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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 | [문화칼럼]
천하지대본이 흔들린다
최정학 기자(2004-03-03 20:02:15)
<수요포럼> 천하지대본이 흔들린다 WTO(세계무역기구)를 필두로 우리 농산물 시장에 대한 개방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작년 (故)이경해 열사의 죽음으로 각인되는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가 회원들간의 이견차로 최종선언문을 채택하지 못한 체 막을 내렸지만, 이것은 시간상 약간의 유예만을 의미할 뿐 농업시장 개방이라는 큰 틀에서의 변화는 없다. 최근에는 한-칠레간 FTA(자유무역협정)체결마저 눈앞에 다가와 농민들은 극도의 불안 상태에 빠져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상황과는 상관없이 올해부터 당장 쌀 시장 개방협상에 들어가야 하는 현실은 더욱 비관적이다. 지난 94년 우루과이라운드에서 확보한 쌀 시장 개방 10년의 유예기간이 올해로 끝나, 이제 더 이상 쌀 수출국들의 시장개방 압력을 거부할 수만은 없게 된 것이다. 특히 쌀 시장 개방 압력은 전북 농민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 전북 전체 농업 생산액 중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나 차지할 만큼, 쌀 농사는 전북 농민들의 주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1월 28일 전주정보영상진흥원에서는 '농도 전북, 농업은 죽었는가'라는 주제로 마당 주최의 수요포럼이 열렸다. 쌀 시장 개방을 코앞에 둔 전북 농업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이에 따른 대비를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농도 전북의 위기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한 탓인지, 큰 쟁점이나 이견 없이 비교적 차분하고 조용하게 진행되었지만, 농촌을 이 지경으로 몰고 온 배경에는 농민들의 적극성과 돌파구를 찾기 위한 전문성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날카로운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안성 전북대 농업경제학교 교수의 사회와 황만길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전북도연맹 정책실장의 발제로 진행된 이날 포럼은 각계각층에 종사하는 다양한 참석자들의 애정 어린 관심 속에 진행되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농민이나 농업정책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농업관련 공무원, 관련학과 교수 등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발제문 요약 / 한국 농업의 현실 황만길 (전농 전북도연맹 정책실장)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농수산물도 일반 공산품과 함께 자유무역거래 물품 중의 하나로 상정되고, 이에 따라 WTO DDA협상 등 농산물의 관세를 철폐하기 위한 농업 대국들의 압력이 심화되고 있다. 더욱이 한-칠레간 FTA 등 쌍무협상이 급진전되면서 농민들간에는 무역장벽 전면 철폐에 대한 위기감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한-중 FTA에 대한 농민들의 위기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중국의 값싼 농산물이 관세 없이 들어올 경우 우리 농산물이 살아남기는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농산물이 개방되고 개방폭까지 대폭 확대 될 경우, 영농현실을 고려할 때 전북 농업이 황폐화되고 농민소득격감과 농촌 붕괴가 우려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올해부터는 UR 당시 약속한 쌀 재협상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관세화와 관세화유예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요구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그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우리 쌀 농업을 지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관세화유예의 경우 MMA(최소시장접근) 물량을 어느 수준으로 할 지와 개도국 지위 유지 및 SP(최소한의 감축률을 인정받는 특별품목)의 유지가 관건일 것이고, 관세화의 경우 과연 관세를 어느 선에서 유지하는가와 급격한 쌀 농업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이 있는가가 관건일 것이다. 두 가지 선택 모두에 대해 아직 뾰족한 방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북이 쌀 농업의 비중이 워낙 크므로 관세화로 갈 경우 타격이 더욱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관세화유예·MMA물량의 소득증가·개도국지위 유지·SP품목 인정이라는 목표로 협상을 해야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써야 할 우리 농업이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도 많다. 현재 농가부채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영농의 주체인 30∼50대 농민의 부채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경쟁력 강화 농업정책 아래서 규모화를 하기 위해 차입경영을 하게 된 결과로 부채 증가 속도가 소득 증가 속도를 항상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 농산물 가격이 불안정하다는 것도 농업 발전에 커다란 저해 요소다. 유통 현대화는 어느 정도 진전되고 있으나 아직도 가격 불안정을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은 미흡하다. 가격을 결정하는 도매시장 시스템에서 농민들의 입장이 반영되고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원천적으로 막혀있는 것이다. 농협의 역할 강화와 산지 유통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이것은 도매시장 개혁과 함께 병행해야하며, 이를 위해 도매시장 개혁위원회 등을 설치해 대책을 마련하고 강력한 시행이 필요하다. 또 농업은 기상재해에도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때문에 농업재해에 대한 정부의 보상체계에 대한 입법화 작업이 추진되어야 하고,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강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농민들의 기상이변에 따른 흉작의 '보상' 요구를 정부는 '보험'제도로 대체했고 이마저도 예산바닥으로 위기에 처해져 있는 실정이다. 이런 우리 농업의 문제점들 때문에 현재 농가소득은 정체되어 있고, 도시와 농촌간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농민이나 농업관련 기관 종사자들의 사기도 저하되고 있다. 특히 전북은 산업에서 차지하는 농업의 비중이 타 시도보다 큰 15.5%나 되고, 여기서 쌀 농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나 된다. 때문에 쌀 재협상과 이에 따른 피해가 그 어느 시도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북의 농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방농정에 대한 평가와 함께 WTO DDA협상, FTA, 쌀재협상 등에 대한 대책마련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차원의 대책기구 수립과 연구, 정책개발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농정 실패를 줄이기 위한 지방자치단체와 농 관련 기관의 예방 시스템 및 조직가동, 지대별 농가별 맞춤농업을 구현하고, 농업 컨설팅을 보완하는 한편 농가실패를 줄이기 위해 농가회생 프로그램 운영 및 농업종합센터의 설치와 운영을 통해 농업의 안정성을 보완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전라북도와 자치단체이 농 관련 기금을 대대적으로 확보하고, 새로운 민관학의 협동체계구축과 협동조합의 전문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본문- 농업 위기, 무엇이 문제인가 이날 포럼은 뚜렷한 대척점 없이 농산물개방이라는 거센 파도 앞에 놓인 우리 농업의 현실진단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전북의 농업이 커다란 위기에 처해 있다는 현실인식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 사회를 본 정안성 교수는 "우루과이라운드와 칠레자유무역협정으로 농업 개방이 현실화되고, 이로 인해 농민들이 처절한 상황에 놓여있다"며 "현재 자유무역협정 같은 농업 개방은 어쩔 수 없는 추세이지만, 왜 하필이면 농업 강국인 칠레를 첫 협정 대상국으로 삼았느냐에 대해서는 정부의 농업보호 정책에 대한 회의가 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고 농민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하지만, 현재 농촌이 처한 어려움에는 농민들의 안이한 현실인식에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는 뼈아픈 지적도 제기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장인석 MBC PD. 그는 "요즘 농업 문제를 다루느라 농민들과 만나 얘기할 기회가 많았다"면서 "정부가 농업지원정책의 일환으로 지급한 융자금을 너무 쉽게 생각해 융자금을 받으면 제일 먼저 승용차를 사는 농민들도 있었다며 일부 농민들은 자신들의 안일함을 고백하기도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에 황만길 정책실장은 "우루과이라운드가 열리면서 농업이 규모화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위기감이 정부와 농민 사이에 들기 시작했다. 이런 위기감 때문에 정부가 대대적인 지원을 했지만, 기존의 소량생산 소량판매에 익숙해진 농민들에게는 경영능력이 능력이 없었다. 정부의 융자금을 가지고 어떻게 영농을 규모화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는 아무런 대책 없이 융자금을 더 많이 타내기 위한 고민만 하는 농민도 있었다"며 농민들의 경영능력 부재와 잘못된 인식에 대한 지적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덧붙여 "정부가 지원책을 실행하면서 그 어떤 예방프로그램도 준비하지 않았다. 지원책이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추진해야 성공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정부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성공한 외국의 사례를 기계적으로 도입하다보니 이런 문제점들이 발생했다"며 정부의 책임론도 강조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에 대한 비판도 제기 되었다. 이날 포럼에 참가한 김영배 김제자활후견원 원장은 "농산물의 특성상 오랜 기간 저장하면서 때에 맞추어 판매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해의 생산량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게 나는 것으로 안다"며 "전농이라는 거대한 농민운동 단체가 전북 각 지역마다 생산하는 생산품들을 조절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농민운동 단체가 정부정책에만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지, 농업의 안정화를 위한 현실적인 대책마련에는 소홀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 이런 비판에 대해 황만길 정책실장은 단체의 역량부족과 조직 내부의 불협화음을 이유로 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런 현실적인 방안에만 전념한다면 충분히 해 나갈 수도 있겠지만, 현재 운동을 하는 농민들은 자신들 농사짓기에도 빠듯하고, 전농 내부에서도 운동의 방향에 대해 여러 입장과 관점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얼마 전 노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자유무역협정을 수락하는 대신 농가부채 탕감을 조건으로 내세웠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었지만, 실제로 이런 이야길 꺼내면 농민운동권에서 농업을 팔아먹은 사람으로까지 매도되기 쉽다"며 농민운동의 경직성을 토로하기도 했다. 농민운동의 방향성에 대한 지적도 제기되었다. 전북대 이종민 교수는 "농업 문제를 전국적인 단위로 보고 있어서 문제가 커지는 것 같다. 농업문제는 적어도 전국에서 가장 큰 농업규모를 갖고 있는 전북에서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북은 농업의 비중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도정에 농업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세워달라고 요구할 수 있지만, 국가 전체를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농업도 하나의 산업일 뿐인데 국가 차원에서 농업만 배려해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어 그는 "강현욱 도지사는 전북을 농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북을 어떻게 산업화 할 것인가 만을 고민하는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업정책을 논의할 단체를 요구한다고 과연 그런 단체가 쉽게 만들어 질 수 있을까"라며 전북의 농업을 살리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요구와 실질적인 노력을 주문했다. 김영배 원장은 농업 전문가의 부재 즉 농사를 지을 젊은이들이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농대를 나와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전체 졸업생의 5%도 안되고, 농고를 졸업하고 농업에 뛰어든 사람은 그 절반 정도인 2.5% 밖에 되지 않는다. 흔히들 농민이라고 하면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을 말하는데, 실제로 농촌에서 노인들 빼고 나면 농사를 기획해서 짓는 젊은 사람들은 극히 적다"고 지적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농촌에 젊은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농업의 경쟁력은 결국 현장에서 직접 농업을 발전시킬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대처만이 살길이다 이날 참석자들 모두 농산물 개방이라는 대세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은 인정했다. 문제는 우리농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부차원의 협상방안과 농민들의 대책. 새전북신문 백도인 기자는 "현재 정부는 관세화와 관세화유예 두 가지 선택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발제자는 농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관세화유예를 택해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일본은 관세화를 선택해서 일정 정도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관세화와 관세화유예 중 어떤 것이 농업의 피해를 줄이는 길인지 충분한 고민과 검토를 하고 주장하는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황만길 정책실장은 "쌀 개방 문제에 있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은 관세화 유예와 MMA물량을 최대한 줄이는 것, 그리고 개발도상국지위를 얻는 것이다. 여기에 SP품목을 유지하는 것이 정부가 얻어낼 수 있는 현실적인 최대한의 성과인 것만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방안들이 협상과정에서 모두 관철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협상의지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에 대해 백도인 기자는 "전북 농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규모화를 통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과연 이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가하는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모든 농민이 규모화를 이뤄낼 수 있을 지에 대한 지적이다. 황만길 정책실장은 "농업을 규모화 하는 과정에서 모든 농민 생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정부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살아야 될 농민만 살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농업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는 농민일 지라도 그 규모가 작을 경우 정부의 선택을 받지 못해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규모가 큰 농민은 전업농업으로 살리고, 소규모의 농가는 친환경농업을 하도록 하거나 사회복지 정책으로 포용하는 방안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역시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만이 우리 농업을 살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어 그는 농가부채에 대한 부분도 언급했다. "물론 정부 정책에 우선순위라던가 국민의 정서상 많은 예산을 한꺼번에 쓰기는 어렵겠지만, 지금까지 농가부채는 언발의 오줌누기 식 정책이 많았다.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 것이다. 때문에 생산물을 팔아서 부채를 해결해야 하는 농민의 입장에서는 이를 해결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더욱이 현재 부채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농민은 많아봐야 10∼20%정도 밖에 되지 못한다"며 "한번에 농가의 부채를 탕감해주고, 동시에 농민들의 경영능력향상과 농업기술을 향상시키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제 농산물 개방은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 되었다. 농업을 살리기 위해 폐쇄적인 협상만을 펼치다가는 자칫 우리 경제 전체가 국제경제무대에 설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이날 포럼은 이런 전제들을 인정한 가운데, 보다 현실적인 정부 정책과 농민들의 적극적인 대처 노력을 촉구하는 것으로 초점이 모아졌다. / 정리 최정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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