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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4 | [문화칼럼]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
주홍미 서울예술종합전문학교 교수·공연기획과(2004-04-20 16:26:57)
사람은 '사람의 눈'으로 자기의 '마음의 창'으로 세상을 내다본다. 그 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이란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이다. -주성혜의 <음악 읽기 세상 읽기> 중에서 사람이 세상을 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문화기획을 하는 내게 언제나 따라 다니는 고민이었다. 8,9년 전쯤이었을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던 내게 위의 글은 '마음의 창'이라는 것과 '사람'이라는 화두를 던져 주었다. 지금껏 나의 문화기획자로서의 마인드 컨트롤에 지침서 역할을 해 준다. 문화는 '마음의 풍경'이고 '마음의 흐름'이다. 문화를 기획한다는 것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창을 갈고 닦아 빛나게 하는 감동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더불어 변화된 일상을 경험하게 하는 것, 거기에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출발점으로서의 마인드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역할로서 기능해야 한다. '같음'과 '다름'의 거리 좁히기 무대와 객석사이의 간격, 객석과 객석사이의 간격, '음악'이라는 텍스트 또는 재료들이 사람의 귀에 전달되기까지의 추상적인 공간의 여백 등 이 모든 간격과 여백 사이에 '사람'이 있다. 각각의 '마음의 창'이 있고 '마음의 풍경'이 있다. 이러한 '사람 마음의 풍경'을 따라 가보면 '사회'가 보인다. 한 사회 안의 '같은 우리'들은 세상 보는 시선이 '같음'을 알아보는 희열과 다시 '다름'을 알게 되는 좌절을 경험한다. 나는 항상 이 둘('같음'과 '다름')이 점점 멀어져 갈 때의 아득함에 대해 생각한다. '다름'을 확인하는 극단적 상황에서 '마음의 창'을 닫고 보지 않고 그래서 보이지 않고 깨져 버리는. 창은 서로를 비추는 것이다. '다른 눈'에 대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의 창'을 보려 하는 '나와 우리와 사회'를 꿈꾼다. 똑같은 사건을 경험하고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그 시선이 다른 것처럼. -친구와 같이 '내님의 사랑은'이라는 곡을 들을 때였다. 가사를 다 외우지 못했던 우리는 선율만 계속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다가 마지막 부분은 둘 다 소리내어 불렀는데, 나는 '사랑이 깊으면 그리움도 깊어라~'라고, 친구는 '사랑이 깊으면 내 마음도 깊어라~'라고 불렀다. 이 노래의 가사는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다. 아주 사소하고 또 흔히 만날 수 있는 풍경이겠지만, 그 때 얼핏 나는 대상에 대한 '사람 마음의 창'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었던 것 같다. 같은 마음을 가졌지만 사물 혹은 사람 즉 대상에 따라 조금 다른 시선이 되는 것에 대해. '나'와 '우리'의 화해와 '변화된 일상'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는 공연예술이라는 장르에서 나타나는 커뮤니타스(집단적 몰입현상)는 예술작품을 만든 이들, 공연하는 이들, 관객들이 문화적 또는 개인적 경험을 함께 하거나 열고자 하는 마음의 준비와 귀와 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발전가능성이 있다. 티켓을 구매한 개인들이 특정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가 되는 새로운 시간의 경험 속으로 들어간다. 감동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이 새로운 시간을 경험한 이후 일상에서의 변화를 꿈꾼다. 예를 들어 전인권 혹은 신해철 콘서트에 가서 집단적 일체감을 느끼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전의 일상과 공연장을 나온 이후의 일상이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 것, 에쿠우스 연극을 보고 나서 거리에 나왔을 때 사람들의 표정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객석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 지젤을 보고 나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걸음걸이 하나하나가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것, 동요콘서트를 보고 나서 인생을 반추하는 것, 서태지의 공연을 보고 나서 이전에 통일에 대해서, 교실의 권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못했던 아이들이 뭔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 미술관의 '밀레의 여정' 전시회를 감상하고 나와서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가 체험하게 되는 '변화된 일상' 그리고 '나'와 '우리'의 화해 아닐까? 그런데 나는 요즘, 몇몇의 사회문화적 사건들에게서 가끔 혼란을 느낄 때가 있다. 사회의 가치와 개인의 가치를 동일시하고, 집단화 된 사실과 개인의 진실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까지가 우리인지를 알 수 없는 상황들을 만나게 될 때가 바로 그럴 때인데, 흔히 그것을 '우리'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속에 진정한 '나'와 '우리'의 모습은 없다. 주성혜 교수의 말처럼 개별적 가치가 인정되고 존중될 때 '우리'라는 개념이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다름'이라는 전제가 있으므로 해서, 그 다름 가운데 발견되는 '같음'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아니겠는가.' -이 이야기를 친구 임수경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통일에 대한 시선을 들려주었다. "통일은 막연한 구호상의 민족적 동질성의 확인만이 아니며 이제는 '같음'을 억지로 확인하는 것보다는 '다름'을 확인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것이 임수경의 통일론이다. 사람과 문화 사람과 문화는 서로를 비추는 창이다. 사람이 곧 문화이고 문화가 곧 사람이다.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사람 마음의 창을 보는 시선이다. 나는 음악을 텍스트로 하는 공연을 통해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다름'과 '같음' 그리고 '나'와 '우리'의 화해를 위해 서로의 '마음의 창'을 읽고 그것으로 인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된 일상'을 경험하며 아름다운 마인드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 다시 말하면 사람의 삶과 음악이 긍정적인 연관성으로 거듭나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음악공연예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꿈이다. [대기실에서 예술가들이 기분 좋은 긴장을 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는 각각의 풍경들이 벌어지고 있다. 객석의 호흡과 숨소리 하나하나가 들린다. 손님들의 기타와 노래 소리가 울리는 까페에 들어간다. 바이올린의 활 끝에 여운이 보인다. 공연장 로비가 분주하다] 내가 자주 만나는 풍경들이다. 이 모든 것 어딘가에 사람이 있다. 그 이상한 힘이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간다. 어디인지 모르겠고 무엇인지 보이지 않아 가까이 가 보면 저만치에 사람이 보인다. 마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 그 길의 의미, 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 길에서의 아름다움과 그렇지 못함들...... 이 모든 것에 있어 늘 '사람의 마음'을 보리라. 나는 지금 프리랜서다. 나의 문화관에 대해 늘 옆에서 격려해 주시는 선배(이 분은 지금 전주에서 예원대산학협력단장으로 활동 중이신 이두엽씨다)께서 얼마 전 "프리랜서로 활동하더라도 뭔가 이름이 있어야지 않겠어요? 내가 이름을 하나 만들어 왔죠. <사람과 음악> 어때요?"라고 하셨고 난 너무나 고맙게 그리고 흔쾌하게 그 이름을 받아들였다. 그래, <사람과 음악>. 주홍미/공연기획가. 라이브페스티발 “자유”, 포크음악 30주년 기념공연, 문학과 음악의 만남 '2002문학까페 명동', 들국화 트리뷰트 음반 및 공연, 가족콘서트 '가을 밤 벌레 우는 밤', 시청광장 6월난장 '평화와 미래 콘서트'등의 공연을 기획, 연출 했다. 현재 '2004 문학과 무대예술의 만남 시즈' 그리고 '세대 화합을 위한 가족콘서트 전국투어', '숲 속 음악회' 등을 기획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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