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 | [문화저널]
<남형두의 저작권 길라잡이>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
변호사(2004-03-03 19:26:12)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
지난 호에서 2차적저작물의 성립요건 중 "실질적 개변"을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영자송 사건에서 법원은 원고의 "여자야"가 구전가요 영자송을 사소하게 변화시킨 것에 불과하여 원저작물과 동일한 것일뿐, 2차적저작물에까지 이르지 아니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더 나아가 원저작물에 가해진 개변의 정도가 더욱 커져서 실질적인 개변을 넘어서는 개변이 이루어지게 되면 이는 2차적저작물이 아닌 완전히 독립된 저작물이 된다. 개변의 정도에 따라 발전단계를 표시하면, "원저작물 2차적저작물 독립저작물"이 된다. 원저작물과 2차적저작물의 관계는 2차적저작물로 인정될 경우 "여자야"의 예처럼 "사랑은 아무나 하나"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구별의 실익이 있고, 2차적저작물과 독립저작물의 관계는 독립저작물로 인정될 경우 원저작자에 대하여 동의를 받거나 손해를 배상할 필요도 없이 저작물을 작성할 권리가 있다는 점에서 역시 구별의 실익이 크다. 그런데, 여기에서 2차적저작물과 독립저작물을 구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인데, 판례는 그 판단의 기준으로서 "시장적 경쟁관계"라는 이론을 들고 있다. 예컨대, 로댕의 조각을 회화로 만든다거나,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일부를 팝송으로 편곡한다든가 하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원저작물의 수요를 일부라도 대체할 수 있는 기능이 있으므로, 2차적저작물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몇해 전 문제되었던 음치가수 이재수가 패러디한 서태지의 "난 알아요"는 소비자 입장에서 경쟁적 또는 대체적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에 2차적저작물이 아닌 별개의 독립저작물이 되는 것이다.
저작권법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하는 것도 그 입법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 둘은 서로 상반되는 가치로서 어느 한쪽을 보호하게 되면, 다른 한쪽이 손해를 보게 되는 관계에 있다. 그 판단기준은 사회와 시대의 상황에 따라 많이 변화되어 왔다.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에 의하면,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속담에서 보듯, 지식에 대한 사유화(私有化)보다는 공(公)개념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로 인하여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지적재산권침해국가라는 오명을 받고 있다. 이러한 지적재산권침해는 당장에는 편리하고 공익에 부합하는 것 같지만, 방치될 경우 어느 누구도 고생하여 창작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이는 곧 문화와 산업 발전의 저해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사로부터 받는 1년 광고수입이 인도네시아 나이키 공장의 노동자 65,000명의 총 임금보다 많은데, 조던의 performance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저작권법은 바로 이러한 소수의 창작자와 이를 이용하는 공중 간의 이해관계를 규율하는 법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몇 년 사이, 정보통신(IT)이니, 지적재산(IP)이니 하는 것이 산업의 중요한 일부를 담당하였다. 특히 전주는 과거로부터 문화와 예술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고, 지금도 많은 장르의 문화예술인이 활동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전주에서 발간되는 문화저널에 저작권에 관한 글을 싣게 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1년간 저작권에 관한 재미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한 꼭지를 채울텐데, 그것이 저작권에 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증진시키게 된다면 필자로서는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