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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4 | [문화저널]
<최승범의 풍미기행> 아가미젓의 싸락거린 맛
최승범(2004-04-20 15:45:09)
아가미젓의 싸락거린 맛 '아가미젓'을 아는 젊은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가정에서도 식당에서도 이 젓을 상에 올리는 집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어린시절만 해도 이 젓으로 하여 겨울이나 봄 한철의 입맛을 돋우곤 하였다. 섣달 무렵 집안에 대구나 생명태가 들어오면 어머니는 으레 이 젓을 담그기 마련이었다. 할머니나 어머니는 이 젓을 '아가미젓'이라 일컫기 보다도, -구셈이젓 이라 하였다. '구셈이'란 아가미의 남원, 곡성 지방의 사투리였던가. 서혜경 교수의 이야긴 즉, 아가미젓도 지방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고 했다. '흔히 아감젓이라 하며, 강원도에서는 서거리젓, 함경도에서는 수메젓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27종의 젓갈 이름이 나오는 이용기(李用基)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을 살펴보니 아가미젓에 해당되는 젓갈은 드러나 있지 않다. 내친김에 남경희(南京希)의 <간추린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1981)을 들추어 보자 '대구아가미젓'이 나온다. 남녀사는 속리산에서 '경희식당'을 경영하며 많은 손님들의 입맛을 즐겁게 하여 준 분이기도 하다. 나도 1990년대의 중반이었던가, 여름철의 어느 날, 저 식당에 들려 점심을 감식(甘食)한 바 있었다. 그러나 '대구아가미젓'은 챙기질 못하였다. 남녀사는 저 책에서 아가미젓을 담그는 방법까지를 말하고 있다. '알배기 대구의 뱃전덕이와 아가미 머리부분의 연하고 씹어지는 부분가 빼낸 알을 터트려 놓은 것에 동치미 무를 가로 1cm, 길이 1cm, 두께 3mm로 얄팍하게 썰어 얹어 고춧가루·조미료·설탕을 고르게 무쳐 담는다'고 했다. 재료의 배합률까지도 들어 놓았다. 그러나 음식맛의 미묘함이란 '기계의 힘으로써도 측정해 낼 수 없을만큼 정밀한 것' 아니겠는가. 이 말은 소설가 이주홍(李周洪)의 <식락태평기>(食樂太平記)에서 읽었다는 기억이다. 최근 몇 차례에 걸쳐 아가미젓으로 하여 입맛을 돋군바 있다. 시내에 있는 '송림일식'(전주시 중앙동2가 43-3, 전화 284-1845)에서였다. 생태탕으로의 점심식탁이었는데, 아가미젓이 올라 있었다. 얼마만인가.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아가미젓이다. 입안에서 되살아나는 맛으로도 바로 아가미젓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미심쩍어서라기보다도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도우미에게 물어 보았다. -명태아가미젓 이란다. 어린시절에 즐겨 먹었던 구셈이젓(대구아가미젓)의 맛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오직 잇사이에서 느낄 수 있던 싸락거리던 멋이 덜린 듯 하다. 대구아가미와 명태아가미의 차이이겠지 생각하다가 유심히 살펴보니, 아닌게 아니라, 붉은 참빗(眞梳)의 빗살 모양의 아가미의 빛깔과 크기와 갈래가 다르다. 바둑알 크기로 얄팍얄팍 썰어 넣은 무의 잔 조각도 몇 낱 더 들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일기도 했다. 나는 '송림일식'에 들리면 생태탕 아닌 회정식을 먹거나 회접시를 놓고 술잔을 기울일 때거나 먼저 아가미젓부터를 챙긴다. 글쎄, 여름철엔 어쩔지. 그러나 냉장고 세상이니, 주인의 마음쓰기에 따라서는 어느 철이라하여 밑반찬으로 챙기지 못할 것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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