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4 | [새책 및 새비디오]
<새책> 『누가 걸어간다』
문화저널(2004-04-20 15:24:38)
<새책>
『누가 걸어간다』윤대녕 지음, 문학동네 펴냄
우리 시대와 삶에 대한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인식을 보여주는 윤대녕의 네 번째 소설집. 이 책에는 군대라는 사회 조직에 의해서, 위암이라는 병에 의해서, 가족의 상실에 의해서 출구와 봉쇄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윤대녕은 독특한 상상력으로 이러한 인간관계의 불완전성과 소외, 그리고 그 속에서의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준다. 또 '정체성 위기'의 현상과 원인을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존재론적으로 다양하게 탐구하고 있다.
글쓰기를 위해 제주도로 내려갔던 중견작가 윤대녕이 '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이후 5년만에 내놓은 작품. 책에는 2003년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 '찔레꽃 기념관'을 포함해 모두 6편의 중·단편이 실렸다.
줄곧 천착해온 소통되지 않는 인간의 고독과 정체성의 위기라는 주제를 보다 성숙하고 다양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표제작 '누가 걸어간다'는 이혼과 위암으로 인생의 패배자가 된 한 남자와 첩의 딸인 한 여자가 동병상련의 감정으로 서로 가까워지지만 끝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지는 못한다는 내용. 삭막하고 비인간적인 일상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은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음을 그려내고 있다.
『성에』 김형경 지음, 푸른숲 펴냄
김형경씨의 다섯번째 장편소설. 장편 『사랑을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펴낸 지 2년반 만이다. 사랑이라는 테마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탐구했던 전편에 비해, 이 작품은 전편의 관심을 이어가면서도 서사의 구조가 좀더 흥미로워졌다. 그러나 작가가 늘 관심에 두고 있는 사랑과 환상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을 갖는 작품이다.
폭설 내린 숲 속, 세상과 차단된 외딴집, 처참하게 버려진 세 구의 사체, 그리고 이어지는 광기에 들린 듯한 성(性)에의 탐닉과 죽음과도 같은 적멸감…….
이 책은 비밀스럽고도 주술적인 세계로 이끌려간 두 남녀의 기이한 체험을 기록하고 있다. 전 생애를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을 만큼 위험하지만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이 치명적인 유혹을 통해, 사랑과 성에 대한 모든 비밀과 암호를 파헤쳐 지리멸렬한 생의 비밀을 읽어내려는 열망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작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함부로 들추어보거나 섣불리 마주쳐서는 안 될 '아쉽고 허망하고 박탈당한 것들'을 굳이 피하려들지 않고 집요하게 추적해 들어가 본연의 맨 얼굴을 드러내 보이고 마침내 그것을 '마음껏 빛나고 충만하며 아름다운' 것으로 탈바꿈시켜 삶의 새로운 영역으로 재편시킨다.
『김남주 평전』 강대석 지음, 한얼미디어 펴냄
혁명시인 김남주, 전사였고 시인이었으며 민중의 벗이었던 김남주.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흐른 시점, 그 시절 함께 고민하고 투쟁했던 지인(민족시인김남주해남기념사업회)들이 모여 김남주 전기를 펴냈다.
김남주의 삶을 다룬 단순한 전기 이상의 의미로 예술과 철학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것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흥미로운 논쟁거리를 던져준다.
김남주의 삶과 문학을 시간 순으로 재구성한 최초의 평전으로 '시와 혁명'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라' 등 김남주가 남긴 산문집과 대표시, 김남주에 대한 각종 연구서와 지인(知人)들의 증언 등을 종합해 현실의 억압과 모순 속에서 시인이 투사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대구대 철학과에 재직 중인 저자 강대석 교수는 평전 2부에서 '민족시인과 민중시인' '이론과 실천'이라는 글들을 통해 김남주의 예술관과 세계관을 조명했다. 한편 창비는 4월 말에서 5월 초 작가회의와 민예총이 주관해 개최하는 10주기 기념행사에 맞춰 시선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미술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들』 이명옥 지음, 다빈치 펴냄
초·중·고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작품을 중심으로 즐거운 미술 읽기를 시도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정사를 야사처럼 풀어보겠다고 나선다.
미술 수업시간에 한 번쯤 보았음 직한 친근한 그림을 설명하는 방법은 교과서에서 만난 딱딱한 미술이 아니다. 저자의 친절한 설명을 따라 그림 속 단서를 추적하며 작품 제작 당시의 시대상황이나 시대 정신, 전통과 문화를 따라잡는 맛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천재들의 전성시대 르네상스, 그 중에 '빅3'는 미켈란젤로·다빈치·라파엘로. 탄생 당시부터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모나리자'가 그토록 신비롭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바로 눈매와 입가의 윤곽을 흐릿하게 처리하는 스푸마토 기법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책 속에는 미술사의 혁명적 작품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미술여행의 종착역은 이종빈의 소박한 나무 조각 'L씨의 꿈'(1993). 양복 차림의 샐러리맨이 가슴에 무지개를 소중히 품고 있는 형상이다. 그러나 그 소박함과 절절함이 결국 '미술은 우리 일상의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한다. 학교에서 기본 지식을 배운 뒤 각자 전공을 찾아가듯, 이 책은 보다 집중적인 미술 감상에 나서도록 기본기를 가르치는 흥미로운 교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