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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 | [문화저널]
<나를 키운 세상의 노래>운명을 바꿔놓은 '생명운동'과의 만남
글 이덕자 전주한울생활협동조합 이사장(2004-03-03 19:15:05)
지난해 연말, '핵없는 세상을 위한 해넘이 한마당'에 참여하기 위해 부안으로 가는 차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나를 키운 세상의 노래'를 써달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지금 가는 이 길, 부안으로 가는 이 길이 나를 키운 길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빈 들판에 쏟아지는 겨울 햇살이 오늘따라 처량해 보인다. 여느 때 같으면 고향에 가는 듯이 즐거웠을 텐데,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핵폐기장 문제로 반년이 넘게 부안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농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도시로만 다니며 살아온 게으른 도시인이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교사의 역할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았다. 독서지도, 일기지도, 연극지도 등 학생들과 함께 하는 활동은 내 삶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생 학생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내 바람과는 전혀 관계없이 남편이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전주로 내려와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나 집안 살림을 하는 일이 서툴러 시행착오를 늘 겪었다. 교직생활 다음으로 나에게 매력을 준 일은 서예를 하는 일이었다. 아이를 들쳐업고 매일 글씨를 쓰러 다녔다. 회갑 때 서예전을 여는 것이 나의 꿈이 되었다. 그러나 나의 길은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시민운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으니 말이다. 전주에 내려온 지 8년이 되는 1991년, 전업주부의 생활이 무르익어 갈 무렵, 부안 변산에 사는 유기농 생산자 정경식씨를 만나게 되었다. "배추 천 포기를 유기농업으로 재배했는데, 판로가 없어서 밭을 뒤엎었어요." 그 한 마디는 세상의 어떤 노래보다도 진하게, 내 가슴을 울리는 노래가 되었다. 그는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사를 짓겠다고 했다가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고는 도회지 공장을 전전하다가 풀무원공동체에 들어가 유기농업에 관한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한으로 여기는 농업을 희망의 길로 바꾸기 위해, 오직 생명의 농법만이 인류 생활의 근본임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서 감동을 받았고, 그의 집에서 농촌의 생활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나는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저 조용히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 유기농업 생산자 정경식씨와 변산에서 그와 함께 유기농업을 하는 생산자들과의 만남은 나의 인생 길을 바꿔 놓았다. 도시에 살고 있으니 농사는 짓지 못하더라도 이 농사꾼들을 돕는 일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나는 무공해 먹을거리를 찾는 사람들을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이 오염되어 있는데, 혼자만 청정한 먹을거리를 찾는다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과 땅을 살리는 유기농업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오염된 세상의 땅과 환경,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을 살리는 일이 바로 이 길이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생산자들의 땅에는 온갖 벌레들이 바글바글 움직이고 있어 그야말로 땅이 살아있었다. 그들에게서 '똥이 밥'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람이나 동물의 배설물이 땅으로 돌아가서 식물에게 가고 식물은 그 똥으로 커서 다시 우리의 먹을거리가 되고,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농사가 바로 유기농사였다. 그 해 사람과 땅을 살리겠다는 신념으로 농사짓는 생산자들 여덟 가정과 도시 소비자들은 직거래 공동체를 만들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한울타리 속에서 함께 하는 도·농 공동체를 만들자는 뜻에서 한울회라 이름지었다. 소비자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을 수 있고, 생산자는 생산비를 보장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생산자들과 함께 하는 나눔에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소비자는 식탁에서 생산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식사를 했고, 생산자는 소비자의 얼굴을 생각하며 농사를 짓는, 사랑과 신뢰의 나눔이었다. 사람과 땅을 살리는 유기농업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농약과 화학비료가 사람과 환경에 주는 피해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점들이 많았다. 내 삶은 점점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머릿속에는 온통 유기농업, 우리나라의 농업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신문을 보다가도 농업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면 그것부터 읽게 되었다. 학생시절 한문시간에 배운 農者天下之大本也란 글귀의 뜻이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이 세계에 빠져 활동을 한 것이 올해로 14년째 접어든다. 생명을 살리자는 운동을 하다보니 연관되는 일이 하나 둘 늘어났다. 새만금을 살리자는 운동, 순수한 수돗물을 먹기 위한 수돗물불소화반대운동,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이고 우리 농업을 살리자는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운동 등. 남 앞에 서서 이끌고 집회를 주도하는 것은 내 본래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 일이었지만, 한 가지 일을 끈기 있게 지속적으로 끌어나가는 일은 나의 장기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맡은 책임이 있다보니 앞장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운동을 해온 지 14년째,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본다. 유기농산물을 직거래하는 사람으로서 바르게 살고 있는가. 순환하는 농산물을 먹으면서 사람과 사람의 순환, 사람과 자연의 순환을 이루고 있는가. 문득 인간관계에서 순환하지 못해 허덕이는 나를 발견한다. 비워야 이룰 수 있는 생명운동을 하면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받아들이며 이기적인 운동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을 해본다. 요즘 시끄러운 광우병 파동에서도 보듯이 인간의 욕심이 불러일으키는 병이 얼마나 많은가. 욕심 없이 하는 농산물을 다루다보니 삶 자체에서도 비우고 사는 연습을 하게 된다. 집안 가득 둘러서 있는 물건들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물건을 새로 사는 것도 두려워진다. 추구하는 삶의 방식도 점점 바뀌어간다. 자연과 더 가까이 가고 싶은 생각만 든다. 나도 언젠가는 땅이 베풀어주는 정직한 농사를 짓고 싶다. 지금은 사람들이 먹을거리나 환경이 너무나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많이 인식하고 있다. 처음에 생산자들을 돕자는 뜻에서 시작된 이 길이 지금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 되었다. 환한 얼굴로 생협으로 들어와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소비자들을 만나면 그 동안 고생하며 이루어온 일에 보람이 있음을 느낀다. 처음에 열 몇 명으로 시작한 유기농 직거래 공동체가 이제는 천백 명이 넘는 식구로 불어났다. 지난달에는 교육관을 황토생태공간으로 만들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생태문화 속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이다. 천연염색을 비롯하여 자연에 가깝게 갈 수 있는 의·식·주생활에 대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계획이다. 그 동안 받은 혜택을 사회에 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치 신앙과도 같이 살아온 세월이다. 삼십 대 후반부터 시작했는데, 이젠 오십이 훌쩍 넘었다. 편리함만 추구하던 도시인의 삶에서 농촌 전도사로서의 삶을 살도록 만들어놓은 유기농 생산자와의 만남, 그것은 바로 운명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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