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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8 | [시사의 창]
[전북의 땅과 문화, 사람들 - 장수] '가뭄 속 단비' 같은 인물발굴 사업 장수 문화와 문화정책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4-07 10:51:34)
소백산맥 줄기에 둘러싸인 장수는 '전라북도의 지붕'이라 할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다. 어딜 가더라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오는 산봉우리들이 사방에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있어 분지로서의 아늑한 분위기가 현대인의 숨가쁜 일상과 도심의 분주함을 단숨에 떨쳐내 준다. 지난 20~30년에 걸친 극심한 인구 감소와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라는 훈풍(?)에서 소외돼 왔던 터라 군세 약화와 침체기를 맞고는 있지만, 무공해 청정도시라는 이미지와 인물 발굴 사업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발전 가능성에 가속을 붙여놓고 있다. 그러나 전체 면적의 겨우 16% 정도만이 농토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산으로 이뤄져 있는 탓에 산골 마을 장수 사람들의 삶은 척박하고 고단할 수밖에 없었다. 고지대 특유의 기후 조건으로 갑작스런 기후변화가 잦아 타 지역에 비해 서리나 우박의 피해가 많았다는 것도 장수 사람들의 척박한 삶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한때 장수가 전라 좌도 농악의 본 고장으로 이름을 높였던 것은 장수 사람들이 살아낸 삶의 궤적에서 그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산골 오지 마을 사람들의 삶이 고단할수록 거친 쇠가락과 처량한 노랫소리가 그들의 유일한 위안이자, 문화적 분출구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초중고교를 중심으로 좌도 농악을 전수하고 가르치는 상쇠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고향을 등지면서 그 명맥이 거의 끊긴 상황이다. 대부분 사람을 매개로 전해졌던 들노래나 농악도 마을마다 사람이 줄어 들고 가뜩이나 촌로들만 고향에 남겨진 상태여서, 그 옛날 고단한 일상 한 켠에 열어두었던 '문화적 여유' 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게 지금 장수가 처한 현실이다. 현대에 와서 황희정승이나 논개, 백용성 조사 등이 장수 태생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나서부터는 '장수가 낳은 장수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도시 이미지 구축과 문화정책들이 '가뭄 속 단비'처럼 속살거려지고 있지만, 장수 문화를 현대화하는 문화 인사들은 그다지 도드라져 있지 않다는게 또 하나의 아쉬움이랄 수 있다. 장수지역의 문화단체를 꼽는다면, 장수 문화원과 지난해 창립된 의암주논개 정신선양회, 법인체로는 유일하게 문인협회가 꾸려져 활동하고 있고, 여타의 자생적 문화단체나 동호회로는 서예나 사진 동호회가 전부다. 그나마도 대부분 논개나 장수 인물 부각 사업 등이 문화활동의 중핵을 이루고 있어 문화의 다양성이나 풍부함 면에서는 적잖이 위축돼 있는게 사실이다. 벼루 장인 고태봉씨와 향토사 연구가 고두영씨, 김진수 문화원장 등은 이같은 척박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장수 문화를 일궈내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는 문화관계자들로 꼽힌다. 촉석루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순절했던 의암 주논개는 장수 안에서 가히 문화적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논개 선양 사업은 의암호 정비와 논개 생가 복원 등을 비롯 논개 생애와 정신을 기린 각종 서적 편찬 사업 등이 주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특히 장수의 논개 대축제는 이 곳 주민들의 가장 큰 '놀이판'이자, 대규모 문화행사의 집합체가 되고 있다. 매년 9월 의암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논개 축제는 논개의 혼과 넋을 기리는 혼불채화 및 봉송으로부터 시작해 논개의 업적과 정신을 담은 민요와 농악, 판소리, 국악가요 등으로 꾸며진다. 최근에는 역사와 인물에 대한 현대화 작업이 활발해지면서 논개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책 발간사업이 거의 마무리 된 상태로, 논개의 대중화 및 교육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8월말 경 출판되면 올해 논개 축제에 참가한 관객들을 대상으로 3천부 가량을 무상으로 나눠줄 예정이다. 논개가 공적을 올렸던 진주성 2차싸움을 근거로 기념사업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진주시와 갈등을 빚어왔지만, 논개의 장수 태생설이 뒷받침되면서 문화적 주도권이 어느정도 장수로 넘어왔고, 이에 따른 논개 선양 사업도 힘을 얻고 있다. 오랫동안 공연이나 '내용물'을 수용할 만한 문화관련 시설이 태부족이었던 상황에서 문화예술회관 건립 계획이 구상되고, 폐교된 장안초등학교를 활용한 문예촌 운영 계획 등이 속속 마련되는 것도 주목할만 하다. 장수군은 지난 7월말 문화예술회관 후보지에 대한 공청회를 열어 여론을 수렴하는가 하면, 문예촌을 기반으로 문화예술인들의 창작물을 생산과 관광의 개념으로 산업화한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문예촌은 공모를 통해 입주한 공예인들을 주축으로 벼루나 한지, 도자기, 석공예, 목공예 작품 등을 제작, 전시, 판매함으로써 생산업체의 판로확대와 넓게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한다는 방침이다. 장수군이 의암사에서 논개 생가 구간에 걸쳐 관광순환도로 개설을 서두르고 있는 것도 문예촌 관광객 유치를 위한 나름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랄 수 있다. 전국적으로 이와 비슷한 형태의 예술촌 등이 대부분 고전을 면치 못하거나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어, 장수 문예촌이 대중성과 관광산업으로의 가능성을 어떻게 확보해 나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선조 유배지로 각광(?)받을 만큼 사람 살기가 힘들었다는 장수. 교통이 발달하면서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민선자치시대를 맞아 각 지역 관광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장수 사람들의 '희망 찾기'도 점차 기지개를 펴고 있다. 무엇보다 그 '희망 찾기'의 가장 큰 동력은 정신적 구심체를 중심으로 한 주민들의 화합에 있을 것이다. 장수 주민들은 지난 80년대 논개 기념관 건립을 둘러싸고 장수와 장계가 극심히 대립해 결국 두 곳 다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던 '불행한' 과거 속에서 주민들의 구심체 확보가 어떤 문화정책이나 사업보다 우선된다는 교훈을 얻은바 있다. 장수 문화관계자들 거의 대부분이 충절과 의로움을 대표하는 '2덕 3절 5의'를 정신적인 스승으로 삼고 있고, 장수만의 가장 큰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어 장수군민들에게 이 열 명의 인물은 가히 축복에 가까워 보인다. '2덕3절5의'가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 상대적으로 내세울만한 문화 흔적이나 활동이 미약해서 일수도 있지만, 도시 이미지를 확보하고 알려나가는 데에 이만한 자산이 또 어디에 있을 것인가. 정감 어린 촌부들의 넉넉한 여유와 인심이 점차 아쉬워져 가고, 약화된 군세를 끌어올리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장수의 희망과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정신적인 스승으로 길이 계승해 나갈 열 명의 인물들이 그렇고, 사방 가득 펼쳐진 청정 자연이 바로 장수의 가능성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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