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4 | [문화시평]
제13회 신예작가 초대전
구혜경 객원기자(2004-04-20 15:34:31)
'신선한 충격'은 계속되어야 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빠듯한 시간에 쫓기며 부랴부랴 전시장을 찾았다.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신예작가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다. 올해로 벌써 열세 번째를 맞이하는 전시라서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새봄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이제 막 졸업한 젊은이들의 작품을 볼 생각에 가슴이 설레고 가벼운 흥분이 일었다. '신예작가초대전'은 전북에 있는 5개 대학의 미술학도들이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딛는 전시이기도 하고, 전북미술의 미래를 감지해볼 수 있는 자리여서 더욱 그들의 작품이 궁금해진다. 참여작가 박영숙, 이권중, 김효진, 손선미, 송효숙, 오민환, 류기관, 전재철, 박성근, 김경연, 오완, 이연순.
전북에서 '신예작가초대전'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먼저 가능성 있는 예비작가 발굴 육성을 도모할 수 있어서 그렇고, 또 그 작가들이 전북화단의 기둥이 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하는 의도라서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전시들이 어느 정도 작가로서의 의지와 발판이 마련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기획되어왔으나 신예작가 초대전처럼 예비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당시 신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전시가 이어져 오면서 참여했던 많은 작가들 중에는 지금도 전북화단의 중심이 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전시의 기획의도가 제대로 반영된 셈이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고 작가들의 사고가 변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기획 의도가 어느 정도까지 작가들에게 체감되고 있는지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한 얘기로 예전에 화가들에게 왜 그림을 그리느냐고 물어보면 그냥 그림이 좋아서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순수한 창작의지에 의한 작품활동이 많았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막연히 좋음에 이유가 적용된다.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작가들에게 이제 그림은 생계의 수단으로 치열해지거나 아니면 포기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기획전에 대해 외부적이든, 내부적이든 한 번쯤은 작가와의 관계에서 객관적으로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예술에 현실이 반영되지 않고 작가와의 관계에서 거리감이 생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먼저 기획의도가 어느 정도 예비작가들에게 작가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세대가 변했듯이 화단의 경향과 분위기도 많이 변해 있는 상태에서 예비작가들이 포괄적으로 전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주지해야된다. 그렇게 보자면 선정된 작가들 중에 얼만큼이 전북 화단을 이끌어갈 재목이 될 것인지 걱정스런 마음이 앞선다. 이런 현실문제를 감안하고 처음 기획전의 의도대로 예비작가들의 가능성, 즉 화가가 될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진 작가를 선정해야 만이 형식적이고 일회적인 전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화단 전반에, 또는 미술대학 전체에 자리 잡고 있어야 제대로 바탕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다음에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미술대학에서 예비작가 배출에 얼마큼 책임을 지고있느냐는 문제이다. 전북에는 5개 대학 뿐 아니라 그 두 배만큼 미술학과를 가지고 해마다 많은 예비작가를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졸업한 후의 상황을 보면 그 중 몇 퍼센트도 안되는 사람만이 화가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하루 이틀 된 것도 아니고 대학의 문제만도 아닌 사회전반에 흐르는 현실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지금의 상황에서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순수예술에 대한 근본조차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이번 전시에서 보더라도 십 여 년이 지났지만 보여지는 예비작가들의 작품들은 그다지 변화의 흔적들이 없다. 또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어느 학교 출신인지, 심하게는 누구의 제자인지 금방 드러나게 된다. 이것은 곧 예술 안에 치열함 없이 안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작품의 형식에서 시대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획일화되어 보여주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더 이상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도 없다. 이러한 현실을 체감하면서도 대부분은 묵인하며 지금까지 오고 있다. 대학에서 먼저 의식과 방법을 바꾸지 않으면 더 이상의 작가배출도 단단한 전북 화단의 미래도 없을 것이다. 이것을 걱정하며 화단 전체는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예비작가들의 개성과 취향이 톡톡 튀는 작품들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이제 기획전 속으로 들어가 참여하는 작가들의 선정방식을 짚어보자. 기획 처음부터 지금까지 각 대학에 의뢰하여 선정하는 사람의 글과 함께 작가를 참여시키는 방법으로 하고 있다. 이 글들을 보고 있으면 모든 예비작가들이 뛰어난 재능으로 화단에 새바람을 불게 할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대부분 보여지는 카탈로그의 전시서문에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굉장한 작가가 탄생한 듯 찬사와 모든 미화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실제와는 다른 경우들이 많이 있었다. 여기서도 과연 참여작가는 각 학교의 학과를 제대로 반영하고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게 된다. 이 전시가 전북화단의 미래를 감지하고자 하는 것인 만큼 편협된 시각을 탈피하고자 각 대학의 여러 전공자들을 모아놓고 있지만 전시장 가득 놓여져 있는 작품들은 작가들의 개성보다는 의무감에 지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선이 여전히 보여진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작가로서의 기질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작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젊은 작가 부재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화단에서는 여전히 신선한 작가에 대해 갈급 할 수밖에 없다.
이와 대별되는 얘기로 이 전시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얼핏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J대학에서 한 파트 전공자를 선정하지 않고 포기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말해주고 있다. 하나는 젊은 작가 부재현상이 대학 내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대학의 선정자들 스스로 자존심을 세우고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끼워 맞추기 식의 참여를 거부한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지는 당연한 것이면서도 아직까지 우리에게 낯설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오랜 고정관념 속에서 답습이 익숙해져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두 번째 이유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머지않아 그 전공학과에는 결단력 있는 스승 못지 않은 제대로 된 작가가 탄생하리라 예감해 본다.
마지막으로, 참여하고 있는 작가들의 내부로 들어가 보자. 이 전시에는 총 12명의 작가가 참여하고, 지금까지의 작가들을 합친다면 백 오십여 명이 넘을 정도로 많다. 모든 참여자들은 예비작가로서 첫 발을 내딛는 자리인 만큼 강한 의욕과 설레는 마음이 함께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머리 속에는 전시에 대해 제각기 다른 생각들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진정한 화가의 길을 고민할 수도 있고, 또 단순히 일회적인 스포트라이트에 관심을 보인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길을 가는 마지막 피날레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전시에 참여하는 이들보다 수 십 배 많은 예비작가들 속에서 선정된 소수가 진정한 화가이기보다 다른 진로를 선택하고 있다면 문제는 전시를 떠나 미술계 전체가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선정 자체에 오류가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 전시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참여 작가들의 우월감이나 다른 예비작가와의 이질감이 생기고 있는 현실에서 진정한 젊은 작가가 될 사람이 누구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기성작가들이 해야할 일은 바로 표면적인 스포트라이트보다 그 내면에 있는 열정과 가능성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교각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신예작가 초대전'이 올해도 어김없이 12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전시를 보여주고 있다. 이 시점에서 내 개인적인 생각과 이 글을 요약하자면, 처음에 가졌던 신선한 충격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길 바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방식이 아닌 다른 새로운 모습을 제시해야한다는 생각이다. 선정된 작가들은 예술활동에 대한 강한 의지와 의식이 있어야하고 관계자들은 그것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려면 예비작가를 배출하는 대학에서부터 작가로서 자리 매김 할 수 있게 방향을 마련해 주고, 도제식 교육이 아닌 다양함을 경험시켜 각 개인마다의 개성과 가능성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선정작가들은 이러한 전시를 계기로 작가들 스스로 자부심을 강화하여 결속력 있게 젊은 작가의 선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야한다. 또 이러한 전시를 보는 사람들은 주목받은 그들만이 젊은 작가를 대변하는 것이라는 단편적인 시각이 아니라 그 이면에 더 많은 숨은 작가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의식들이 미술계 전반에 흐른다면 분명 이 전시를 통해 작가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 기대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