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5 | [문화가 정보]
봄 찾아온 범바우골, 두 화가이야기
최정학(2004-05-23 13:39:13)
범바우골 두 번째 전시
완연한 봄기운이 가득한 4월, 봄 햇살 만큼이나 따스하고 생명력 넘치는 전시가 열렸다.
완주군 용진면 신지리 용복마을에 위치한 범바우골의 두 화가 조영대(45)씨와 최영문(40)씨
가 두 번째 작업실전을 연 것. 조씨는 작업실을 정리하여 회화위주의 전시를 하고, 7번째
개인전이기도 한 최씨는 ‘산 그리메, 물 그리메’라는 주제로 작업실엔 평면을 앞마당엔 설
치 작품을 전시했다.
복숭아꽃 화사하게 핀 과수원 옆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조씨의 작업실은 그 자체가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했다. 잔디 깔린 앞마당 곳곳엔 설치미술 작품들이 관람객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었고, 꽃 잔디와 수선화는 화사한 자태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
작업실안에도 서정적인 풍경들이 가득 들어 앉았다.
“그림이 좋게 변했네. 끈끈한 연륜이 쌓인 것이 보여. 좋은 공간에서 작업하다보니 생각도,
그림의 깊이도 더 깊어진 것 같구만”
때마침 전시장에 조씨의 원광대 학부시절 스승 이창규 화백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제자를
보는 스승은 달라진 그림에 대한 느낌부터 이야기한다. 그 만큼 이곳으로 작업장을 옮긴 후
조씨의 그림은 편안해지고 자연에 더 가까워졌다. 기존의 작품이 악보에 충실한 연주였다
면 지금의 작품은 느낌에 충실한 연주라는 것. 그래서 그의 그림은 단순한 형상이 아닌,
어떤 ‘메시지’로 다가온 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이들 사제지간의 대화는 어느새 전시장을 찾은 전북대 평생대학원 미술학과
학생들과의 즉석 강의로 이루어진다. 단순히 그림이 좋아 느즈막히 본격적인 그림공부에
뛰어든 이들에게 사제지간의 대화는 더 없이 훌륭한 그림 공부다.
조씨의 작업실에서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들어앉은 최씨의 작업실에선 ‘산 그리메, 물 그
리메전’이 열리고 있었다. 널찍한 마당에 해며 달, 물고기, 산 등이 걸렸다. 이웃 과수원에서
가지치기를 하고 버린 복숭아나무 가지들을 엮어 만든 것들이다.
“이 가지들은 더 풍성한 수확을 위해 버려진 것들이다. 하지만 분명 버려진 나뭇가지들에도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침마다 물을 주고 있으니 조금 있으면 이 죽은
듯이 보이는 나뭇가지들에도 꽃 봉우리가 맺히고, 새 잎이 싹을 틔울 것이다” 그러고 보
니 군데군데 꽃 봉우리가 맺혀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도 죽은 듯 마른 가지에서
피워내고 있는 생명력을 찾아가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
이번 그의 전시는 기존의 평면 작업들을 밖으로 꺼내 설치미술로 재현해 낸 것. 인간 본위
의 자연관을 비판하고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에서
물의 흐름, 산, 새싹, 인간 모두 비중 없이 나열해 놓았다.
자연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화폭에 담는데 주력해온 조씨와 실험적인 작품으로 메시지를 전
해온 최씨. 얼핏 전혀 다른 작품세계를 추구해온 두 화가가 인연을 맺게 해준 것은 이곳
범바우골이다. 1999년 전주중학교로 발령받은 최씨가 먼저 범바우골에 터를 잡고, 최씨의
작업실을 드나들던 조씨가 이곳의 운치에 매료되어 3년 전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된 이들에게 범바우골은 작업 공간 이상의 것이었다. 작게나마 마련한
텃밭에서 고구마며 콩을 가꾸게 된 일은 이들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새싹이 돋아
나고 꽃이 떨어지고 열매가 맺고, 한 겨울을 견뎌내는 모습까지 자연의 순환과정과 함께
하면서 이들의 작업은 점점 자연의 일부분이 된 것. 그래서 이들의 작품은 표현방식은 달
라도 결국은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관람객들에게도 작품의 산파역할을 한 범바우골에서의 전시는 각별한 의미를 지녔다. 굳이
평론가가 없어도 복숭아꽃 지천으로 피고 새우는 범바우골은 작품을 있는 그대로 체감케
했다.
“어떤 고정적인 일시와 장소를 정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데로 전시회를 이어나갈 생각입니
다. 날짜와 장소에 얽매이다 보면 너무 형식적이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최씨는 작품도 전
시도 자연을 닮아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