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3 | [문화저널]
<최승범의 풍미기행>
최승범(2004-04-20 14:24:01)
멍게젓의 향미
난생 처음으로 멍게젓을 맛본 바 있다. 전주 시내 고사동에 자리한(2가 333, 전화 272-0100) '백만회관'에서였다. '게장 백반'의 점심상에서 낯선 먹거리의 접시가 먼저 눈길을 끌었다.
-'이게 뭐지?'
저분으로 가르키자, 도우미인 '초란이'가,
-'고노와다'
라며, 몸에 아주 좋은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인다. '고노와다'(海鼠腸)란, 해삼 창자를 일컫는 일본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일본 사람들이 정력에 좋다고 즐겨찾는 먹거리이기도 하다. 왜식집에서 더러 내놓는 이 먹거리를 나도 좋아한다.
'오노와다', 반신반의하며 맛을 보니, 이건 아니다. 곧바로 입안에 멍게의 향미가 감도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짭쪼름하다.
-'멍게젓인 걸…'.
그런대로 입안은 강그러운 맛이 돌았다.
김춘수(金春洙)시인은 고향 사투리를 담아낸 시 '앵오리'(잠자리)에서, '우리고장 통영에서는/멍게를 우렁셍이라고' 한다고 했다. 경상도 지방의 여행이다 보면, 멍게를 흔히 '우렁싱이'·'우렁쉥이'로 일컫기도 한다.
남원비장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나는 '멍게'라는 먹거리가 있는지도 모르고 자랐다. 전주에 나와 살면서도 60년대 초에야 중앙동에 있었던 선술집, '삼천포집'에서 더러 대하게 되었다. 저때만 해도 흔치 않은 술안주의 하나로 내어놓는 것이었다.
젖꼭지같은 돌기가 있는 껍질을 째고 그 안에 든 누른 살을 꺼내어 놓으면 그것을 날것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 마련이었다. 일본에서 온 교포 한 사람은 이 멍게를,
-'호야, 호야, 마호야'
하면서 좋아하였다. '호야'(海 )나 '마호야'(眞海 )는 멍게의 일본어다. 칼집이나 말채찍의 끝을 뜻하는 '초'( )의 한자에서 멍게의 가죽같은 껍질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멍게의 속살을 빼먹은 후엔 으레 그 껍질에 담겨 있는 국물을 마시기 마련이다. 그 국물의 향기와 간기에는 독특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멍게는 저렇듯 날로 먹는 것이 주이나, 국으로 끓여 먹기도 하고 물외나 무·생미역과 아울러 조림으로 하여 먹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아직 '멍게국'도 '멍게조림'도 맛본 일이 없다. 상상만으로 그 맛을 말할 수는 없겠다.
멍게가 가장 맛있기로는 5~7월이라고 한다. 그것도 15~20m의 바다 밑에서 3년쯤 자란 것이 가장 맛이 좋다는 미식가들의 이야기다.
밥 따로 멍게젓 따로 한 숟갈 한 저분 따로따로 떠 먹어도 맛이 있고, 밥 위에 적당량 멍게젓을 요량하여 비벼서 먹어도 멍게 향이 밥 향기와 어울려 맛이 있다.
젓갈 하면 짠 것으로만 알고 손사래를 칠 것은 아니다. 그 또한 편식에 속하기 때문이다. 젓갈의 짜고 싱곱고는 밥으로 조절할 수 있지 않은가. 먹거리의 맛은 두루 즐길 일이다.
'백만회관' 주인 문학련 여사에게 멍게젓을 젓전문점에서 구했는가고 묻자,
-'여수 가막만에 가서 직접 내 솜씨로 담아 온 것이다'
는 자랑이다. 싱싱한 멍게를 구입하여 현장에서 곧바로 껍질을 짜개어 속살과 국물에 적당량의 청염으로 간한다는 것이다. 가져 와서는 밀봉하여 놓고, 그때그때 꺼내어 달걀의 노른자위와 참기름으로 개어 밥상·술상에 올린다고 했다. 자신의 발명품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딴은 시내의 다른 음식점에서 맛볼 수 없었던 '멍게젓'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