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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5 | [문화칼럼]
참여민주주의를 통한 지배구조의 개혁
지금종 문화연대 사무처장(2004-05-23 13:36:31)
16대 국회가 끝나갈 무렵인 지난 3월 12일, 권력에 눈 먼 수구세력이 대통령탄핵안 가결을 통해 ‘의회쿠데타’를 시도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즉각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들어 강력한 저항에 돌입했고, 다음날부터는 광화문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에 들어갔다. 이후 한 달여 동안 광화문은 국민의 분노와 정치개혁의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들끓는 용광로로 변했다. 이 기간동안 마치 주문처럼 광화문에 메아리친 노래가 있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는 매우 짧고 단순하지만 심오한 노랫말을 가진 이 노래는 ‘헌법 제1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우리 헌법 제1조 1항과 제2항에서 노랫말을 따와 윤민석이 곡을 붙인 것이다. 이번 촛불문화제를 통해 여러 사람의 대중예술인이 주목을 받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 윤민석이다. 그의 노래 중 ‘너희는 아니야’ ‘격문’ 등이 대중의 가려움을 긁어주는 정치적 페이소스를 담고있다면 ‘헌법 제1조’는 국민주권을 강하게 상기시키는 힘이 있었다. 헌법 제1조를 새삼스레 끄집어내는 이유는 탄핵가결 이후에 불어닥친 민심의 폭풍과 공론의 전개과정을 살펴보고, 향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과제를 실현하는데 있어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정국에서 유일한 승리자는 국민이다. 지역주의가 또다시 나타나는 등 문제점과 한계를 드러내기는 했지만 총선 결과에서 명백히 나타나듯이 탄핵에 대한 심판을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 낸 것이다. 또한 이 같은 심판의 근저에는 특정 정당, 정치인에 대한 선호도가 아니라 그 동안 보여준 저열한 정치행태를 국민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 응징한 것이다. 이러한 민심을 못 읽고 단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탄핵을 강행한 단순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한편 탄핵정국을 통과하며 가장 많은 논란이 됐던 화두가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 법치주의 따위였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이 대통령을 탄핵하는 게 무슨 문제냐’, ‘법에 따라 촛불집회를 하지 마라’는 등의 단순논리로 국민의 정당한 저항을 잠재우려는 불순한 시도가 끊이질 않았다. 지금도 같은 논리로 대통령 탄핵소추와 관련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는 규정을 상기해 볼 때 이러한 논리는 참으로 가당치 않다. 현실적 제약 때문에 국회의원제도라는 대의민주주의제도를 시행하는 것이지 직접민주주의보다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다. 또한 헌법은 올바르지 못한 것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는 이러한 정당한 저항에 의해 발전돼 왔다. 한 때 여성과 노동자는 투표권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이게 오늘날의 가치에 비추어 볼 때 과연 정당한가? 4.19혁명은 불법집회 아니었나? 법치는 민주주의의 산물이지만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요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법은 가장 나중에 바뀌는 매우 보수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악법은 주권자인 국민을 오히려 괴롭히는 장치가 된다. 따라서 옳으냐 그르냐가 법치에 우선하는 가치이다. 어느 학자의 말처럼 “민주주의에서 의회권력-시민권력, 법-투표, 법의 지배-다수(인민)의 지배 사이의 철학적?이론적 우위는 각각 후자”인 것이다. 따라서 법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적의도로 공론을 형성하는 방식은 심각한 허점을 가진 퇴행적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다. 전체주의 국가가 아닌 이상 사회적 갈등이란 늘 있게 마련이다. 이 갈등을 폭력적으로 증폭시키는가, 다양한 의견표출과 이를 통한 사회적 합의로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가 하는 것이 해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안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면 사회적 갈등은 안 된다는 논리로 사회적 공론화를 막으려는 시도가 우리 사회에서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이 것이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주범이며 그 자체가 정치적 폭력이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인정하되 그 표현방식을 성숙시켜 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탄핵정국과 총선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아직도, 혹은 새롭게 반민주적인 법과 제도, 이데올로기와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 목도되고 있다. 16대 국회에서 통과된 집시법, 인터넷 실명제 등은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막는 대표적인 개악사례다. 또한 문제 있는 국회의원들을 견제하는 장치로 국민소환제와 국민발의제 등 참여민주주의 제도의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이밖에도 친일청산 등 역사적 과제 관련 법, 언론개혁을 위한 정기간행물법 등 법개정과 이라크 파병 및 분배정의를 위한 각종 법제도 개선 등 수 많은 민주주의, 민생 과제가 산적하다. 나는 그 가운데서도 시급한 것이 정치지배구조의 개혁이라고 믿는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국가차원은 물론이고, 지역차원의 지배구조의 개혁도 포함된다. 사실 이 두 층위의 개혁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지역의 대표가 국회를 구성하며, 다시 그 국회의원이 정당공천제를 통해 지방선거에 개입함으로써 지역에 영향을 끼치고, 이러한 영향은 다시 지역의 지배구조의 성격을 결정짓는 순환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지역지배구조를 개혁하는 것은 국가와 지역의 지배구조를 동시에 개혁하는 이중전략이 필요하다. 하나는 깨끗하고 능력 있으며 민주적인 인사로 대의제의 질을 높이는 과제와 이를 넘어서 참여민주주의를 국가운영시스템에 정착시킴으로써 국가의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지방의회와 단체장을 정당의 당리당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당공천제를 폐지함으로써 지역지배구조를 형성하는 질서를 바꾸는 것이다. 이에 동시에 민주적인 로컬 가버넌스를 구축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지금 세계는 수평, 수직적 측면 모두에서 국가의 재 구조화를 본격적으로 실시하는 급격한 흐름에 놓여 있다. 수평적인 재 구조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하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상징되는 포드주의적 자본주의 질서와 케인즈주의적 국가 개입의 실패로 비롯된 정부와 시장과의 관계설정의 재 구조화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신사회운동의 등장,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욕구 등으로 비롯된 정부와 시민사회의 재 구조화이다. 다시 말해 국가 주도의 성장으로부터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발전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민주주의의 발전은 수직적인 재 구조화로 이어지는데 국가, 즉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조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도 노무현정부 들어 빠르게 지방화가 진전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압축적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기형적 근대화로 인해 불균형한 지역발전과 민주화의 지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국가와 지방정부 모두에 있어 비민주적인 중앙 집중형 권력 시스템과 중앙집중방식의 국가 운영이라는 낡은 발전 패러다임, 권위주의와 행정편의주의 등이 아직도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작동원리이다. 문화부문에서 나타나는 온갖 문제점 또한 문화마인드의 부족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잘못된 지역지배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지역문화를 개선을 위해서는 지역지배구조를 변화시키는 노력을 병행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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