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 | [서평]
<서평> {랍스터를 먹는 시간}(방현석)
팽이는 채찍을 가해야 쓰러지지 않는다
변화영/전북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20세기 한국 민중생활사 연구단 연구교수로 있다(2004-03-03 19:38:48)
방현석의 소설은 나를 팽이로 만들곤 한다. {내일을 여는 집} 이후 12년 만에 출판된 {랍스터를 먹는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팽이치기 장(場)이 되어 추운 겨울 바람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던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팽이채 방현석의 채찍에 휘감기도록 한다. 말하자면, {랍스터를 먹는 시간}에서 벌이는 팽이치기 한판은 나로 하여금 얼음판 위를 쌩쌩 돌아다니면서 쓰러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팽이가 되어야 하는 정당성을 일깨우는 것이다.
방현식의 두 번째 소설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표제작 이외에 <존재의 형식>, <겨우살이>, <겨울 미포만> 등 총 네 편의 소설로 엮여져 있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2003. 11)과 <존재의 형식>(2002. 겨울호)은 최근에 발표된 것으로 베트남 사회의 일상을 다루고 있으며, <겨우살이>(1996. 5)와 <겨울 미포만>(1997. 가을호)은 7, 8년 전의 작품으로 부도덕한 우리의 현실을 반성하고 있다. 현재와 과거, 베트남과 한국의 이중주가 반복되는 가운데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과거의 사건을 통해 미래의 시간을 끌어들이면서 화해의 장을 마련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이 소설집에서 미래란 과거와 현재의 연계선상에서, 화해란 이해와 용서의 역동성 속에서 피어날 수 있음이 강조되어 있는데, <존재의 형식>, <랍스터를 먹는 시간>, <겨우살이>, <겨울 미포만> 등은 서로 교호하면서 삼원색(三原色)과 같은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둥그스름한 윗면에 청색, 적색, 노란색이 순서대로 색칠해 있는 팽이처럼 말이다. 청색은 교차로의 통행 가능성 표시처럼 앞일에 대한 순조로운 빌미를, 적색은 해방을 향한 베트남의 뜨거운 열정을, 노란색은 연대성 강한 노동자의 실천을 암시하고 있는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독자로 하여금 미래와 해방과 연대의 문제들에 연루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표제작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건석이라는 인물의 일상을 통해 미래와 해방과 연대가 통합되는 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에 등장하는 건석은 베트남 주재 조선소 직원으로 한국인 관리자들과 마찰을 빚은 노동자 보 반 러이와 베트남 당원 팜 반 꾹을 만나게 된다. 조선소 복귀를 알리고자 러이의 고향 자딘을 방문했을 때, 건석은 한 집도 빠짐없이 제사를 지내는 슬픈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베트남 전쟁 당시 러이, 꾹, 노인, 이 세 명을 제외한 마을사람들이 모두 한국군에게 처참하게 몰살당하는 바람에 온 동네가 일제히 제사를 치르게 되었던 것이다. 건석이 따이한이라는 것을 알고 기피하던 노인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처음부터 우리가 따이한을 증오했던 것은 아니네. 따이한은 미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전한 용병일 뿐 적이 아니라고 우리는 배웠고, 또 그렇게 믿었네. 그러나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어. 그럴 수밖에 더 있겠나."라며 한국군의 무분별한 잔인한 학살이 결국 그들로 하여금 증오를 싹트게 했음을 설명하였다. 학살 때문에 결국 몸 속에 서른 두 개의 파편을 생명체처럼 끌어안고 살아가는 러이는 "남을 용서하는 일은 쉽네. 끝내 용서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자신이네."라며 건석에게 한국인들을 이미 용서하고 있음을 넌지시 토로하였다. 전쟁도 파괴하지 못한 베트남 사람들의 영혼의 본질, 뜨거운 인간애가 타인을 용서하려는 노인이나 러이의 내면에 배어 있는 것이다. 용서 없는 절망은 전쟁으로 파괴된 세대가 스스로를 바꾸는 일이 불가능한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전 세대를 답습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용서와 절망 사이에서 다음 세대가 어떤 행동과 결단을 취해야 하는가는 건석과 그의 배다른 형 건찬과의 갈등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건석의 형 건찬은 베트남 혼혈아이자 언청이었다. 남다른 외모와 갈라진 윗입술은 동네 아이들이 건찬을 "베트콩" 혹은 "째보"로 불리는 빌미를 제공하였고 그런 형이 건석에게는 경멸과 수치의 대상이었다. D중공업에 취직한 건찬은 어머니에게 월급 봉투를 고스란히 내놓는 효자였고 그 돈은 건석의 학비가 되었다. "최건찬" 또는 "우옌 카이 호앙"이라는 두 개의 이름 앞에 비겁하지 않고 떳떳하게 살려고 애쓰던 건찬은 그러나 경찰이 강경하게 파업을 진압하는 바람에 결국 죽고 만다. 건찬의 죽음은 건석에게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봇물이 되었고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원인이 되었다.
건석의 일상은 기억 속에서의 형의 삶과 현실 속에서의 러이의 삶이 병치하는 가운데 진행되면서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적 경험의 유사성이 결국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비극을 딛고 연대할 가능성은 <존재의 형식>에서 이미 제시된 적이 있다.
<존재의 형식>은 2003년 황순원문학상과 오영수문학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시나리오 번역 일을 하는 재우는 함께 작업하던 베트남 사람 레지투이가 한때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전사였음을 알게 된다. 전쟁 당시 죽은 동지의 이름 "반레"를 필명으로 쓰면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일하던 레지투이는 재우에게 소원해진 문태와 화해할 것을 권유한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함께 매진했던 문태가 변호사가 되어 베트남으로 골프여행을 온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재우는 그가 골프객들과 합류하지 않고 구치터널에 갔다는 말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는다. 구치는 사이공 시내에서 한 시간 반 거리 떨어져 있는 마을로, 해방전선은 호미와 망태기만으로 총 연장 250㎞의 땅굴을 파서 사이공 시내를 드나들며 미국과 싸웠다. 3층의 거미줄처럼 뚫린 구치터널을 따라 들어가 보면 세계 최강의 미국을 베트남이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곳이다. 바로 그곳에 문태가 갔다는 것이다. 문태를 속물로 치부했던 자신의 섣부른 판단을 접으며 활기를 되찾은 재우에게 레지투이가 핸드폰을 내밀며 "친구가 친구를 이해해주지 않으면 누구와 더불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나."면서 문태와 통화하라고 말한다. 전화 통화 후 합석한 그들은 오랜만에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는 가운데 레지투이의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역설한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듣게 된다. 타인을 향해 마땅히 지니고 있어야 할 마음가짐만 있다면 누구한테서도 경멸받지 않는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인간적인 마음가짐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아름다운 존재의 형식인 셈이다.
결국 작가 방현석은 베트남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여기-지금" 우리를 이해하는 한편, 베트남의 상처를 이라크에서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인간적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진리를 {랍스터를 먹는 시간}에 투영하고 있다. 그리고는 작가 스스로 팽이채가 되어 무기력한 '나'를 팽이로 세워 놓고는 {랍스터를 먹는 시간}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청색, 적색, 노란색으로 채색된 '나'는 미래와 해방과 연대를 꿈꾸며 팽팽 얼음판 위를 구르고 있다. 전 세대가 선택한 가해자의 역사를 답습하지 않고, 타인은 물론 자신도 용서하는 멋진 팽이가 되어서 말이다. 방현석 소설은 이렇듯 '나'를 살아있는 팽이가 되도록 만든다. 팽이는 계속적으로 채찍을 가해야 쓰러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