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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4 | [문화저널]
<전라도 푸진 사투리>
김남규(2004-04-20 16:12:06)
新造語 ‘탄핵 허고 자빠졌네!’의 生成 背景에 관하여 오늘 이야기의 소재는 최근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말, ‘탄핵허고 자빠졌네’이다. 어떤 이는 이 말을 [탄핵커고 자빠전네]라고 발음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우리 동네의 언어적 규범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지역에서는 ‘허다’ 앞에 ‘ㄱ, ㄷ, ㅂ’이 있어도 ‘ㅋ, ㅌ, ㅍ’처럼 거센 소리로 발음하지 않고, 오히려 ‘허다’의 ‘ㅎ’ 소리를 탈락시키고 그저 ‘ㄱ, ㄷ, ㅂ’만으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즉, ‘끕끕허다, 깝깝허다, 폭폭허다, 빳빳허다’ 등의 방언 어휘들은 모두 ‘허다’의 ‘ㅎ’이 사라지고 앞에 있는 받침이 그 자리에 나타나는 식의 발음, 즉 ‘끕끄버다, 까까버다, 폭포거다, &#48743;빠더다’로 발음한다. 이런 방식으로 ‘탄핵허다’도 ‘타내거다’로 발음해야 이 지역의 언어 규범에 어울리는 셈이다. 또한 ‘탄핵허고 자빠졌네’를 ‘탄핵허고 ‘쓰러졌네’나 ‘탄핵허고 넘어졌네’로 써서는 안 되며, 반드시 ‘자빠졌네’로 해야만 한다. 이 동네에서는 ‘자빠지나 넘어지나, 둘러치나 매치나’가 매 한가지이지만, 여기서 ‘자빠지다’는 넘어지거나 쓰러지는 동작성이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상태를 유지하는 즉 ‘-하고 있다’의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오직 ‘자빠졌네’만 통합될 수 있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 말이, 이 지역에서 제 자리를 적실하게 차지하고 있으며 상대에 대한 맹렬한 반감이나 억압된 분노를 표현할 때 줄곧 등장하는 힘 있는 표현, ‘지랄허고 자빠졌네’ 즉, 전체가 하나의 단어를 이루고 있는 관용구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은 바로 태어난 지 불과 몇 주도 안 되는 새말 ‘탄핵허고 자빠졌네’의 출현과 관련하여 새말의 생성 과정에 깔려 있는 우리의 엄연한 사회문화적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러시아 출신의 언어학자 Roman Jacobson은 언어의 기능을 여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그 가운데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감정 혹은 정서 표현의 기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랄허고 지빠졌네’는 누군가가 꼴 같지 않은 짓을 할 때 그것을 속되게 표현하는 말이며, 기실 그로 말미암아 자신의 곱지 못한 감정을 드러내는 말이니 이 말은 곧 감정 표현의 기능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속된 표현들로는 활자화하기 민망한 ‘병신 육갑허네’ 혹은 ‘병신 삽질허고 자빠졌네’ 등이 있다. 이 말은 참으로 비인간적인 표현들임에 틀림없다. 사지 멀쩡한 사람도 육갑을 따지거나 삽질을 하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그러지 못한 사람을 빌어 남을 비난하는 데 사용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약자에 대해 인색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한 것을 비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랄허고 자빠졌네’의 ‘지랄’ 또한 마찬가지다. ‘지랄’의 의미는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며 또한 ‘간질병자가 어느 순간 발작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에게도 중간시험을 치르다가 간질 증세를 보인 안타까운 학생을 맞닥뜨린 경험이 있다. 다행히 마음이 따뜻한 학생들과 함께 신속하게 대처하여 잠시 후에 모든 것이 안정되었다. 그 학생이 다시 안정을 찾아 준 것이 정말 고맙고 다행스러웠으며 그 후 이 말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몰인정한 말인지 절감하게 되었다. Sapir-Whorf의 가설, 언어는 그 사회문화적 특성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말을 새겨 풀어보면, 적어도 이 말은 우리 사회가 사람의 가치를 가늠하는데 능력을 우선으로 하며 그것이 바탕이 되어 위와 아래로 줄 세우기를 좋아하는 수직적 계급 사회의 멍울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는 모습을 비추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하여 그것을 잘못이라거나 이상한 일로 여기지 않을 만큼 보편화되어 있다.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고 모든 부모들이 자식들을 남보다 앞서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남보다 앞섰을 때 하는 행동이 문제이다. 능력 좋은 사람은 그 재능으로 말미암아 명예, 권력 아니면 돈을 얻었을 터인데, 욕심 사나운 이들이 그 모두를 한꺼번에 가지려 드는데다가 제 잇속에만 관심을 두는 경우가 허다한 게 문제이다. 잘나간다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대체로 이런 소아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약자를 보호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데 무관심한 마당에 최근 ‘탄핵허고 자빠졌네’란 말까지 생긴 것을 보면, 그 동안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거의 ‘지랄’과 맘먹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아주머니는 ‘국민을 위해 일 허라고 뽑아 주었으먼, 즈그덜이 우리를 걱정허고 우리한티 뭣을 히야 헐 것인가 고민을 히야헐 판에, 댑데로 우리가 즈덜 땀시 머리를 싸매고 걱정을 허는 판국이니 참말로 기가 맥히는 일’이라고 하고 또 어떤 아저씨는 말이 없으시다가 그냥 ‘싸아가지 없는 새끼들’이라고도 하신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모르나, 아무튼 ‘정치허고 자빠졌네’ 혹은 ‘탄핵허고 자빠졌네’라는 말이 우리 동네에서 생겨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의 ‘정치’나 ‘탄핵’은 아마도 ‘지랄’과 닮은 점이 많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나는 예전에는 동냥아치, 양아치 등에 붙어 있던 접미사 ‘-아치’가 벼슬에 붙어 다니던 그 안타까운 역사가 오늘날에 와서는, 관용구 ‘지랄허고 자빠졌네’의 ‘지랄’이 ‘정치’ 혹은 ‘탄핵’으로 바뀌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참으로 속이 ‘지랄’ 아니 ‘정치 같았다.’ 그렇지만 성숙한 자유민주주의를 향해 도도히 흘러온 우리 민족의 결집된 역량은 분명 4.15를 4.19보다 더 역사적인 전환점으로 만들어낼 것을 기대하면서 ‘정치 같았던 마음’을 ‘꽃불 같은 마음’으로 바꾸어 먹기로 작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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