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3 | [문화저널]
<남형두의 저작권 길라잡이>
변호사(2004-04-20 14:28:37)
제임스 딘은 한국에서 여전히 살아 있나
10여년 전, 영화 "에덴의 동쪽", "자이언트"로 널리 알려진 제임스 딘(James Dean)의 유족이 우리나라의 속옷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온 적이 있었다. 이 속옷 회사는 과거 유명한 개그맨 출신 젊은 사업가가 운영하였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더욱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제임스 딘측은 한국 회사가 허락없이 제임스 딘의 이름과 초상을 이용하여 속옷을 생산판매하는 행위는 동인의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을 침해하므로 위법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한국 회사는 퍼블리시티권과 같은 재산권은 성문법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법률의 규정이 있어야 창설되는데, 그러한 규정이 없으므로 원고의 청구가 기각되어야 한다고 맞섰다. 당시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은 우리나라 회사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그 판결 중에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퍼블리시티권"의 존재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영화배우, 연예인, 스포츠선수와 같은 유명인의 이름, 초상, 행위(퍼포먼스)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로 정의되는 퍼블리시티권은 미국에서 이미 1900년대 초반부터 논의되기 시작하여 1950년대 드디어 판례법상 재산권으로 인정되기에 이르렀고, 최근에는 약 20개가 넘는 주에서 이를 성문법상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퍼블리시티권이 인정되기 전에는 인격권의 일종인 프라이버시권(right of privacy)으로 보호되었다. 예컨대, 국내 가전제품회사가 박찬호의 사진을 그의 허락없이 상업적으로 이용하였다고 할 경우, 인격권침해로 논리를 구성하면, 가전회사는 박찬호에게 위자료 상당을 지불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를 지적재산권의 일종인 퍼블리시티권으로 구성하게 되면, 가전회사가 그로 인하여 벌어들인 수익의 상당한 부분을 박찬호의 손해로 보아, 박찬호는 거액의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지적재산권법 이념 중의 하나는 부당이득금지로서, 무임승차자(free rider)를 막겠다는데 있다. 제임스 딘과 박찬호의 초상과 이름이 상업적 가치를 갖게 되기까지에는 그들만의 노력과 차별된 그 어떤 것에 의해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는데(제임스 딘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됨),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면서 단지 위자료만을 지불한다면 이는 형평에 반한다는 것이 퍼블리시티권 논리의 근거이다. 맥도날드 햄버거 집에서 뜨거운 커피로 화상을 입은 고객에 대하여 수백만불의 손해배상판결을 선고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법원은 이른바, 징벌배상이라는 제도를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위자료라고 해봐야 기업하는 입장에서는 크게 부담될 것이 없다. 또한, 유명인의 경우 일반인과 달리 프라이버시의 영역이 좁다는 점에서도, 이러한 침해사건에서 프라이버시로 이론을 구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법원이 법률의 규정 없이 판례상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면서도 타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쯤에 오면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면서도, 왜 법원이 제임스 딘 유족의 청구를 기각하였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독자가 있을 것이다. 법원은 퍼블리시티권이 독자적인 재산권으로 인정되기는 하지만, 상속성있는 권리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유족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퍼블리시티권이 인격권과 달리 재산권이라면, 부동산소유권처럼 상속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원고측은 쉽게 승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미국에서는 퍼블리시티권의 상속성까지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상속성이 인정된다면, 우리도 세종대왕의 영정이 그려져 있는 10000원권 지폐를 사용할 때마다 그의 후손인 전주이씨 자손들에게 사용료를 지불해야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