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4.5 | [문화가 정보]
섬진강 물길 따라 삶의 이야기, 자연의 속삭임 가득
김회경(2004-05-23 13:37:57)
전북환경운동연합 섬진강 문화기행 유리처럼 맑고 투명한 햇살, 그 햇살 아래 부서져 내리는 섬진강 물줄기. 봄기운 완연한 섬진강을 따라 탐스럽게 꽃을 맺은 산벚이며 매화, 한껏 물 오른 버드나무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4월 10일, 봄의 절정에서 찾아간 섬진강 상류의 임실군 덕치면 진뫼마을. 토요일 오후 집으로 돌아온 김용택 시인이 느긋하게 툇마루에 앉아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시인의 어머니는 이런 풍경에 이력이 붙은 모양이다. 손수 담근 상큼한 매실주와 씹는 맛이 제법 옹골지고 쌉싸름한 드룹나물을 꺼내놓고 한 순배 두 순배 술잔을 나눠준다. 나른한 봄 햇살에 깜빡 졸고 있던 풍경은 지나가는 바람에 놀라 처마 끝에서 땡그랑 땡그랑 소리를 내며 깨어난다. 시인의 집에서 보는 섬진강 풍경, 그 자체로 수채화 한 점이다. 담 너머 맑은 섬진강 물길이 누워 흐르고, 그 뒤에는 묵묵히 섬진강 줄기를 껴안고 서 있는 회문산 자락이 한 눈 가득 펼쳐진다. 누구라도 시를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만 같다. 섬진강 시인도 손님들을 모아놓고 그렇게 고백한다. “밤에는 소쩍새가 우는데, 참말로 애간장이 녹아요. 결국은 잠 못 이루고 손전등을 들고 슬슬 나무 밑으로 다가서면 잠깐 우는 소리를 멈추고는 이내 다시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또 이 앞산에 참나무 잎이 돋아나면 요놈의 잎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바람에 잠을 못 자요. 그게 다 글이 되고 시가 되는 거예요.” 우스갯소리 섞어가며 김용택 시인이 능청을 떨지만, 시인의 집을 찾은 손님들은 그도 그럴 것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오늘 손님들은 전북환경운동연합이 모은 기행단 30여명이다. 이름하여 ‘김용택 시인과 함께 하는 섬진강 문화기행’. 시인의 집에 들러 강의를 듣기도 하고, 섬진강 줄기를 따라 온갖 꽃이며 나무, 마을 이야기를 듣는 생태와 문학, 문화가 혼합된 여정인데, 초중고생들의 방학 캠프지로, 도서관 어머니 모임의 단골 기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이라는 감투도 감투지만, 눈치 빠른 김 시인, 환경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섬진강은 옛날부터 물 반, 고기 반이었어요. 강물엔 바위가 꽉 차 있죠. 그래서 고기들이 많은 거예요. 다슬기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저녁때가 되면 우리 어머니가 그럽니다. 내가 후딱 다슬기 잡아 올 테니까 너는 불 때고 있어라, 그러고는 후다닥 나가십니다. 그런데 내가 나무 불 때려고 부시럭거리고 있는 사이에 언제 오셨는지 다 잡아왔다, 하세요. 섬진강이 깨끗한 건 다슬기가 많아서에요. 다슬기는 강의 청소부거든요. 섬진강은 자정능력이 있는 강입니다. 사람도 그래야 해요. 스스로를 정화하려고 노력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저쪽 서울, 국회 쪽.” 시인의 집 앞 마당에 잔디를 깔고 앉은 사람들이 일제히 파안대소를 한다. 때마침 좀처럼 보기 힘든 햇무리가 기와지붕 위로 둥그렇게 얼굴을 내민다.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자, “우리집엔 별 게 다 있다니까” 김 시인의 의기양양한 소리에 사람들이 또 한번 웃는다. 담 밖에서 기웃거리며 ‘섬진강 기행’의 소박한 강의를 듣고 있자니, 담 사이로 김치 한 종지의 인심을 나누던 시골 사람들의 따뜻한 정서가 되살아난다. 악다구니를 쓰며 살아가는 도시 사람들에게 적당한 참견과 적당한 기웃거림이 서로에게 얼마나 그리운 것인지를 담 밖을 서성이며 문득 깨닫게도 된다. ‘진뫼마을은 임진왜란 때 형성됐고, 나주에서 난을 피해 온 사람들의 정착지였다, 주변의 회문산은 6.25 전쟁을 전후해 빨치산들의 해방구였다, 진뫼마을은 그 질곡의 역사를 지켜봐 온 증인이다.’ 김용택 시인의 마을 이야기가 이어진다. 시인의 집 앞에 서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시인이 스물일곱에 집 뒤란에 있던 나무를 옮겨 심은 것이고, 올해로 30년이 됐다고 했다. “내가 저 나무를 얼마나 열심히 보살폈는지 몰라요. 거름 될만한 건 다 해봤거든. 나무도 정성으로 보살피면 저렇게 보답을 하는 거예요. 사람도 마찬가지죠. 서로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고 보살펴주면서 살아가야 해요.” 강의가 끝나고 막걸리 판이 벌어진다. 기분 좋게 한잔하고, 마을 앞 섬진강으로 발길을 옮긴다. 징검다리를 건너보기도 하고 시인의 추억을 들으며 물밑을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한다. ‘섬진강 문화기행’은 강을 닮은 시인과 정갈한 시인의 집과 도도한 섬진강 물결을 만나며 자연을 느끼고 여유를 배울 수 있는 기회다. 기행에 나선 사람들의 얼굴 위로 환한 꽃이 피어난다. / 김회경 기자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