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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4 | [서평]
민족사, 그 유혹의 시원(始原)
이동재 시인(2004-04-20 15:42:14)
『神市의 꿈』(이병천, 2004, 한문화) 역사의 유혹은 소설가들에겐 숙명적인 그 무엇이다. 허구로서의 소설은 사실로서의 역사의 결핍이다. 따라서 소설은 역사를 욕망 한다. 그러나 소설은 역사에 도달할 수 없으며 도달해서도 안 된다. 둘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끊임없이 역사를 욕망하며 역사에 접근하려고 한다. 그 현실태가 역사소설이다. 역사소설은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다. 역사소설에 대한 가치 평가는 소설의 내용과 역사적 사실 사이의 근접성이나 거리의 원근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역사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는 끊임없이 역사적 사실과의 일치 여부에 고착되어 있는 듯하다. 이러한 경향은 역사적 기록의 진실조차 의심해봐야 하는 연구자들에겐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문학사의 흐름 속에서 역사소설이 유행한 시기는 크게 세 번이다. 그 세 번의 시기는 각각 애국계몽기와 192·30년대 그리고 197·80년대였다. 각각의 시기에 유행했던 역사소설들은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각각의 시기에 담당했던 문학사적 역할이 있다. 애국계몽기의 역사소설은 전근대와 근대의 교차시기에 전근대문학의 양식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면서 국권상실의 위협에 대항하고자 한 민족사적인 의지의 발현이었다. 주로 민족사적인 영웅들을 주인공으로 했던 이 시기의 역사소설은 국권상실로 인한 현실적인 제약과 전근대적인 의식의 한계로 말미암아 그 수명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민족의식의 고취를 통한 국권수호와 근대적인 민족국가의 건설을 위한 국민화 과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바가 있다. 이어서 2·30년대에 유행했던 역사소설은 애국계몽기에 나왔던 역사소설의 양식적인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한 면도 있으나 역사의 사사화 혹은 현실 도피로서의 제재적 수단으로 전락한 혐의를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7·80년대에 쓰여진 대하역사소설들은 왜곡된 한국근대사의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는 사회사적인 변화와 민족사의 주체 세력에 대한 변화된 역사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21세기초에 쓰여진 이병천의 『神市의 꿈』은 어떠한 역사소설인가? 역사 연구는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자료의 부족으로 인한 현실적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역사의 시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신화와 만나게 되는 것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역사의 시원에서 역사와 문학의 경계는 모호하다. 신화는 어쩌면 빅뱅 이전의 우주처럼 역사와 문학이 분리되기 전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화는 역사의 모태이자 문학의 자궁이다. 그러나 상징적인 언어 속에 갇혀있는 신화적인 역사가 문학의 축복이 될 수만은 없다. 고대사를 배경으로 했던 2·30년대의 역사소설들이 한계를 드러내는 지점이 바로 역사적인 기록과 연구 자료가 부족한 역사적 시기와 사실을 문학적으로 재구해내야 하는 바로 그 지점이다. 이미 신화가 서사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상실한 현실 속에서 역사적 사실과 자료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작가의 상상력은 개연성과 합리적인 논리를 요구하는 근대적인 서사의 요구와 독자들의 안목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이병천의 『神市의 꿈』이 다소 위험하게 보이는 점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소설은 대종교의 창시자이자 독립운동가인 홍암 나 철 선생(1863∼1916)의 생애를 다루고 있는 역사소설이다. 현재의 전사(前史)로서의 역사를 대상으로 요구하는 루카치 식의 역사소설을 상정할 때 나 철과 그의 생애는 매력적인 역사소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위험해 보이는 것은 근대인 나 철 때문이 아니라 대종교(단군교)의 창시자 나 철 때문이다. 단군과 단군에 관련된 역사는 근대의 한국사 속에서 오랫동안 신화로 격하되거나 믿을 수 없는 역사로 취급되었다. 물론 그것은 일제와 일제에 의해서 교육받은 역사가들에 의해 형성된 담론일 수 있다. 단군과 관련된 『천부경』『삼일신고』『한단고기』『태백일사』『부도지』 등의 기록들이 사학계에서 의심받고 있는 것도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민족이나 국가의 역사도 윗대로 올라갈수록 신비화되는 측면이 있고 또한 사료의 부족을 드러낼 수밖에 없으며, 있는 사료의 기록조차 위조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단군의 사적과 자료에 대한 이야기도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이병천은 이러한 한계를 우리말의 어원에 대한 고찰이나 음식 및 생활 풍습과 전통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나름대로 역사적 사실의 사료적 공백을 메우고 있다. 나 철의 생애와 그가 세운 대종교는 그와 대종교의 역사적 비중에 비해 너무 무시되어 왔다. 적어도 19세기말부터 1920년을 전후로 한 시기의 민족주의 운동이나 독립운동의 중심엔 동학(후의 천도교), 강증산교, 대종교 등의 민족종교가 자리잡고 있었다. 1920년대 이후 사회주의 세력이 전면에 나서기 전까지 이들 민족종교와 그 지도자들은 민족 운동의 중심이자 전위였다. 따라서 이들 민족종교와 그 추종자 및 지도자들에 대한 일제의 탄압과 억압이 극심했음은 당연하다. 노예의 특징은 자신의 부족신 대신 주인의 신을 섬기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민족 종교의 위축과 외래종교의 세력 확장이 단순히 문명 개화나 세계화의 증거로, 혹은 일제가 규정한 것처럼 민족종교는 사이비고 기독교나 불교만이 고등종교인 것처럼 말하는 일부의 편견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혹시 보편성의 이름으로, 세계화의 이름으로 누군가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소설은 한번쯤 의심케 한다. 잊혀진 역사, 망각되어서는 안되지만 의도적으로 거세되었던 역사와 인물들을 다시 역사의 표면으로 부상시켰다는 점만으로도 이병천의 『신시의 꿈』은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할 받을 수 있다. 돌보지 않은 역사가 결코 우리 것이 될 수 없음을 발해사나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작업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고구려사가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자료의 부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 대종교의 창립을 전후로 한 인물들의 갈등과 고민, 내분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나 철의 자결을 둘러싼 문제의 처리와 대종교의 사상이 충분히 작품 속에서 표현되지 못한 아쉬움은 그대로 남는다. 또한 너무나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주마간산 식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도 눈에 거슬리는 면이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집중과 선택의 묘가 좀 더 필요했을 듯 싶다. 격동기 민중들의 삶이 핍진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화자의 시선이 원경에서 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작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창작 방법일 수도 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이러한 한계 혹은 특징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은 차분하면서도 맛깔스런 문장을 자랑하고 있다. 『神市의 꿈』은 애국계몽기에서 7·80년대의 역사소설로 이어지는 한국 역사소설의 맥을 나름대로 계승하고 있다. 끝으로 역사소설로서의 『神市의 꿈』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 의미는 아무래도 나 철이 죽기 전에 남겼다는 글의 끝 구절에서 찾아야할 것 같다. '食飮赤靑 弘益理化'(식음적청 홍익이화)의 민족사적 새 날과 인류사의 미래를 새롭게 여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가 이병천은 우리 문학사의 최전선이자 미래이다. 이동재/강화 교동도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시인, 문학박사, 전주대 객원교수로 있으며, 시집 <민통선 망둥어 낚시> <세상의 빈집>, 저서 <20세기의 한국소설사> <문학감상과글쓰기>(공저) 등이 있다. 주소:경기고 고양시 일산구 일산4동 1165번지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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