩 생기
면서 장례문화가 완전히 바뀌어버렸어. 그 전만해도 병원에서 돌아가시면 집으로 모시고
와서 장례 치루었는데, 지금은 집에서 돌아가셔도 병원이나 장례식장으로 모시고 가서 장례
를 치루는 판국이니까”
불과 얼마 전 까지 장례식의 중심에 서있던 장의사, 하지만 지금은 쇠퇴일로를 걷고 있거나
틈새시장에 의존해 가고 있었다. 장례식장이라는 장례식 전문 대행업체가 생겨나면서부
터다. 장례식장은 깨끗함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생활 패턴을 그대로 반영한 공간
. 전화 한통이면 모든 것을 대행해주고, 장례식장을 찾는 손님들에게도 낯이(?) 선다. 또
집에서 천막을 쳐놓고 장례식을 치룰 때처럼 비나 눈 등의 악천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장례문화는 시골에까지 점차 번지고 있다. 삼례나 봉동, 구이, 소양처럼 지리적으로 전
주와 비교적 가까운 곳은 아예 전주에 있는 장례식장을 이용하거나, 웬만한 군 단위만 해도
장례식장이 들어오고 있다. 깨끗함과 편리함을 두루 갖춘 장례식장은 시골사람들에게도
큰 매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설사 전통적인 장례식을 치루고 싶어도 시골에 사람이
없어 힘들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장례식장을 이용하기 힘든 곳은 전통
적인 장례식을 치룰 수밖에 없지만, 1년에 한 두건이나 있을 일을 기다리며 마냥 장의사
일을 할 수 만도 없는 노릇이다.
대신 그들이 새롭게 시작한 일은 주로 장례식장이나 병원 영안실에서 시신을 장지까지 운반
하는 일. 그래서 형편이 어렵더라도 ‘장의차’를 마련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몇 년 동안 꼬박꼬박 차 할부를 넣어야 한다는 것은 커다란 부담이지만, 시신을 운반할
수 있는 차가 없다면 그나마 있는 일거리마저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 일마저 경
쟁이 치열해져가고 있다고 한다.
장례문화의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것도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다. 도시로 나와 있는 사람들에
게 벌초 등의 묘지관리일은 점차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 장의사들에게 벌초나 이장
대행은 뿌리치기 힘든 시장이다.
장례문화가 바뀌면서 기존의 장의사가 하던 일은 이미 장례식장으로 넘어 간지 오래다. 많
은 장의사들이 일거리가 없어 폐업을 했지만, 남아 있는 장의사들은 새로운 장례문화에
적응하고 틈새시장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자본과 규모를 갖추고 있
는 장례식장의 등장아래 그들의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소양 ‘새전주 장의사’ 김병락씨(59)
“장례식장이 생기기 전에는 일단 상을 당하면 제일 먼저 장의사에게 전화해서 물어봤는데,
지금은 장례식장에 전화한통이면 응급차가 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대행해줘 버려. 깨끗
하고 편리한 장례식장이 여기저기 막 생겨나고 있는데 우리 같은 소규모 장의사들이 살아남
을 방법이 있나. 거의 다 폐업했다고 봐야지”
소양에서 ‘새전주 장의사’를 하고 있는 김병락씨. 소양에 장의사 사무실이 있긴 하지만 일거
리가 없어 그냥 명목뿐인 장소가 된지 오래고, 현재는 장의차를 보관하는 창고나 다름없다.
전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탓에 전통적인 장례식을 치루는 곳이 없어, 장의물품을 진열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도 몇 년 전 5년 할부로 장의차를 구입했다. 한달 수입에서 차 할부 값과 보험료
를 제하고 나면 막상 손에 남는 것은 없지만 그나마 장의차가 없다면 아예 들어오지도 않을
일거리들이다.
“이 일은 다른 일보다는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도 많은 편이고, 그렇게 힘이 많이 드는 편
도 아니야. 그래도 워낙 돈벌이도 안 되고 하니까. 한 30, 40대만 되도 다른 일을 찾아
볼텐데, 이 나이 먹고 이제 와서 다른 일을 한다는 것도 힘들어서 이 일 계속하고 있지 뭐”
그래서 그는 주위사람이 장의사 일을 한다고 하면 적극 만류할 것이라고 한다.
“아직까지 별로 좋지 않은 사회적 인식을 감내하고 일을 해나가기에는 돈벌이마저 시원찮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장례식장의 번성으로 상징되는 장례문화의 변화와 이런 흐름아래 급
속하게 줄어드는 소규모 장의사들의 설자리가 큰 몫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