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3 | [서평]
죽음 앞에서 얻은 '생애 최고의 선물'
김신/생명평화 전북기독인연대 사무국장과 기독저널 '뉴스 앤 조이' 호남 주재기자로 활동하고(2004-04-20 14:16:12)
『뼈아픈 니고데모의 참회』
『뼈아픈 니고데모의 참회』. 한 권의 책을 잘 소화해 내기 위해서는 그 책의 내용 이전에 저자에 대한 지식과, 또 어떤 상황에서 집필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리라.
저자는 전주희망교회 서호승 성공회 신부다. 그는 지난 2000년 11월 상학동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병은 그의 한쪽 눈을 빼앗았다. 안구 자체가 없어졌고, 왼쪽 광대뼈(상학동)와 치아도 없으며, 얼굴의 반쪽이 망가진 것이다.
그는 벌써 4년째 병과 함께 살았다. 『뼈아픈 니고데모의 참회』, 이 책은 그가 지난 4년 죽음을 비켜보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면서 얻은 깨달음을 성경의 사건들을 중심으로 잔잔한 필치로 그려준 수상록이다.
서호승 신부의 경험을 생각하며 최대한 그의 심정에서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나름대로 그의 저서를 요약하고 분석해 본다.
저자가 깊은 참회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무엇일까. 그가 오늘과 죽음 사이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온 생명이 하나되는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삶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다"라고 이해했다.
13편으로 구성된 이 책 전체에서 저자는 이 사실을 시종 강조한다. 각기 다른 13개의 성경 사건을 배경으로 쓰여졌지만, 저자가 깨달은 ‘온 생명이 하나되는 하나님 나라’, ‘삶의 궁극적 목적’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강조하고, 온 생명들이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인지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다양성과 함께 통일성을 갖는다.
1편 “깊고 그윽한 그 어느 날 밤에”는 어느 밤 당대 최고의 권력가요 명망가이며 부도 소유하고 있는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간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자신의 아픔을 버리지 않고 친구삼아 딛고 일어서는 힘겨운 투병의 과정과 뼈아픈 참회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여기서 참된 삶이란 세상의 권력,명예,부와 같은 외면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내면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같은 내면의 삶에 대한 강조는 9편 “기적이라는 것은?”에서도 강조되는 주제다. 또 그 하나님 나라는 온 생명이 구별없이 하나로 통일된 세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느님 나라에는 세상적인 분별이 없습니다. 너와 나의 구별이 없습니다. 나와 그것의 구별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의 생명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개체로서의 생명은 여러가지지만 그 여러가지 개체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생명입니다. 하나의 생명 안에서 개체는 서로 공생하고 협력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생명을 부양해 주는 것입니다. 개체로서의 생명은 서로 순환하면서 결국 하나의 생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입니다. 오직 하나의 근원에서 생명이 나오기게 그것은 하나입니다. 그 근원이 바로 하느님이요 그 근원의 생명이 하나로 순환하는 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p.33)
하나님 안에서 온 생명이 구별이 없다는 그의 주장은 3편 “날이면 날마다”, 7편 “계곡에 물 흐르듯”, 8편 “그리스도 죽이기”에서도 주된 주제로 등장한다. 또 2편 “나도 묻지 않겠다”와 5편 “계명을 주신 목적은”에서는 온 세상이 하나되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윤리와 도덕의 바른 자리매김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즉 “사람이 가야할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수단과 방편으로 윤리와 도덕은 필요합니다. 결코 방편으로 사용해야지 이것을 단죄하는 도구로 사용해 버리면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단죄의 도구로 사용해 버리면 비윤리와 비도덕을 낳음으로 윤리와 비윤리, 도덕과 비도덕이라는 또 다른 양극단을 만들어 냄으로써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p.73)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8편 “바다에서 바다처럼”과 9편 “영원한 안식의 삶”에서는 생명의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관할하시는 우주에서 인간은 오만과 허세, 인간중심주의를 버리고 생명의 한 부분으로서 동료 생명들과 함께 겸허하게 서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저자는 또 4편 “성전 정화는 자기 정화”와 6편 “잔치집입니까 초상집입니까”에서 “온 생명이 하나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삶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는...’(p103) 자기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리고 기도란 단순히 외적인 필요성을 구하는 것이 아닌 온 생명이 하나되는 하나님 나라,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내면의 변화, 자기 개혁 등에 관한 간절한 열망이 본질 이라고 10편 “무엇을 위해 구할 것인가”, 11편 “기도한다는 것은?”에서 말함으로 더욱 고차원적인 기도의 정신을 말한다. 또 자연스럽게 신적 도움(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으로-1편에서 강조)을 통해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다는 점도 시사하고 있다.
13편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라”에서 저자는 마지막으로 ‘고통과 고난은 부활을 위한 밑거름’(p.212)이라고 말하며 다시 한번 고통과 고난은 저자가 서문에서 말했듯이 하늘로 오르기 위한 긴 활주로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죽음의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방식을 니고데모라는 성경의 인물을 빌어 1편에서 이미 이야기했었다. “제가 의도했던 모든 생각들을 버리고 오직 그 분의 말씀을 들어야겠다는 강한 바람이 제 내면에서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그것만이 저의 짓뭉개진 속내를 치유하는 길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p.27) 그리고 결국 저자는 예수의 말 속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과 슬픔은 하늘나라를 위한 밑거름입니다. 결코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p.41)
독후감 정도의 수준에서 필자의 느낌을 정리하려고 한다. 필자 나이 서른여섯. 삶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게 인생의 끝을 재삼 숙고하여 지나온 삶을 반추하게 하고 마음을 새롭게 추스릴 수 있는 쉼을 이 책 “뼈아픈 니고데모의 참회”가 주었다.
언젠가 죽음의 깨달음이 주는 축복들을 “생애 최고의 선물”이라고 이름 붙인 책을 보았다. ‘죽음 자체는 인생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물은 아니지만... 죽음을 생각하면서 삶을 새롭게 하는 것은 우리 생애에 있어서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저자인 서호승 신부라면 아마도 이 말에 백번 고개를 끄덕였을 것 같다.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얻는 깨달음이 '생애 최고의 선물'이라면,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걸고 받은 최고의 선물을 우리에게도 나누어 주는 것이 될게다. 이 귀한 선물을 나누어 준 저자에게 감사를 드리며, 그의 건강을 소원함으로 글을 갈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