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 | [저널초점]
<특집>지방문화원 개혁, 왜 언급됐는가
글 김선희 새전북신문 문화팀장(2004-03-03 19:04:15)
갑신년 새해 지역 문화계의 여러 분야가 나름대로 새로운 포부에 의한 눈부신 활동이 기대되지만 지난해 개혁 홍역을 치른 도내 14개 시,군 문화원이야말로 약진이 기대되는 곳이다. 개혁요구의 핵심이었던 사무국장 공채로 젊은 혹은 전문적인 인력들이 투입됐기 때문이다. 비록 사무국장 신규 임용률이 50%대에 그쳤지만 이나마 문화원 40여년 역사상 초유의 변화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변화가 혁명적이지는 못했으나 개혁의 요구는 어느 정도 수렴된 셈이고 절반의 노력이 나머지 절반의 분발을 견인해낼 것이라는 기대가 일렁인다. 하지만 지난해 문화원 개혁은 내발적 힘이 아닌 외부의 힘에 의해 추진됐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겼다. 문화원에 대한 개혁 요구는 왜 제기됐을까.
「1960년대 이후 군사통치를 거치면서 중앙집권화의 전통은 계속 이어졌다. 고작 1990년대 문민화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겨우 정치적인 지방자치제의 실시로 지방화의 씨앗이 뿌려지기에 이르렀다. 중앙집권화의 오랜 전통 속에서 문화적인 지방화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을 성싶다. 해방 이후만 보더라도 문화시설의 70%이상이 중앙(서울)에 편중되어 있다.」
이 글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을병 원장이 '전국문화원연합회 40년사'에 발표한 글의 일부이다. 장 원장은 이렇게 열악한 중앙집권의 상황 속에서 '실제로는 상당한 수준의 문화적 지방화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위 문장을 끌어냈다. 뒤이어 장 원장은 주로 문화재와 향토문화 분야에서 공헌한 지방문화원의 순기능을 열거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70%이상의 중앙 독점을 은폐하기 위해 지방 문화원 정액보조라는 최소한의 엄호물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또 한번 뒤집어 생각하면 설령 중앙정부가 선심 써 던진 미끼라도 지방문화원이 그 조건을 적극 활용하여 창의적이고 열정적으로 일했더라면 문화의 중앙집권화를 어느 정도는 막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문화의 중앙집중의 모든 책임이 문화원에게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책임의 일부는 분명 지방 문화원에 있다. 좋은 조건을 갖고도 열심히 일하지 않은 것, 과업을 방기한 것과 같은 소극적 태도 역시 적극적 해악행위와 함께 비판을 면키 어렵다.
문화원 조직의 보수화 및 관료화, 운영의 미숙 혹은 나태의 문제는 비단 우리 지역만이 아닌 전국적인 현상으로 오랫동안 회자되어왔다.
지방문화원은 정부의 정액보조단체이다. 정액보조단체란 국가의 예산회계법에 의하여 매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시 우선적으로 운영 및 사업예산을 할애해주는 단체라는 뜻이다. 문화단체로서는 예총과 문화원만이 이런 혜택을 누리고 있다.
같은 조건이 수용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문화원에서는 혜택이 독이 되었다. 조직의 보수화 및 관료화는 정부의 정액보조라는 안온한 울타리가 만들어낸 최악의 상황이었다. 문화원장은 무보수 명예직이나 보수가 주어지는 사무국의 총괄 지휘자로서, 사업비가 지원되는 문화원의 책임자로서 작은 지역사회에서 서서히 권력화 되었다. 이는 그간 문화원이 관변단체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 더욱 공고해졌다.
원장은 정기총회에서 선출되어야 하지만 아예 총회가 생략된 채 이사회나 운영위원회에서 선출되기 일쑤였고, 문화원장의 추천과 이사회의 동의로 채용되는 사무국장은 문화원 활성화의 걸림돌이 되었다. 이들은 오랜 기간 동안 문화원 조직을 장악하면서 역량을 퇴보시키는 역작용을 낳았다.
일부 문화원은 창립총회 이후 단 한차례의 정기총회를 가져본 적이 없다. 이사회나 운영위원회가 정기총회 안건을 위임하여 처리해버린다. 결국 이미 참여한 인사 외에 문화원에 참여할 기회자체를 박탈한 것이다.
문화원장과 사무국장은 해당 지역사회에서 문화 권력으로 상징된다. 실제 개혁요구가 거셌던 지난해에도 문화원장 선출을 둘러싼 법정다툼이 있었다. 지난해 7월 익산문화원장 선거 과정에서 일부 이사들이 정상적인 자격을 갖추지 않은 회원들이 투표에 참여했다고 이의를 제기하며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에 문화원장 업무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일반회원은 문화원장에게 가입원서를 제출하고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이 절차를 생략한 회원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투표에 참여했으므로 선거결과가 무효라는 것이 이의를 제기한 이사들의 주장이다. 투표결과 당선자와 차점자의 표차가 5표차였다. 문화원장이 지역사회 문화권력임을 보여주는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문화원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된 또 하나가 구태의연한 운영이다. 문화단체는 사업으로 운영상을 보여준다. 문화원은 다른 문화단체들이 새로운 시대와 조류에 부응해가며 악전고투할 때 이전에 해왔던 사업만을 관행적으로 되풀이하며 제자리를 고수해왔다.
도내 14개 시,군 문화원이 제출한 '2001-2002년 사업실적'을 보면 문화원의 사업은 향토사료 조사, 어린이 글짓기 등 문화행사, 문화강좌 혹은 문화학교, 문화답사 등 기타사업 등으로 분류된다. 몇몇 선도적 사업상을 보인 문화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문화원은 신규사업을 발굴하거나 기존사업의 개선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향토사료 조사에 의한 성과물 역시 이전에 나왔던 성과물의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어 굳이 이런 자료를 다시 발행해야할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성과물의 내용을 펼쳐보면 몇몇 인사들이 반복적으로 문화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화원 조직을 장악한 일부 인사가 문화원 사업에 독점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사업비 집행내역을 보면 한결같이 국고 혹은 지방비 보조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사업이 보조의 범위 내에서 이뤄진다는 뜻이다. 이는 지원받지 않는 사업은 추진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문화원은 보조에 익숙해져 지원이 없는 사업에 능동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
얼추 짐작해보면 이러한 요인들이 문화원 개혁을 언급하게 한 이유들이 될 것으로 본다. 문화관광부가 지방문화원 사무국장 공채지침을 전달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는 문화원에 대해 향후 5년간 국고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한 것은 민주사회라면 상당한 파문을 가져올 일이었다. 법적으로 문화원은 민간단체이고 비록 정부지원을 받고 있는 단체라 하더라도 문화관광부가 이처럼 강권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물론 반발이 있었다. 전국의 기존 사무국장단을 중심으로 '지방문화원 바른행정구현 추진위원회(바행추)'가 결성돼 문화원연합회를 비롯한 관련 인터넷 사이트가 뜨거웠었다. 문화관광부의 지침이 지방문화원 정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민간자율기관을 관치하려 하는 사태를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 주장이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다수 여론이 문화원의 개혁을 바라고 있었고 비록 관에 의한 강압적 처사이기는 하나 문화관광부 아니면(경제권을 쥔) 누구도 쉽게 개혁의 칼날을 들이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도 지방분권-문화분권의 정책기조에서 문화원 개혁은 선결과제였다. 정액 보조하는 단체가 개혁되지 않고 문화분권을 어떻게 제대로 달성할 수 있겠는가. 이는 지방문화원을 향한 정부와 문화계의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문화원은 타율에 의해 일부 개혁을 하였고 2004년은 그 결과를 보이는 첫 해이다. 아직도 개혁의 요구를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문화원은 그렇지 않은 문화원과 올해 활동에서 확연한 차별을 보일 것이다. 이제 이미 주어진 개혁의 요구가 어떻게 발현될 것인지는 각각의 문화원에 달려있다. 젊고 전문적인 인력이 투입된 문화원의 약진이 더욱 기대되는 것은 이 부분이다. 차별성, 발전, 비전...이런 요소들을 가시적으로 혹은 단초를 보여줘야 한다. 물론 사무국장 한 명이 오랫동안 경직된 문화원을 단기간에 혁신할 수는 없다. 동지를 규합하고, 이견을 가진 세력을 설득하고,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하는 것들은 이제 문화원 사묵국장의 필수 덕목으로 주어진 셈이다.
마지막으로 '문화원 활동, 새롭게 가다듬어야' 제하의 글을 발표(2002)한 이흥재 박사(한국문화정보센터소장)가 문화원이 문화정책의 실질적 파트너로 나서야 한다고 하면서 풀어낸 조언을 첨언한다.
「문화를 매개로 모든 사람을 엮어줄 수 있는 곳이고 보면 문화원은 지금보다 더 새로운 역할을 스스로 만들어 프로그램을 보여주어야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를 위한 문화공간으로서 지역문화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은 공공과 민간의 접경에 서 있는 문화원의 몫이다....자주적인 프로그램 기획과정에서부터 주민들이 소속감을 가지고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 시민사회에 걸맞는 문화원으로 남을 것이다. 문화원 활동의 최종완결은 자주적인 프로그램 개발에 의한 자율적 운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