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 | [문화시평]
치밀한 준비와 성의가 아쉽다
글 조은영 원광대 교수·순수미술학부(2004-03-03 19:08:37)
<메소포타미아, 잃어버린 문명展>을 보고
메소포타미아 문명전이 열린다는 소식에 참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라북도 땅에서 황화문명이나 고구려 유물전을 보게된다고 해도 감동할텐데, 이라크전으로 그 지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상황에서 인류문명의 발원지의 웅대한 문화와 역사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 주최측 소리문화전당과 JTV의 정신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방에서 해외문화·예술 기획전을 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까운 동북아시아 전시라면 모를까, 서쪽 지역 문화권의 값진 유물이나 예술품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여건이다. 우선 그 나라들이 한국의 대표적인 국립박물관·미술관에서 전시대여를 요청해도 잘 응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나라가 문화적 '약소국'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 탓에, 지방 전시관이 해외 유물기획전을 하는 것은 그 쪽 인사들과 친분이 있다고 해도 상당히 어렵다. 설혹 '연줄'이 닿아서 대여가 승인되어도, 적어도 삼, 사 년의 준비기간을 요구하는 치밀한 서방 박물관들의 방법론을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국내 지방 전시관은 드물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미술관이 일년 단위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한다. 당연히 몇 년씩 걸리는 수준 높은 기획전을 계획하려면 이리저리 발목을 잡는 망들이 여간 많지 않다. 설상가상 주최측에 변수라도 생기거나 관장이 바뀌면 허사가 되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경제적인 여건 또한 마찬가지이다. 엄청난 대여·운송·보험료를 적자에 허덕이는 지방 미술관의 예산으로 감당하기란 꿈같은 이야기이다. 그러니 어찌 장기적인 시간이 소요되는 양질의 전시회를 준비할 수 있으랴.
이러한 악조건들을 무릅쓰고 어떻게 전시를 기획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소리문화전당에 들렀다. 일정이 겹쳐서 개막식 행사에 참석을 못했던 차에, 마침 관람평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미술사를 공부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전시장을 찾았다. 그 때까지도 나는 머리 속에 해외에서 수 차례 보았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찬란한 유적과 유물들을 상상하고 있었다. 일체의 설명 없이도 보는 눈과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그런 위대한 인류의 흔적들 말이다. 이는 TV와 지면에서 접한 전시 소개와 홍보용 이미지들을 믿은 당연한 결과이었다. 전시관람 후 홍보물과 전시의 차이에 분개하는 관람자들이 상당히 많은 것을 보면, 홍보를 곧이곧대로 믿은 순진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이 이슈는 이번 전시의 주요 문제점인 '진실성' 내지 '성실성'의 결여를 지적하게 한다. 서두에서 지방 전시관의 난제를 언급한 이유는 한편으로는, 전시에 실망했다는 관람자들에게 주최측의 악조건에 대해 변명할 필요를 느껴서이다. 이러한 난제들은 지역주민의 관심과 후원이 없이는 개선되기 어렵고 또한 정부차원의 장기적인 협조를 필요로 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그 난점들을 모두 감안할지라도 전시가 상당히 부실하기 때문이다. 기대치 이하의 전시는 사람들로 하여금 전시관을 더욱 외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관람 후 먼저 우려된 점은 혹에라도 관람자들이, 특히 어린 아이들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폄하하게 되어 실제로 "잃어버린 문명"이 되게 하는데 기여할까 하는 것이었다. 전쟁시 무차별 폭격과 약탈의 대상이 되는 이 지역 유물들의 악몽을 되풀이할 수 있는 교육이다. 10개의 테마로 나뉘어진 전시공간은 상당 부분이 인터넷이나 교과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설명, 사진, 연표, 그림들을 확대한 설명문들로 메꾸어졌다. 이런 것은 구태여 전시관을 찾는 수고를 하지 않고 편하게 집에서 읽는 편이 낫다. 실제 유물 한 점 없이 모조품과 설명문만으로 가득 채운 여러 전시실들에 기획의도가 의심스러웠다. 가령 제기용 황소 등, 거대한 조각상은 스치로폼으로 만들어서 대충 칠한 것으로, 가령 "황소제기 Celtic Bull, 기원전 2천년 경에 사용되었던 제기용 황소"라고 써있지 이는 재현한 상이라는 부연설명은 없다. 전시의 주목적이 교육이라는 홍보가 무색했다.
연장, 신상, 조각과 부조, 장신구, 토기와 석기, 인장, 점토판 등, 주최측이 강조하는 "메소포타미아 전역의 100% 진품유물 720여점"은 상당수가 유리진열대에 한꺼번에 수십 개까지 놓여져 있으며, 거의가 적은 사이즈로서 소수의 몇 점을 제외하고는 우리 고유의 유적들의 다양성과 크기에 익숙한 관람자들, 특히 학생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 우려되었다. 전시된 물품들이 보잘 것 없다는 말이 아니다. 전시 자체가 그것이 표방한다고 말하는 것과 내용이 다르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모래 속에 벽돌들을 묻어놓고 모종삽으로 찾게 하면서 "유물발굴 체험장"으로 생색을 낸다거나, 아이들이 입장료와 맞먹는 비용을 별도로 지불해야만 인장만들기 체험에 참여하게 한 것은 장삿속이 들여다보였다. 매 층마다 차린 기념품 판매대를 지나칠 때마다 물건구입을 권유받은 전시회는 수많은 문화·예술전시장을 다녀봤지만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전시를 분류하는 한 방법으로 예술·문화·교육적 차원에서 경제가치 이상의 목적을 가진 전시와 수익목적의 상업적인 전시를 구분한다. 강조하지만 상업적인 전시는 재미와 유익한 체험을 제공할 수 있으며 결코 '나쁜 전시'가 아니다. 국민세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전시관에서는 특히 필요하다. 요즘처럼 사람들이 전시관을 멀리하는 실정에서 전시 경영자들의 고민은, 미술관에 품격을 떨어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디즈니랜드의 장점을 가장 절묘한 비율로 결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업적 전시가 다른 성격의 전시인 양 표방할 때, 그러면서도 고객인 관람자들에게 마땅한 성의와 체험가치를 제공하지 않을 때 관람자는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가령 모조건축물이나 신상모형들을 부실하게 만들어놓고도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만 보게 하는 대신 견고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직접 드나들고 만지게 하는 편이 나았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전을 보면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던 점들은 관람 후 이 기획전의 내막을 알아보면서 풀렸다. 전시를 제작한 것은 대행업체인 주식회사 예감이었다. 전시품이 빈약한 것은 해외에서 대여한 유물들이 아니고, 서울대 교수들을 비롯하여 관련학자들이 국내에 여러 문명을 포괄하는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기 위해 공동구입한 유물들 중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 것만을 예감에서 대여하여 기획한 탓이었다. 심각한 국내의 사정에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턴 관련학자들의 취지와 의지는 참으로 감동할만하다.
그러나 기획측은 한정된 유물을 가지고 부풀려 '대규모' 전시회를 조직하려는 지나친 욕심을 부렸다. 최소한 해외에 산재되어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물들을 일부라도 포함하여 알차고 다양한 전시회를 기획하는 성의를 보였더라면, 아니면 적어도 현 전시의 절반 정도의 규모로 정직한 전시를 조직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한된 국내 소장품으로 기획한 전시라는 설명이 없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또한 교육을 표방하면서, 전시 카탈로그에서 13페이지에 달하는 긴 영문설명을 번역도 하지 않고 원어로 게재한 것은 영어를 모르는 학생과 성인은 읽지 말라는 것인지. 전시 주최측은 전시의 부실한 내용을 알면서도 들여온 것인지 하는 의문과 함께 이번 전시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함께 동행한 선생님들은 이런 전시를 육천원씩 내고 관람하는 이 지역 사람들이 참 착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