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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4 | [삶이담긴 옷이야기]
믿거나 말거나 '성형 패션'
문화저널(2004-04-20 16:06:01)
필자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 가끔 친구들에게 편지를 받으면, 분위기 좋은 유럽에 살아서 얼 마나 좋겠니 하는 내용이 많았다. 좋기도 했지만 유럽의 대학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그렇게 낭만적인 일만은 아니었고 나중에 직장에 다닐 때는 경쟁에 시달려서 그런 편지를 받을 때 면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지금도 멋과 맛의 중심지로 유럽을 동경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유럽의 오늘이 있기까 지 비참한 과거도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린넨 박물관에 갔을 때 배가 고파서 감고 있던 린넨 실을 삼켰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런 시 절이 이 땅에도 있었구나 싶었다. 16세기에는 유럽의 길거리에 하수도의 오물이 넘처나던 시절이었다. 길거리를 지날 때면 풍겨오는 악취를 견딜 수 없어 소위 귀족들은 향료 덩어리를 목에 걸고 다녔다. 포맨더(pomander)라고 불리는 이 향료 덩어리는 처음에는 오렌지의 속을 판 다음 향료를 집어넣었으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금이나 은으로 손바닥만하게 디자인하여 걸고 다녔다. 향수와 장식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었다. 옷도 그렇지만 장신구 역시 단지 장식만을 위해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기능을 갖춘 것들도 많다. 17세기에 사용하던 플럼퍼(Plumper)는 여성들의 입안을 장식하던 것이었다. 이가 빠지거나 나이가 들어서 뺨이 홀쪽 해지면 코르크로 만든 이 작은 공을 입안에 끼웠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면 성형외과 선생님이 해결해 주었을텐데......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 시절에 천연두를 앓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었다. 생사가 걸려있기도 했지만 낳더라도 얼굴에 흉터가 생기면 어떻게 한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감추기 위해서 패취(patches)를 붙였다. 처음에는 흉터를 감추기 위해서 였지만 점점 유행하게 되어 17세기 유럽에서 얼굴에 패취를 붙이는 것이 대 유행이었는데 그 문양도 다양했단다. 물론 이것도 체면을 차릴 수 있는 계층에 한한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다들 웃으면서 진짜야? 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때 그 시절 이야기이다. 미국의 작가 헨리 서로우(Henry Thoreau)는 어느 세대 건 옛것을 비웃고 새로운 것만 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패션은 끓임 없이 요동친다. 그러나 패션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변한 것은 아니었다. 장식과 액세서리나 정교한 마무리가 필요한 부분에서 변화가 빨랐고 의복 자체의 변화는 훨씬 늦고 안정적이었다. 칼라나 리본 레이스 등이 훨씬 빨리 변했는데 이 '작고 시시한 것들'이 오히려 옷의 품위를 결정지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패션은 한 사회에서 기호화되어 정교한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사회적 구별이라는 메 카니즘을 수립하게 된다. 역사의 어느 순간에 인간은 경박했고 어느 순간에는 엄숙하였고 어느 순간에는 지나치게 기 교적이었다. 유행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것처럼 사회적인 유대와 일시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도 없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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