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 | [문화비평]
<변희재의 문화비평> 외모 시장의 자유경쟁은 위험하다
브레이크뉴스 기획국장
(2004-03-03 19:13:06)
"희재아저씨가 제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와 보니 올라와 있더군요. 근데 아저씨의 글을 읽을 때 가끔 연예인 특히 고소영이나 김혜수씨 같은 분들이 많이 올라와 있잖아요.
아저씨의 이런저런 글쓰기 행태(?)를 보았을 땐 미모의 특정연예인들에 대해서 집착이 심하신 것 같아서요..... 어쨌든 본인도 그런 여자들 보면 예쁘다고 느끼지 않으시나요? 제가 실망했다는 건 저도 희재아저씨의 팬인데 희재아저씨의 여자를 보는 시각도 고소영이나 전지현 등을 예쁘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는 거에요."
브레이크뉴스 게시판에 진보소녀라는 아이디를 쓰는 분의 댓글이다. 나는 이 글, 특히 "제가 실망했다는 건 저도 희재 아저씨의 팬인데 희재 아저씨의 여자를 보는 시각도 고소영이나 전지현 등을 예쁘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는 거에요." 이 대목이 재미있었다.
예전에 [스타비평2]를 썼을 때, 나는 바로 진보소녀와는 정 반대의 시각으로 당대의 문화비평가 김지룡을 비판한 적이 있었다. 김지룡은 1999년 당시 일본진출에 성공한 SES의 인기비결을 분석하며,
"일본 사람들은 부담스러운 미남미녀보다, 평범한 이웃집 친구같은 연예인을 선호한다. SES의 일본진출 성공도 그 때문이다."라는 오답을 내렸다. 왜 오답일까? 나는 당시 온갖 PC 통신 자료조사를 첨부하여 SES의 유진, 슈 등이 그 어떤 조사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연예인 베스트5 안에 들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즉, 김지룡의 개인취향이 워낙 독특해서, 유진과 슈가 예쁘지 않다는 미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그의 자유이지만, 그런 득특한 취향을 바탕으로 문화산업을 분석하면 오답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나중에 개인적으로 만나서 물어봤더니 그는 오히려 "유진이 진짜 예쁘다고 생각하느냐?" 이렇게 되물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메이너드 케인스는 주식시장의 예를 미인시장으로 빗대어 표현한 적이 있다.
"1백장의 인물사진을 보고 최고 미녀 여섯을 가려내야 하는 대회가 신문사 주최로 열렸다고 가정해 보자. 이 대회 참가자 전원의 평균적 선택에 가장 잘 부합되는 선택을 한 자들에게는 상품이 수여된다. 각 참가자는 자기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얼굴을 택하지 않고 다른 참가자들의 기호에 가장 잘 맞으리라고 생각되는 얼굴을 선택하려 들 것이다. 결국 참가자 전원은 동일한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게 되는 것이다."
한번 우리의 일상을 둘러보자. 우리는 거의 매일 이러한 판단의 기준을 강요받는다. 너무나 오랜 기간, 너무나 자주, 자신의 판단이 아닌 남의 판단을 의식하여 기준을 세우다보니, 점차 사람들의 판단이 하나로 통일되고, 개성이 사라진 획일성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얼굴이 아니라, 남이 예쁘다고 생각할 법한 얼굴을 스스로도 예쁘다고 생각하게 되게끔 세뇌를 받게 된다.
얼마 전 어떤 조사를 보니, 고교생들의 40% 이상이 성형수술을 하겠다는 결과가 나왔다. 성형수술이야말로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외모로 자신의 외모를 바꾸는 작업이다. 즉 전체가 합의할 수 있는 외모라는 허상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성형수술 산업이 이렇게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개성이 살아숨쉬는 사회라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성형수술이 산업화되면서 사실 상 '미'라는 것이 자본화 및 산업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어느 누가 아름답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이는 단지 그 사람의 외모에 관한 칭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출세하기 유리한 조건에 들어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통계에서 나오지만, 외모가 뛰어난 사람(획읠화된 기준에 맞춰)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승진과 취업 및 결혼에 유리하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아닌가.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에가 말한 문화적 자본 중에서도 신체에 체화된 자본이야말로 누적된 자본의 극단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외모가 자본이 되었을 때, 경제적 자본과 결합하고, 이것이 다시 체화된 자본을 나으면서, 대물림을 하는 상속의 개념으로 변한다. 쉽게 말하면, 결혼정보회사가 외모를 결혼의 조건의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잡고 있는 한,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 경제적 강자와 혼인을 맺고, 그 후손들 역시 그런 외모를 그대로 물려받으니, 외모가 상속을 할 수 있는 자본이 된다는 것이다.
외모지향주의적 사회의 문제를 인권의 문제이자 계급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를 계급으로 인식해야만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자유경쟁시장에 내버려두면, 끊임없는 외모차별로 인한 부익부 빈익빈이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경제적 강자와 약자 간의 관계라면 국가나 시민사회가 개입한다.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 그냥 내버려두면 강자가 약자 위에 군림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외모가 하나의 상속 가능한 자본이라면, 외모가 뛰어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 간에 국가와 시민단체가 개입하는 것은 정당하다. 내가 생각하는 대안은 간단하다.
첫째,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드라마, 쇼,)을 제외한 그 어떤 프로그램에도 사회적인 기준으로 볼 때, 미인이라면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것을 강력히 제한해야 한다. 특히 뉴스프로그램에 더욱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이는 덴마크를 비롯한 서구유럽에서는 실제로 시행하는 일이라 한다. 시민단체에서 방송사에 시민에 소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인물들을 출연시키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일이다.
둘째, 각 개인에게 외모로 차별을 받았을 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른바, 외모차별금지법이다. 미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외모 탓으로 앵커 자리에서 밀려난 여성이 소송을 걸어 수백만 달러의 민사소송을 걸고 있다. 그나마 한국보다 훨씬 더 다양한 미적 기준이 존재하는 미국에서도 이럴진데, 오직 협소한 틀의 미인만 인정하는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외모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중고등학교의 복장 및 두발을 완전히 자율화해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외모에 맞게 자신의 옷과 머리를 꾸밀 수 있는 훈련을 해야지, 개성을 살릴 수 있다. 지금처럼 교복에 획일적인 두발을 강요하면, 원판불변의 법칙만이 인정받게 된다.
내가 계속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돈없는 자를 위해 국가와 시민사회가 개입을 한다면, 외모가 떨어지는 사람을 위해서도 똑같은 이유로 개입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외모시장이야말로 자유경쟁은 위험하다. /브레이크뉴스 기획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