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3 | [새책 및 새비디오]
『즐겁게 춤을 추다가』 (성석제 지음, 도서출판 강 펴냄)
문화저널(2004-04-20 11:58:09)
『즐겁게 춤을 추다가』 (성석제 지음, 도서출판 강 펴냄)
2002년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고, 2004년 단편 「내 고운 벗님」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성석제의 신작이다.
모두 6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부는‘憶(억)’. 여름날 신 새벽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걸어갔던 낙동강 강변으로의 소풍, 유리에 대한 선망과 몰래 먹은 막걸리의 첫맛이 숨어 있는 길이네 점방, 이제는 사라진 꿈같은 대학 시절 등등 성석제가 풀어놓는 추억담은 아름답고 슬프다. 자전거, 레밍턴 전동타자기, 자신을 울렸던 책, 음반 등등 작가가 사랑했던 물건과 대상을 이야기하는 2부 ‘愛(애)’는 또 다른 추억의 마당으로 독자를 안내하고, 3부?葉(엽)?에서는 작가 특유의 짧은 글이 주는 촌철살인의 해학과 통찰이 즐겁게 펼쳐진다.
웃음과 비애를 가로지르는 이야기의 힘, 살아 있는 말 맛, 인간과 세상에 대한 근원적 낙관, 거기에 더해 독자 옆에서 그들과 함께 걸으며 공감의 폭을 넓혀가려는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다.
『사기의 탄생 그 3천년의 역사』 (천퉁성 지음?장성철 옮김, 청계 펴냄?3만2000원)
<사기>는 사마천이 지은 역사책으로 중국인의 공통 시조 황제로부터 사마천이 살았던 당시 한무제에 이르는 근 3천년을 기록한 통사. <사기> 이전의 역사책은 단편적인 사실을 기록하거나 간략한 연대기적 서술에 불과했다. 그런 상황에서 사마천은 수많은 문헌과 답사를 통해 자신의 역사관을 투영시킨 인물 중심의 새로운 역사기술 형태인 기전체를 창조했으며, 이는 후세의 정통으로 굳어져 대대로 계승되었다. 중국의 정사는 모두 <사기>의 형식을 따른 것이며, 우리나라의 대표적 역사책인 <삼국사기>나 <고려사>도 <사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사기>를 그저 옛날 이야기로만 읽는 데 만족하지 못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사기>의 출생 비밀, 사마천의 심리 및 생명체험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동시에 짐짓 상호 모순되어 보이는 사마천의 사유 맥락도 실은 하나로 관통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페미니즘 정치사상사』 (캐럴 페이트만?메어리 린든 쉐인리 엮음, 이남석?이현애 옮김
이후 펴냄)
선진민주국가라는 서구에서도 여성 참정권이 법적으로 보장된 것은 20세기 초반으로,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가부장적 남성우월주의 시각은 그만큼 정치 영역에서 더욱 완고했던 것이다. 그러면 유사이래 걸출한 사상가들은 여성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었을까. ‘페미니스트 해석들과 정치이론’이란 원제의 이 책은 고전적 정치이론 텍스트들에 투영된 여성관의 함의와 시사점을 ‘전복’과 ‘재해석’의 관점에서 날카롭게 분석한 14명의 여성 정치학자들의 글을 한데 모은 것이다.
마르크스와 존스튜어트 밀의 여성관을 비롯해 플라톤의 <국가론>과 <법률론>에서 나타나는 여성관의 모순,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성론’, 홉스의 ‘자연상태에서의 여성 군주론과 계약에 따른 종속론’, 미셸 푸코의 계보학으로 본 페미니즘과 한나 아렌트의 페미니즘 정치학, 하버마스의 비판이론 등 고금을 넘나드는 페미니즘 정치사상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뇌를 단련하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
이 책은 ‘프로페셔널 제너럴리스트’를 자처하는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가 도쿄대 교양학부에서 96년 여름학기에 ‘인간의 현재’를 주제로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 저자는 인간의 역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사나 경제사가 아니라 ‘지(知)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인간의 ‘지’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둘러싼 이 세계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결국 인간의 ‘지’란 인간 자신 및 자신을 둘러싼 타자 또는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이해라는 것이다. 자연과학에 대한 공부 역시 이런 ‘관계’에 대한 전반적이고도 정확한 이해를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다.
르네 데카르트, 토머스 헨리 헉슬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리처드 파인먼 등 고금의 지성들을 넘나들며 그가 추구하는 ‘지’의 세계는 바로 이 관계를 온전한 전체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새 비디오
<천년호>
어둠과 주술이 지배하던 부족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국가가 생겨날 무렵, 박혁거세가 이끄는 신라는 신목(神木)을 섬기던 아우타족을 전멸시킨다. 아우타족의 원한과 피는 신목이 서 있던 자리에 채워져 커다란 호수로 변하고 아우타족의 주술 기운을 봉인하기 위해 혁거세는 신목 위에 신검(神劍)을 꽂는다.
때는 통일신라 말기 진성여왕대. 끊임없는 전란과 변방의 난으로 신라는 패국의 위기에 처하고 신라의 장군 비하랑은 진성여왕의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며 나라를 구하기 위해 애를 쓴다. 비하랑이 역도의 무리를 정벌하기 위해 전쟁터로 출정한 사이 비하랑의 연인 자운비는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정체불명의 자객들에게 쫓기다가 우연히 아우타족의 원혼이 봉인된 천년호에 몸을 던진다.
이광호 감독의 작품으로 중국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제작된 판타지 무협물. 통일신라시대를 배경으로 두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과 그들의 운명을 뒤흔드는 천년 호수의 저주를 그린 영화로 6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되었다. 하지만 비평과 흥행에는 모두 실패했다.
<잭애스>
스턴트의 달인 아홉 명이 모여서 각종 엽기적인 스턴트를 선보인다. 일반인들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행위부터 재미 삼아 사람들을 놀리는 단순한 몰래 카메라 형식의 장난까지 그들이 벌이는 스턴트 행위를 에피소드 별로 편집하여 90분간 폭소와 입을 다물지 못하는 놀라움에 빠지게 한다.
실제 스턴트 액션 상황을 담은 엽기 코믹물. 2000년과 2001년 MTV에서 방영되어 거센 찬반 논쟁 속에서도 10대 및 20대 초반의 시청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TV 시리즈물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2001년에는 이 TV 시리즈 중 하나였던 인간 바베큐가 되 보기 위해 따라하던 한 꼬마가 중화상을 입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이렇듯 매번 황당무계한 스턴트로 인기를 모았던 TV 쇼의 주인공 조니 녹스빌과 '유니사이클 푸 바프' 등 그의 친구들이 그대로 등장하며, 연출은 TV 시리즈의 공동 창안자로서 TV 시리즈의 각본과 제작을 담당했던 제프 트리메인이 담당하여 원작의 감각을 살리고 있다.
<조선남녀상렬지사>
겉으로는 세도가의 정부인으로 살아가며 남자들을 유혹하는 이중 생활을 영위하는 조씨 부인. 한편, 과거에 급제했으나 관직을 마다한 채, 뭇 여인에 탐닉하고 시?서?화를 즐기는 이단아 조원. 말 못 할 첫 사랑의 상대이자 사촌 지간인 둘은 은밀한 사랑 게임의 동업자다.
어느 날 조씨 부인은 남편의 소실 자리인 어린 소옥을 범해줄 것을 조원에게 제시하지만 조원의 목표는 9년간 수절하여 열녀문까지 하사 받은 숙부인 정씨로 정해진 상황. 조씨 부인은 조원이 성공하면 자신을 허하겠다는 미끼를 던지고 조원은 내기를 수락한다.
<위험한 관계>, <발몽>,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등 이미 미국과 프랑스에서 수차례 영화로 제작되었던 18세기 말 프랑스의 쇼데를르 드 라클로(Choderlos De Laclos)의 서간체 소설을 조선시대로 옮겨 영화화한 작품. 고증적 사실 여부를 떠나, 조선시대 양반 부유층들의 호사스런 삶을 묘사하고 있는 화면 또한 대단히 매혹적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영화진흥기구상(넷팻상)을 수상했다.
<4인용 식탁>
결혼을 앞둔 인테리어 디자이너 ‘정원’. 지하철에서 어린 아이들의 죽음을 목격한 뒤로, 신혼집 식탁에는 아이들의 귀신이 자꾸만 나타난다. 악몽인지 현실인지, 그의 일상은 공포로 변해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기면증(갑자기 졸음에 빠져드는 증세)을 앓고 있는 여자 ‘연’을 만난다. ‘연’이 자신처럼 귀신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원은 그녀가 자신의 공포의 비밀을 풀어줄 것이라 직감한다. 절박한 심정으로 연에게 접근하는 정원. 지금껏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공포와 비밀을 그녀와 공유하게 된다. 그러나 '연'을 통해 자신의 과거에 얽힌 무서운 비밀을 알게 된 '정원'은 더 큰 혼란에 빠지고, 베일에 싸였던 '연'의 사연이 드러나면서 그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하는데.
이수연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작품으로 불행한 과거를 지닌 남녀가 우연히 귀신이 보이는 현상으로 만나, 미스테리한 경험을 겪게 되는 심령 스릴러물. 자극적인 화면이 돋보지만, 스릴러로서는 진행이 너무 느슨하다는 평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