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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4 | [문화저널]
이종민의 음악편지
이종민(2004-04-20 16:10:05)
눈이 맑은 한 시인을 추억하며 한영애의 '부용산'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만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술꾼만의 얘기도 아닐 것이고요.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주문이겠지요. 그런데도 요즘 이 구절이 특히 마음에 걸립니다. 얼치기 술꾼! 자격지심 탓인가? 술을 다스리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는 것에 마음이 켕겨 그럴 것입니다. 술이란 놈이 빠져나갈 모든 골목을 막고 서있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길목을 지키고 있는 것은 술이 아니라 제 자신입니다. 별의별 핑계와 이유가 안주가 되어 유혹을 해댑니다. 아침나절의 결심이 술시만 되면 술술 풀어지고 맙니다. 그 길목을 피해 고향집으로 도망을 해보지만 실상은 술독을 찾아 나선 꼴이 되기 십상입니다. 총총한 별이 옥반가효(玉盤佳肴)요 교교한 달빛만 보아도 "잔을 들어 맞이하고"(擧杯邀明月) 싶어집니다. 대숲 바람소리가 금준미주(金樽美酒)를 재촉하면 되지도 않게 "자연과의 하나 됨"(一斗合自然)을 꿈꾸는 것입니다. 매화가 지고 있다는 악양골의 전화를 못들은 척 할 수 없습니다. 향일암 동백을 보고 와야 한다는 용택이형 제안도 묵살할 수 없습니다. 쭈꾸미 철이 되었으니 안도현 시인 따라 곰소에도 다녀와야 합니다. '진짜 술꾼' 흉내라도 내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가소로운 일입니다. 뭣이 뛰니 망둥이도 뛴다고, 물정 모르고 분위기에 휩쓸려 다니다 낭패만 당하는, 꼭 탄핵 후폭풍에 어찌할 바 몰라 하는 누구누구 꼴입니다. 그러면서도 매실 술을 거르고 야외탁자에 칠을 하며 산수유 밑에서의 가든파티를 준비합니다. 얘끼, 이 순.... 술을 마시면서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시인을 추억하면서 얘기가 엉뚱한 데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이 맑은 그 시인은 꼭 그랬을 것입니다. 소나무 아래에서 시를 읽고 시국을 안타까워하던 일이 무시무시한 간첩단 사건으로 둔갑하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자상하다 못해 경건하기까지 한 사랑"으로 모든 하찮은 것들조차 더없이 소중하게 껴안던 그에게 청천벽력으로 다가온 무지막지한 고문과 투옥에 과연 어떤 반응이 과연 가능했을까요? 술 마시는 데에도 목숨을 거는, 차마 조심하는 태도 말고 말입니다. 하여 그는 항상 "조심조심 소리도 없이 숨을 죽이고" 지냈나 봅니다. 억울한 철창생활을 "얼어 곱은 두 손에 받아 든 햇빛"에 대한 사랑으로 나직이 속삭였나 봅니다. 그 고통과 분노, 그 절망까지도 그는 수정처럼 맑은 마음으로 걸러버렸습니다. 오송회사건과 전교조운동 등 80년대 그 굴곡의 역사 한복판에 서있으면서도 "제일 볕 잘 안 드는 곳에/ 자신의 빨래 걸쳐놓는" '순서 정해진 여자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자상함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대의 아픔을 위암으로 대속(代贖)하며 떠나버린 이 시인이 취흥에 겨워 자주 부르던 노래가 있습니다. 빨치산들이 즐겨 불렀다는 '부용산'이라는 매우 처연한 노래입니다.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이 노래에는 상당히 복잡한 '전설'이 묻어있습니다. 작곡자 안성현은 월북을 했고 작사자 박기동은 호주로 이민을 떠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해방공간에 목포의 한 여학교에서 음악과 국어를 각각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서울에서 전학을 온 "예쁘고 조숙한 천재 소녀" 하나가 폐결핵으로 쓰러졌습니다. 이것이 안타까워 시를 쓰고 곡을 붙여 애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원래 시는 요절한 여동생을 위해 지은 것인데 애제자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으로 변형되었다는, 다른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목포를 중심으로 한 빨치산들에게 구전되어 오던 이 노래는 물론 오랫동안 금지곡이었습니다. 이념으로 중무장한 것으로 알려진 그들이 사상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곡을 애창했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습니까? 맑은 눈을 한 시인을 고정간첩으로 몰아세울 수 있는 사람들로서는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일 것입니다. 그러나 문익환 목사님 말씀대로 "소리도 없이 숨을 죽이며 옮기는 발걸음"이 "세상을 뒤엎는 혁명군의 발걸음"이었으니, 목숨을 걸고 술을 마시며 흐느끼듯 노래를 부르던 이광웅 시인에게는 참으로 잘 어울리는 노래였을 것입니다. 울림이 좋은 '부용산'의 정체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말이 많습니다만 "차마 일찍이 잃어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사람이 묻힌" 말하자면 이광웅 시인 같은 이가 가 있음직한 상징적인 산이라 여기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 노래의 '복권'은 99년 목포에서 있은 초청음악회에서 소프라노 송광선이 부르면서 이루어집니다. 물론 이에 앞서 가수 이동원도 이 노래를 음반에 수록한 바 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가사가 1절밖에 없었습니다. 송교수가 음악회를 준비하면서 호주로 이민 간 박씨에게 부탁하여 2절을 덧붙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광웅 시인의 노래는 다시 들을 수 없습니다. 대신 한영애의 것을 보내드립니다. 이 노래가 실려 있는 음반은 매우 독특한 것입니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가수 한영애가 일제시대와 50년대의 대중가요를 다시 불러모은 것입니다. 이들 트로트의 "단순함과 청승스러움의 심연을 감지"하여 잘 되살려주고 있다는 평도 듣고 있고, 안도현 시인도 그 중 '낙화유수'를 휴대전화의 신호음으로 쓰고 있을 정도입니다만, 군계일학은 역시 '부용산'이 아닐까 합니다. 비교해서 들어보시라고 안치환의 노래도 함께 보내드립니다. 다시 봄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처럼 봄이 왔지만 봄 같지가 않습니다. 황사에 탄핵까지 겹쳐 어지럽기만 합니다. 아니 그래서 더 봄답습니다. 생명 세상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겨울의 정체를 맘껏 뒤흔들어야 한답니다. 탄핵의 소용돌이도 새로운 세상을 위한 몸부림, 바로 그것입니다. 어리버리 하다가는 꽃샘감기에 고생 좀 하겠지만 정신 잘 챙기고 있으면 거듭남의 당당한 주체로 서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노래 들으시며 황사바람으로 흐트러진 마음 차분하게 추스를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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