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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3 | [문화저널]
<아날로그 편지쓰기>
봉귀숙 전국여성노조 전북지부 지부장(2004-04-20 14:30:06)
다시 시작하는 언니에게 오랜만에 마음 편한 휴일을 맞이하여 집 뒤에 있는 산을 1시간동안 여유롭게 타고 내려왔습니다. 춘분이 지난 몇 일 동안 낮 시간에 내리쬐는 햇빛으로 봄이 곧 오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오늘 산에서 겨우 내 꽁꽁 얼어붙었던 땅이 따스한 햇빛을 받아 서서히 풀리는 것을 보고 또 밟아보면서 곧 올 봄의 희망찬 기운을 폐부 깊숙이 안고 내려왔습니다. 참, 산을 내려오면서 이번 봄에는 이 곳에 와서 쑥이랑 달래를 캐어 된장에 끓여 먹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왔습니다. 언니도 시간이 된다면 제 집에 들러서 쑥이며 달래를 같이 캐고 맛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언니, 곧 있을 개학 때문에 바쁘겠어요.컴퓨터나 마음수련 공부하는 언니를 보니 이제는 안심이 됩니다. 후후~ 어린 제가 언니를 염려하고 있다니 조금은 건방지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이제야 언니의 또 다른 자리가 생겨서 안심이 됩니다. 인간이 물질에 소외당하지 않고 누구나 공평하게 사는 세상이 옳은 진리라는 믿음 하나로 다니던 대학을 팽개치고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던 젊은 시절 언니의 모습이 잠시 떠오릅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쌍방울 하청업체에서 일을 하며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던 내게 언니가 알려줬던 내용은 저를 몹시도 흥분되게 만들기도 하였지요. 일하는 사람에게도 헌법이 아닌 노동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 노동자는 왜 8시간을 요구해야 하는가? 왜 일하는 사람이 이 사회에서 주인이여야 하는가? 등등. 고된 일을 끝내고 동료 집에서 몰래 숨어 만나면서 노동법을 공부하고 현장의 부당한 모습을 어떻게 개선해나갈지 같이 고민했던 시절, 처음으로 투쟁가를 배우기 위해 만났던 원광대학교의 널따란 운동장, 민주노조를 건설하기 위해 소모임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알자 회사의 압력이 시작되던 때에 늘 커다란 나무가 되어 우리를 버티게 해주었던 언니, 현장내 부당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파업을 이끌어내고 회사와 교섭으로 임금과 복지를 따내었던 시절, 이력서 허위기재로 해고를 당하고도 계속 복직투쟁을 하면서 우리 노동자들과 함께 하려고 하던 그때 그 시절의 언니의 모습은 세상을 뒤집어놓을 만큼 참으로 강한 투사였지요. 오랜 복직투쟁 이후 블랙리스트라는 명단에 올라 전북 어디에서도 취직이 안되어 힘들어 하던 언니가 다시 학교로 복학하고 교직의 꿈을 이루게 되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현장에서 교직으로 변화되기에 걸렸던 12년의 시간동안 언니가 강인한 투사에서 생각도 많이 변화되어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모습으로 변화되기도 하였지요. 강인한 투사에서 따뜻하고 정감어린 모습으로 언니를 변화시켰던 많은 시련과 방황들이 이제 언니가 가르치는 많은 학생들에게 훌륭한 인생의 안내자로 서 있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 또 다른 인생을 걸어가고 있는 언니에게 이번 봄은 다른 해에 비해서 훨씬 희망차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봄이 가기 전에 꼭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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