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3 | [문화저널]
<음악편지>
.(2004-04-20 11:49:56)
진정한 ‘꾼’의 ‘끼’어린 연주
강은일의 '오래된 미래'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는 몇 가지 ‘쌍기역 전략’이 필요하답니다. 사실은 지난 월초에 이런 내용으로 강연을 한 바 있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대학 신입생들을 위한 자리였습니다. 그 곳에는 제 아들과 조카도 있었습니다. 조금 어색했습니다.
그래 그랬는지 의욕이 앞서 분위기 파악 못하고 너무 많은 얘기를 욕심냈습니다. 지방분권시대 지방대학의 기회와 위기에 관한 이야기--항상 그러하듯 위기와 기회는 함께 온답니다--, 대학생이 되어 꼭 염두에 두어야 할 점 몇 가지,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위한 취업준비 등, 신입생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들에 대해, 조금은 주책없이, 열변을 토했습니다. 멍한 상태의 많은 학생들이 짜증을 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면서도 아들과 조카에게 평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그야말로 막 해댔습니다. 그 말미에 오늘 소개하려 하는 그 구체적인 ‘전략’도 제시하게 된 것입니다. 이름 하여 ‘아름다운 삶을 위한 여섯 가지 쌍기역 전략’!
사실 이 ‘전략’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상당히 알려진 것입니다. 아름다운 삶의 한 예라 할 수 있는 김명곤 국립중앙극장장도 어느 강연에서 이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인생을 ‘전략적’으로 대한다는 것이 꼭 바람직한 것일까, 의구심이 없지 않지만 막연한 상태에서 불안해하는 신입생들에게 조금은 자극이 될 수 있을듯하여 인용하게 된 것입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제대로 된 인생좌표로서의 ‘꿈’일 것입니다.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자면 항상 변함없이 방향타 구실을 해줄 수 있는 북극성과 같은 것 말입니다. 그것은 쉽게 실현할 수 있는 하찮은 것도 아니요 자신의 출세만을 위한 쪼잔한 것이어서도 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와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원대하고도 아름다운 꿈! 이런 꿈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들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습니다.
그 ‘꿈’이 허황한 것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또 몇몇 구체적 조건들을 요구합니다.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끼’가 바로 그 첫 번째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안타까운 것 중 하나가 ‘멍석을 깔아주었을’ 때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방안퉁소가 이를 두고 하는 말이겠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평소 피나는 준비작업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연습을 실전처럼, 실전을 연습처럼!’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대로 된 ‘꿈’을 꾸고 또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엄정한 통찰력과 판단력이 요구됩니다. 전략과 지혜로서의 ‘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은 있습니다. 자주 부리면 패가망신을 가져올 수 있는 잔꾀가 바로 그것입니다. 권도(權道)는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하는 것이지 수시로 원칙을 버리는 것은 요즘 몇몇 정치인들처럼 치욕만 초래할 뿐입니다.
또 하나 ‘꼴’을 제대로 갖추는 것도 매우 긴요한 일입니다. 이 ‘꼴’에는 ‘겉꼴’과 ‘속꼴’이 있겠는데, ‘겉꼴’은 그 근본을 바꾸기도 쉽지 않지만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으로 철없는 사람들을 잠시 속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마음의 꼴인 ‘속꼴’에 더 주목을 하게 됩니다. 이를 제대로 갖추기 위해 흔히 세 가지의 ‘보기’가 추천되곤 합니다. 자기와의 대화 혹은 내면의 성찰을 위한 거울보기, 남의 영혼을 들여다보기 위한 책 보기,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의 허심탄회한 교류를 위해 필요한 마주보기가 바로 그것들입니다.
다음으로 추천되는 것이 추진력 혹은 신념 등을 뜻하는 ‘깡’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지속적인 노력이 불가능하며 지속적인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경계할 일은 혼자서는 ‘깡’이 없어 패거리로 ‘깡’을 부리는 깡패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또 스스로는 ‘깡’이 부족하여 ‘깡’ 있는 ‘꼰대’를 쫓아 철새처럼 부유하는 것도 꼴불견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으로 강조되는 것이 지식정보의 네트워크로서의 ‘끈’입니다. 인터넷에 무한 정보가 널려있는 요즘 가방끈의 길이, 혹은 학연이나 지연의 ‘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되지 못한 ‘끈’에 연연하는 경우 ‘꼴’ 망치기 십상이며 제대로 된 ‘꿈’ 지켜나가기도 쉽지 않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많은 지식정보들을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끈’으로 체계화하는 일입니다.
한마디로 ‘꾼’이 되라는 주문입니다. 아들과 조카, 그리고 다른 신입생들에게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전업직업의 비중이 줄어들고 계약직이나 부분업(part-time job)이 성행하는 오늘날에는 특히 이런 전문적 ‘꾼’만이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연말 어느 유별난 송년모임에서 저는 이런 전형적인 ‘꾼’ 하나를 만나는 행운을 맛보았습니다. 독특한 해금 연주자 강은일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뒤늦게 그 자리에 찾아갔을 때 한 여인이 탁자에 오똑 올라앉아 해금을 타고 있었습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온몸을 뒤흔들며 즉흥연주를 해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연주에 여념이 없는 오르페우스와 그것에 취해 황홀경의 춤을 추고 있는 박쿠스 여신도를 한데 합한 모습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반가운 친구와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넋을 잃은 채 귀, 아니 영혼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여인이 예전 음악편지에서 소개한 바 있는 ?적념? 연주를 통해 제 마음을 온통 뒤흔들었던 해금 연주자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연주회가 끝난 뒤풀이 장소에서도 준비된 ‘끼’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행운이 겹치느라고 그녀와 동석을 하게 되었는데 반가운 마음에 건배제의를 건의하자, 거침없이 ‘부라자!’를 외쳤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끌르자!’를 화답으로 요구하면서 말입니다.
오늘 보내드릴 곡은 그녀의 첫 앨범 [오래된 미래]에 실려 있는 타이틀곡입니다. 오래된 전통이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오랜 전통의 한국음악이 미래 음악의 텃밭이 될 수 있다. 평소 강은일 자신의 이러한 믿음을 반영하기 위해 일부러 작곡한 곡이랍니다.
기타의 밝고 조금은 가벼운 연주가 앞장으로 서고 해금과 대금, 피리, 가야금, 그리고 장구가 뒤를 따라 합류하게 되는 이 곡은 얼핏 우리 전통 가락과 무관한 것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곡의 뒷부분에서 좀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전통적인 줄풍류의 타령부분을 모체로 한 것입니다. 오래된 것을 매개로 그것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미래를 모색한 곡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전통의 현대화 혹은 퓨전화로 불릴 수 있는 이 곡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진정한 ‘꾼’의 ‘끼’를 통해 우리전통음악꾼들의 소중한 ‘꿈’ 하나가 실현의 가능성을 맛보게 되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미래는 오래 된 과거에 있답니다. 전주의 전통문화가 우리의 꿈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곡 들으시며 진정한 ‘꾼’이 되어보겠다는 소중한 ‘꿈’ 잘 지켜 나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