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3 | [문화가 정보]
잣대와 됫박에서 읽는다, 삶과 문화의 흔적
문화저널(2004-04-20 14:22:22)
잣대와 됫박에서 읽는다, 삶과 문화의 흔적
전주역사박물관 도량형전
길이를 재는 자, 부피를 재는 되와 말, 무게를 다는 저울 등은 어떤 역사적 맥락 속에서 변화되고 발전되어 왔을까. 또 그 변화의 흐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전주역사박물관이 이색적인 기획전을 가졌다. 1월 31일~2월 29일까지 전주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인 '도량형,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농경문화의 흔적과 선조들의 지혜를 더듬어 볼 수 있는 도량형전은 역사의 맥락을 살피고 생활문화의 단면을 엿보게 하는 다양한 유물들을 선보여 중장년층엔 향수를, 자라나는 세대들에겐 교육의 장을 제공했다.
농경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온 도량형은 선조들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진 생활 도구이자 시대와 제도의 변화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며 역사와 문화의 토대를 이뤄왔다. 이번 기획전은 일제시대부터 근현대사를 거쳐오는 동안 도량형이 어떤 시대 배경 속에 변천해 왔는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기회. 됫박, 자, 저울, 각종 농기구 등 모두 3백여 점의 유물이 소개됐다. 특히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학부모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루면서 시대를 거쳐온 측정기술의 변화와 그 속에 담긴 선조들의 풍속도를 읽기 위한 분주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번 전시는 국립농산물검사소 품질관리원 전북지소가 그동안 사적자료실 운영을 위해 모아온 손때묻은 각종 농기구와 도량형 기구 일체를 전주역사박물관에 기증함으로써 성사됐다.
김성식 전주역사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농경문화의 꽃이라 할 정월대보름을 기점으로 시의성을 맞춘 전시"라며 "농경문화의 흔적을 더듬어보고 우리 선조들의 구체적 삶을 함께 했던 기구들을 통해 그들의 삶의 애환이 오롯이 담긴 도량형 기구들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새롭게 느껴보는 기회를 갖고자 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전주역사박물관은 기획전 부대행사로 전시 당일부터 정월대보름까지 '오곡 장터'를 마련,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농산물 직거래 기회를 통해 풍성한 명절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와 함께 쟁기 방아 홀태 등 잊혀져 가는 재래식 농기구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 관람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시 첫날에는 하원호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의 강의가 이어져 기획전의 의미를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하 교수는 이날 '됫박과 잣대의 역사'를 주제로 전통적 도량형의 종류와 그 속에 깃든 선조들의 지혜, 그리고 시대 변화를 타고 그 운명을 함께 한 도량형의 종류와 변천 등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상자기사 참고)
정확하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할 경제적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됫박 위에 수북이 인정을 담아 건넬 줄 알았던 '우리식' 측정방식에서부터 효과적이고 평등한 조세분담을 위해 국가시책의 하나로 도량형을 통일시켜 온 '제도적 도량형'에 이르기까지. 이번 전시는 도량형이 생활과 문화,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음을 새롭게 환기시킨 기회였다.
전주역사박물관은 올해 상반기 전주의 출판과 인쇄의 역사, 전통문양에 담긴 멋과 향기 등을 주제로 한 기획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 김회경 기자
-박스기사-
특강 요약 / '됫박과 잣대의 역사'(하원호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정조 5년(1781) 장령 홍병성의 상소에 의하면, "한 집안에서도 부부가 각기 달리 쓰고, 한 가게에서도 아침 저녁으로 달라지고, 한 고을의 됫박이 이웃 고을의 반되밖에 안되고, 동쪽 장시의 잣대가 서쪽 마을보다 몇 치나 적다"고 했다. 실제로 개항이후 일본인들이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도량형의 크기를 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인들은 이 도량형의 문란이 상품경제가 발달하지 못하고 자연상태에 머무르고 있었던 한국사회의 정체성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위에 인용한 홍병성의 상소도 민간의 교역에서 모리배들이 도량형의 변조로 이익을 남기는 폐단을 지적하고 민간도량형의 통일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1909년 경술국치 직전 경제생활의 기준이 되는 도량형을 일본식으로 완전히 바꾸었다는 것은 우리 경제를 일본에 종속시키겠다는 상징적 표현이었다. 그러나 도량형의 끈질긴 관습성은 일본이 바라는 대로 하루아침에 청산될 수는 없었고, 총독부는 도량형의 통일을 위해 1926년 미터법을 기본으로 한 도량형령을 발포했다. 하지만 이 역시 종래의 도량형기나 척관법을 당분간 사용한다는 예외규정을 두어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도량형은 사회적 변화와 함께 바뀌고 제도는 그것의 통일을 위해 노력하지만 강인한 관습성은 좀처럼 버리지 못한다. 금붙이 등을 재는 돈냥중의 단위도 전통적 관습과 방식이 법제적 장치와는 무관하게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