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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3 | [문화저널]
<김규남의 전라도 푸진 사투리>
김규남(2004-04-20 14:32:20)
'근다고'와 '머덜라고' 경이로운 시 두 편 '근다고'와 '머덜라고'를 선보입니다. 근다고 붉은 우체통 하릴없이 뒤지네. 근다고 소식 한 장 없냐, 이년아? 머덜라고 붉은 우체통 청첩 한 장 뒹구네. 머덜라고 보냈냐 이년아! 이 시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는 시입니다. 전라도 사람이면 누구나 이 시의 절묘한 시적 장치들과 시어 사용의 탁월함에 혀를 두를 지경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소 조악한 표현들이 들어 있어서 시로서의 정체를 의심할 분도 있겠지만 어떻든, 전라도 방언으로 밥 벌어 먹으며 살아온 저로서도 '근다고'와 '머덜라고'가 이렇게 적절하게 하나의 텍스트 속에서 면발 싱싱하게 되살아난 것은 미처 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은 두 편의 방언 연작시에 대한 텍스트 언어학적 접근이라는 그야말로 말 같지 않은 '비암다리'를 붙여 보겠습니다. 그에 앞서 잠깐 이 시에 대한 전통 비평적 관점에서 이 텍스트의 저자와 출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 시는 제가 영국에 있을 때 저의 무료함을 달래주려고 전주역사박물관 학예실장 김성식 선생이 보내온, 사려 깊은 메일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김성식 선생은 평소에도 '소노여남'을 막론하고 '경끼로운' 입담으로 그가 나타나는 곳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자아내 온 사람입니다. 그가 시인이나 소설가로서의 탁월한 잠재력을 가진 것은 문화저널 애독자라면 누구나 알 것입니다. 그는 줄곧 심상치 않은 결말을 예고할 때 그는 늘 정중하고 점잖은 허두를 수수깨끼처럼 던지는 말하기 전략을 구사해 왔습니다. 메일의 서두를 '저는 시인이 될 줄 알았습니다. 어쩌자고 시인이 될 생각을 했으며, 어쩌자고 지금껏 시인이 못 되었는지 알 길 전혀 없습니다'로 시작한 것 역시 그 이의 전모를 아는 분들에게는 이 말이 우리에게 주는 긴장성 효과를 줌으로써 연작시라는 하나의 텍스트를 이해하기에 앞서 그이의 얼굴이며 행동 양식들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이 작품의 이해와 감상에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텍스트는 구조를 갖추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하나의 완성된 단위입니다. 텍스트가 형성되는 데 우선 중요한 것이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결속하게 만드는 장치 즉 지시적 요소들인데, 이 연작시의 제목 '근다고'와 '머덜라고'는 바로 이 시 같은 텍스트를 당당히 시로 끌어 올리는 결정적 '쇳대'입니다. 그러니까 '근다고'는 이 단어가 쓰이기 이전에 무엇인가 일련의 사연이 존재했을 때 사용 가능한 어휘입니다. 우리는 그 일련의 사연을 시의 본문 '소식 한 장 안 보내냐'와 '이년아?'에서 그 대강을 순간 식으로 확보하게 됩니다. 두 사람이 거시기헌 사이였다가 지금은 거시기헌 사이며 그 후 놈의 처지와 심경은 '하릴없이'에서 도드라지게 처량해 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 '근다고'는 그 자체로는 텍스트로서의 완성도가 다소 약합니다. 이것은 '머덜라고'와 함께 존재할 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머덜라고'는 이 두 편의 연작시를 한 편의 완성도 높은 텍스트로 만드는 또 하나의 결정적 '쇳대'입니다. '머덜라고'가 가진 텍스트 안에서의 지시적 요소는 참으로 많아졌습니다. 전편에서 우리는 놈의 처지가 참으로 '추리닝'스럽게 되었음을 확인하였으며, 그 처지의 일관성은 '붉은 우체통'의 반복 사용을 통해 유지되면서 동시에, '청첩'에서 결정되는 그의 처절함은 '머덜라고'와 부딪치는 순간, 우리를 열광('대부분 웃음이겠으나 심지어 감동조차 될 수 있는' 이에 대한 좀더 상세한 논의는 '새벽강' 10시 반쯤을 참조하시오)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것이지요. 즉, 연작시 형태로 되어 있는 이 시의 핵심은 '근다고'와 '머덜라고'라는 요소가 텍스트 구성상 지시적 기능이 강한 데서 비롯된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세상살이의 지식을 배경으로 또 그 배경이 비슷한 경우라고 한다면 역시 비슷한 상황들을 추론해서, 이 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 밖의 어떤 상황들을 끌어내게 만드는 요소가 바로 '근다고'와 '머덜라고'이기 때문입니다. '근다고'를 표준어로 바꾼다면 '그렇다고'에 가깝고, '머덜라고'는 '뭐 하려고'에 가깝습니다. 제가 굳이 가깝다는 말을 쓴 까닭은 방언형과 표준어형이 갖는 의미가 유사하다고 할지라도 그에 담긴 정서까지 닮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근다고'의 표준형 '그렇다고'는 '근다고'를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얼핏 표준어처럼 보이는 방언형 '그런다고'가 '근다고'의 앞선 형이며 '그렇다고'와 '그런다고'는 받침의 'ㅎ'과 'ㄴ'은 엄연히 다른 기능을 갖기 때문에 서로 다른 셈입니다. '머덜라고' 역시 '뭣 허-+ㄹ라고'라는 전라도 방언 어휘들의 융합형입니다. '뭣>멋'의 변화와 '멋'의 'ㅅ'이 '허-'의 'ㅎ'과 결합할 때 'ㅎ'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ㅅ>ㄷ'의 'ㄷ'이 음절 변동을 만들면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따라서 이 두 요소들은 전라도 말에 기원하고 있는 요소들과 전라도 말에서 존재했던 음운 현상이 적용된 결과입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독자적으로 변화를 겪은 즉, 전라도 사람들이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인 셈이지요. 혹시 이 글을 읽으시고 제게 '근다고'로 꺼내실 말이 있으시다면 우선 '머덜라고' 제가 이런 글을 썼을까를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어휘에 따라 그 쓰임이 다른데, '머덜라고'와 '근다고'라는 방언형은, 이미 오랜 시간의 깊이를 가진 채 전라도 안에서 이루어진 독자적 변화의 산물이며, 전라도 화자들이 텍스트 밖의 상황을 전제하고 추론하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능을 갖는 요소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쓰임새로 말하자면, 일정한 텍스트 안에서 그 기능의 생기가 이런 방식으로 발랄해질 수 있다는 것을 탁월한 잠재적 시인 김성식의 연작시를 통해 확인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어떻든 '둔너, 인나'는 더 이상의 생산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사장되어 가지만, 연작시 '근다고'와 '머덜라고' 이후, 이 장치를 이용한 기발한 착상들로 한 동안 이 동네가 재미있어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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