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 | [문화와사람]
아픔을 치유하는 미술, 미술로 나아가게 하는 아픔
글 김선경 객원기자·JTV 전속작가(2004-03-03 19:10:04)
청년작가 고보연
시내에서 좀 떨어진, 변두리 주택가 2층에 자리잡은 작업실. 석유난로 한 대로는 매서운 한파를 견뎌내기가 버거워 보인다. 작업실의 주인은 고보연(33)씨. 원래 주인이었던 친구가 멀리 시집을 가면서 그에게 빌려주었단다. 임시 주인인 그는 손님치레에 서툴러 보인다. 난로를 피우고 찻물을 끓이고 동그란 의자 위에 네모난 나무 판자를 얹어 다탁을 만든다. 찻잔 받침은 CD 예닐곱 장을 포개는 것으로 대신한다. 마지막으로 포트폴리오 한 권이 올라온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듯, 그는 미소를 띤 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하는 얼굴로 기자를 바라본다. 그는 이렇게 준비를 했건만 나는 그에 대해 준비한 것이 없다. (설치작업만 하는 줄 알았더니)그림도 그리시네요? 그런 우문을 먼저 던졌던 것 같고, 작업실 월세는 어떻게 내냐, 집에서 그림 그리는 것 반대하지는 않냐... 따위의 시시한 질문만 해댔다. 주제에 필요한 것이라면 그림이든 사진이든 나무판자든 뭐든지 차용해서 쓴다, 초등학생 과외로 월세 정도는 번다, 처음에는 반대하셨지만 이제는 제 나이도 있고 해서... 라는 그의 답변이 이어진다. 권위와 내실에 빛나는 전북청년미술상을 수상한, 그것도 여성으로는 두 번째요, 최연소 수상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작가에게 던진 질문치고는 참 한심한 수준이었다.
늦었지만 수상소감이라도 들어봐야 한심함을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화 받고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미술 시작한 지는 몇 년 됐지만 이제 30대 초반인데... 솔직히 제가 앞으로 미술을 계속한다는 보장도 없는 거잖아요. 좀 더 지켜봐야 할 나이인데... 그래서 출품할 때도 '후배들도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하고 보여주는 차원에서 낸 것이고, 앞으로 꾸준히 출품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인데,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게... 선배님들께는 죄송한 생각도 들구요. 굉장히 기뻤지만 그만큼 부담도 되고... 그래요." 그는 단어 하나, 쉼표 하나에까지 정성과 성심을 다해 말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사람이 작품을 만들 때 어떤 자세로 임할지는 충분히 상상이 간다.
최근 그는 독특한 설치작품들을 선보이며 미술계 안팎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전시장에 텐트나 천막을 만들어 관람자들이 직접 들어가 휴식을 취하도록 공간을 구성한 것이다. 이것도 미술에 속할까? "어차피 제 작품은 상징적입니다. 방에 걸 수 있는 회화작품도 아니고 사용할 수 있는 기성품도 아니에요. 외부로부터 보호받고 싶고 위안 받고 싶어하는 심리를 이런 구조물들을 통해서 표현하고 암시하는 것이죠." 관람객들이 직접 텐트 안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해보길 원했지만 그렇게 적극적인 관객들은 많지 않았다. "텐트가 실제로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아요. 사람들 사이의 진공상태를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평화와 자유의 공간을 상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외부와 완벽한 차단은 아니고 아주 가벼운 차단, 벽과는 다른 개념의, 그러니까 은신이나 회피, 완전한 도피는 아닌, 잠깐 동안 쉬고 싶은 심리, 그런 것이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을까요?"
그가 추구하는 미술은, 아주 작은 것을 통해서, 작은 행위를 불러일으키고, 그 작은 행위들이 삶에 작은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미미하고 하찮은 자투리들에서 시작된다. 독일 유학시절 종이쌀통이나 티백을 이용해 작업을 했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유학시절에는 늘 완전히 섞이지 못하는 이질감 속에서 스스로를 감시하고 긴장과 위험 속에서 살았죠. 그러다 보니 편안한 공간을 원하게 되고 쉽게 미술행위를 할 수 있는 소재들을 찾게 된 것 같아요. 티백을 말려서 손바느질로 꿰매서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고, 쌀통 종이를 펴서 거기다 그림을 그리고 다시 조립하고... 그런 과정 자체가 명상적이고 치유적인 행위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로 김밥장사를 해야 할 만큼 쪼들리는 생활이었지만, 그 여의치 않음이 쌀통과 티백 같은 소재에 눈을 돌리게 했다. "미술적 행위라기보다는 일상생활 속의 평상심 구현"이었다고 고보연씨는 유학시절을 회상한다. 독일유학 갔다왔다고 하면 돈 많은 미술학도쯤으로 여길지도 모르지만 학비가 들지 않기에 선택한 유학이었다. 아니, 학비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긴 했다.
대학졸업 후 고보연씨는 '잘 나가는' 신진작가였다. 스타일과 테마를 찾아 좌충우돌 헤맸지만 그런 도전과 열정을 주위에서 높이 사줬다. 회화, 마띠에르, 판화, 설치... 쓸 수 있는 모든 재료를 원 없이 써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봤다. 동양적인 이미지의 나무 설치전은 그에게 명성까지도 가져다줬다. 여기저기서 전시회 요청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작업하고 전시하고... 그러다 보니 위기감이 생겼다. 그는 경계신호 앞에서 정지했다. "이 작가는 이런 것을 하는 작가다, 라고 고정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싫었어요. 빨리 피는 꽃이 빨리 시든다고 하잖아요. 20대에 많은 것을 해봐야 하는데, 철학을 쌓을 시간을 주지 않은 미술풍토가 싫었죠. '너는 이런 작가다' 라고 고정되기보다는 '내가 왜 이것을 했느냐?'는 자기물음이 더 중요했어요." 그래서 그는 독일로 건너갔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몇 달 고민하다가 그동안 해왔던 작업을 모두 놓아버렸다. 거창함을 놓아버리자 일상의 소소함이 눈에 들어왔다. 97년에 건너간 독일생활은 2002년 여름 마이스터 과정을 수료하면서 끝이 났다.
귀국 후에는 편안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포착한 <수면욕구전>(2003)으로 눈길을 끌었다. 생각지도 못한 공간에서 아주 불편한 자세로, 그러나 아주 만족스러운 수면을 취하는 아이러니를 포착한 것이다. 그는 그것을 '불편한 편한 잠'으로 이름짓는다.
올해도 그의 행보는 바쁘다. 3월에 있을 전시를 비롯해서 청년미술상 수상작가로서의 의무전과 개인전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 준비하는 작품은 '족욕'이라는 설치작품이다. 전기선과 나무패널을 이용해서 욕조를 만들고 거기에 발을 담가 쉬게 한다는 컨셉. 유난히 손발이 차가운 자신의 병증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그에게 삶의 아픔과 미술은 동일선상에 놓여있다. "대학 졸업하면 사람들은 말하죠. '넌 이제 작가야, 뭔가를 해봐' 라고. 그런 압박감 때문에 자신만의 주제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와 관련된 일상에서 찾는 게 가장 평범하면서도 쉬운 길 같아요. 저도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처음엔 왜 나만 아플까 속이 상했는데, 아플 때의 감정을 작업으로 풀어내면서 사람에게 가장 편안한 것은 뭘까, 아프지 않는 것은 뭘까,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는 아프다. 수사가 아니고 실제로 아프다. 낯선 공간을 견디지 못하고 문득문득 공포감과 폐쇄증을 경험한다. 하지만 아프다고 주저앉기보다는 아픔의 원인과 치유방법을 끊임없이 탐구한다. "천천히 할 생각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주제를 꾸준히 해나갈 생각이고 건강이 좋아지면 명상적인 작업도 하고 싶습니다. 뭐라고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보면 편안하면서도 뭉클한 감동이 오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지금 하는 작업이 신체의 모든 감각들로부터의 휴식이라면, 앞으로 세월이 흐르면 휴식의 차원을 넘어선 수련이나 수행, 아니면 더 근원적인 휴식을 찾아 헤맬지도 모르죠."
청년작가 고보연. 그를 나아가게 하는 힘은 그의 아픔이다. 슬픔도 힘이 된다는 말처럼 그에게는 아픔도 힘이 된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나는 시 한 구절. "아픔보다 넓은 공간은 없다. 피를 흘리는 아픔에 견줄만한 우주도 없다."(네루다, <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