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4.4 | [문화가 정보]
판소리, '현대적 소통' 나서다
김회경 기자(2004-04-20 16:15:06)
영문자막 시연 및 현대어 개작 판소리 시연회 "(중모리) 또 한 통을 딜여 놓고, 당기어라, 톱질이야. 좋을씨고 좋을씨고, 밥 먹으니 좋을씨고. 수인씨 교인화식 날 위하여 마련했나? 강구노인 함포고복 날만치나 먹었으며, 엽피남묘 전준지희 날만치나 먹고 즐기든가. 어여루 당겨 주소. 만고의 영웅들도 밥 없으면 살 수 있나. 오자서 도망갈 제 오시에 걸식하고, 한신이 궁곤할 제 표모에게 기식이요, 진문공 전간득식, 한광무 호타맥반 중한 것이 밥뿐이랴. 실건 실건 톱질이야. 어어루 당기어라. 시르렁 실건 당겨 주소. 강사에 둥둥 떴는 배가 수천석을 실었은들 내 박 한통을 당할쏜가? 이 박을 타거들랑 은금보화만 나오너라. 이 박에서 나오는 보화는 우리 형님 갖다가 드릴란다. 시르렁 실건 시르렁 실건, 어여루 당겨 주소" 흥보가 중 '흥보 박타는 대목'. 박을 타며 잔뜩 기대에 부푼 흥보가 중국의 고사와 사서삼경까지 들먹이며 제 흥을 풀어내는 대목이다. 그 신명이야 눈치껏 알아챌 수는 있지만, 좀체 그 가락 하나하나의 의미를 새겨 이해하기엔 도무지 낯선 단어들 투성이다. 전북대 전라문화연구소 판소리연구단이 지난해에 이어 '영문자막 시연 및 현대어 개작 판소리 시연회'를 열고 전통 판소리의 현대적 소통을 위한 두 번째 시도에 나섰다. 3월 5일 전주전통문화센터 경업당에 마련된 이날 행사는 '판소리 사설의 채록·정리·주석·번역 및 실용화시스템 개발에 관한 연구'의 2차년도 연구결과 발표회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사업이다. 판소리와 전통음악 전공자들과 관심 있는 일반 시민, 외국인들까지 경업당을 가득 메워 '판소리 현대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전라문화연구소가 현대어로 풀어낸 '흥보 박타는 대목', 전북도립국악원 김연 교수가 소리를 맡아 '개작 판소리'를 들려줬다. "(중모리) 또 한 통을 들여놓고, 당기어라, 톱질이야. 좋을씨고 좋을씨고, 밥 먹으니 좋을씨고. 수인씨 만든 음식 날 위하여 마련했나? 요순 시절 태평 노인, 나 정도나 먹었으며, 배 부르고 등 따순들 나 정도나 즐겼던가. 어여루 당겨 주소. 옛날의 영웅들도 밥 없으면 살 수 있나. 오자서 도망갈 때 오시서 빌어 먹고, 한신이 곤궁할 때 남의 집서 얻어 먹고, 진 왕도 밥을 비니, 옛 글의 문장에도 중한 것은 밥 뿐이랴. 실건 실건 톱질이야. 어어류 당기어라. 시스렁 실건 당겨 주쇼. 강물에 둥둥 떴는 배가 수천 석을 실었은들 내 박 한 통을 당할손가? 이 박을 타거들랑 은금보화만 나오너라. 이 박에서 나오는 보화는 우리 형님 갖다가 드릴란다. 시스렁 실건 시스렁 실건, 어여루 당겨 주소:" 중국 고사에 대한 약간의 배경지식이 아쉬울 뿐, 기존의 내용에 비해 귀에 잘 들어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같은 시도가 주목을 끄는 이유, 판소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함께 판소리의 대중화와 세계화의 요구가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판소리 원형에 대한 훼손'이라는 비판적 견해나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지만, 원형 보존만큼 '현대화' 작업 역시 균형 있게 진행돼야 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박봉술 바디 '적벽가' 중 '군사설움 대목'을 장문희(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원)씨가 원본 사설로, 김연수 바디 흥보가 중 '흥보 박타는 대목'을 김연 교수가 맡아 현대어 사설로 선보였으며, 사설 내용은 영문 자막으로 번역돼 외국인들의 이해를 도왔다. 영문자막 판소리는 '세계화'의 기초작업으로 외국인들의 흥미를 끌어냈지만, 가락과 곡조에 맞춰 자막의 위치와 속도 조절이 아쉬웠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판소리 공연을 처음 보았다는 조 피트루시에코이츠(Joe Pietrusiecoicz, 전북대 언어교육원)씨는 "자막이 있어 판소리에도 이야기의 흐름이 있다는 알았다. 서양의 오페라와 비슷한 서사 구조를 갖고 있어 오페라만큼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사와 자막의 흐름이 일치할 수 있도록 조절하는 데 신경을 쓴다면 더 좋겠다. 상당히 만족하고 즐거웠다"고 말했다. 독특한 서사와 연희구조를 갖춘 판소리가 '대중화·세계화'라는 목표를 얼마나 구현해 낼 것인지는 지난한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그 한계와 가능성이 타진될 수 있다. 전주전통문화센터의 '해설이 있는 판소리'나 전라문화연구소의 '영문자막 및 현대어 개작' 작업은 그런 점에서 판소리 세계화와 현대화 가능성을 실험하는 의미 있는 작업으로 평가된다.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