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 | [저널초점]
향토문화의 선구자에서 개혁의 대상으로
글 최정학 문화저널 기자(2004-03-03 19:02:40)
향토문화의 선구자에서 개혁의 대상으로
문화원의 역사와 기능
1946년, 강화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원이 생긴지 약 반세기가 지났다. 지난 반세기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문화원은 수많은 내·외적 부침을 겪으면서 향토사 보존과 지방문화운동을 전개해왔다. 하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원이 다시금 흔들리고 있다. 외적으로는 각종 예술단체와 사회단체, 문화의 집 등 지역문화에 관심을 가진 다양한 집단이 생겨나면서 지방문화의 환경과 판도가 다양해지고 있고, 내적으로는 정부의 사무국장 교체 요구를 둘러싼 내부개혁 진통에 휩쓸리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부른 문화원
우리민족의 문화는 36년 간의 일제 지배와 6·25전쟁으로 처참해질 대로 처참해져 있었다. 이때, 거의 소멸되다 시피한 민족문화를 바로 세우려는 문화의식이 태동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기운은 1946년부터 1962년까지 전국 각지에 문화관·문화원·공보원 등의 명칭으로 78개의 자생적인 사설 민간문화기관들을 만드는 성과를 가져왔고, 이것이 현재 지방문화원의 모태가 된다. 김병학 전북문화원연합회 회장은 "문화원은 처음 자발적인 문인동호회 형태로 출발해 시 낭송·수필 문학집·동인지 발표 등의 행사를 하며 거의 황폐화된 지방문화를 가꾸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설명한다. 문화원은 이 같은 활동과 함께 al alrnr 미 미국 공보원의 기자재를 지원 받아 국가시책을 홍보하는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증설되는 전국의 문화원을 관리·지도할 창구가 필요했으며, 문화원은 문화원대로 대 정부 창구의 단일화와 문화원 상호간의 협조와 유대강화의 필요성이 재기되었다. 1962년, 마침내 공보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 '전국에 설립된 문화원의 건전한 운영과 사업을 지도·육성하고 민족문화의 발전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하는 사단법인 한국문화원연합회가 공식 출범한다. 이때부터 전국의 문화원은 문화원 연합회를 통하여 약간의 국고보조금을 제공받고 정부 재산을 무상으로 빌려 쓸 수 있게 되었다. 명실공히 문화원이 국가차원에서 문화공보부의 파트너로 인정받게된 것이다.
문화원은 관변단체?
1965년에는 '비영리법인이 지역사회의 문화계발을 위하여 행하는 지역문화 사업을 보호·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방문화사업조성법'이 제정·시행된다. 이 시행령에 따라 지방문화원은 각각 독립된 법인체로써의 법적 근거를 갖게 되고, 사업부문에 있어서도 향토문화 사업에 주력하게 되면서 현재의 문화원 형태를 갖추게 된다.
'지방문화사업조성법'으로 문화원은 정부라는 막강한 후원자를 얻게됐지만, 잃은 것도 많았다. 문치상 전주문화원 이사는 "문화원은 정부의 그늘아래 놓이면서 여느 문화단체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다보니 정부시책을 홍보는 '관변단체'의 성격을 띠게 된 것도 사실이다"라며 "이런 '관변단체'적 성격이 아직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는 한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1994년도를 계기로 지방문화원은 일대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동안 지방문화원과 연합회의 활동 근거가 되어왔던 '지방문화사업조성법'이 폐지되고, '지방문화원을 건전하게 육성·발전시킴으로써 균형 있는 지방문화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지방문화원진흥법'이 발효된 것이다. 지방문화원의 사업과 기능 면에 있어서는 기존 '지방문화사업조성법'과 큰 차이가 없는 법이었지만, 지방문화원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이에 따라 지방문화원은 법적 근거를 갖고 운영할 수 있게 되었고, 국가에서 지속적인 보조금을 지원 받아 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지방문화사업조성법'이 시행된 1965년도 당시까지 102개였던 지방문화원의 수는 그 뒤 1972년에는 132개, 1992년에는 176개로 증가되어 오다가, 현재는 전국에 215개 지방문화원이 설치·운영되고 있다. 전라북도에도 현재 14개의 문화원이 운영되고 있다.
향토문화의 선구자
현재 지방문화원이 하는 향토문화 사업은 1965년 발효된 '지방문화사업조성법'에서 유래된다. 이 법은 문화원이 '지역고유문화의 계발·보급·보존·전승 및 선양'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원이 본격적으로 향토사 연구의 성과를 내게 된 것은 1995년 발효된 '지방문화원진흥법' 이후다. "90년도에 문화부가 발족하면서 지역문화의 중요성이 제기되었고, 문화원이 여기에 일정한 역할을 하도록 하려는 정책방향이 설정 된 것 같다"는 것이 박인배 본부민예총 기획실장의 설명이다.
어째됐건, 지방문화원은 지금껏 향토문화사업에 있어서는 거의 독보적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국가에서 지속적인 보조금을 지원 받아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지난 90년도부터는 연합회 차원에서 향토문화자원의 조사·정리·발간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국 16개 시·도 및 232개 기초자치단체 문화자원을 간략하게 정리한『한국의 문화자원』과 이를 토대로 발간한 『한국의 향토문화자원』, 연합회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공동으로 편찬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편찬을 위한 기초조사 자료』를 발행하는 성과를 낳았다.
전북지역 지방문화원들도 향토문화 자원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해 오고 있다. 지난 2002년 남원문화원은 '남원의 마을조사'·'토성복원 시민운동'·'선진문화유적비교답사'·'용성지 속지번역' 등의 사업을 했고, 완주문화원은 '완주 문화재 화보 해설', 무주문화원은 '반딧골 문예지'와 '향토지' 발간, 순창문화원은 '향토교본 및 순창의 전설'을 발간하는 성과를 남겼다.
지방문화원은 지역문화의 발굴과 보급, 그리고 사회교육 사업에도 힘써왔다. 그동안 각 지방에 산재한 지역문화행사를 개최하여 전통문화를 알리고 보급하는데 앞장서 왔던 것이다. 문화원은 이를 위해 각 지방문화원마다 백일장, 서예대회, 사생대회 등을 열어왔다. 하지만, 이런 행사들에 대한 지적도 제기되어 왔다. 지방문화원이 주관하는 지역문화행사가 지역적 색채가 없는 획일적인 프로그램들로 채워져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전북지역 지방문화원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군산의 옛 모습 사진첩 제작'이나 '반딧불 행사' 같은 지역적 색채를 가미하기 위한 흔적들이 엿보이는 행사들이 없지는 않지만, 거의 대부분의 문화행사가 글짓기나 서예대회, 민속경연대회 등으로 획일적이어서 각 문화원간의 차별화를 엿보기는 힘든 실정이다.
문화원은 사회교육 활동의 일환으로 심포지엄이나 국악공연·영화상영·유적유물회원사진전 등 각종 공연 및 전시사업과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서예나 한국화·한문·농악 등의 강좌를 펼치는 문화학교를 운영해 왔다. 하지만 중소도시와 농어촌에 불어닥친 도시화와 현대화 바람은 우리지역 지방문화원의 사업을 축소시키고 있다. 우리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김병학 전북문화원 연합회 회장은 "도시문화원은 사람이 많아 활동이 활발한 반면, 진정 활발한 활동이 필요한 소규모 도시나 시골 문화원은 참여할 지역민이 없어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사면초가에 빠진 문화원
문화원이 설립 된지 40여 년, 문화원은 그동안 그 어떤 문화단체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정부보조금을 받아 지방의 향토사료를 수집 보존하고 지역고유문화를 계발 전승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단체는 문화원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면서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각 종 문화예술단체와 사회단체, 향토문화연구 모임, 답사기행집단, 문화의 집, 각 대학의 사회교육원, 자치단체의 문화예술과 등 지역문화에 관심을 가진 다양한 집단이 구성되고 출범하면서 지방문화의 판도가 달라지고 있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이들 단체의 활동이 그동안 지방문화원이 담당해 왔던 각종 사업과 부분적으로 겹치게 됨으로써, 지방문화원의 활동이 자칫 '사면초가'에 직면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특히, 현실화되고 있는 지방자치제도와 지방문화분권은 그동안 지방문화원이 독점적으로 누려온 정부의 보조금마저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지방문화원의 '폐쇄적 운영'을 둘러싸고 정부와 마찰도 빚고 있다. 그동안 문화원의 정체 요인으로 지적되어온 것 가운데 하나가 '폐쇄적 운영'이었다. 때문에 초기문화원은 지역유지들의 '명예의 전당'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폐쇄적 관행'이 현재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방문화원의 원장은 대개 문화적 역량을 갖춘 사람보다는 그 지역의 유지가 맡는 경우가 많았다. 70년대 문화원이 조직화되고 사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정부의 보조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사비를 털어 문화원을 꾸려나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문치상 전주문화원 이사의 설명이다. 그는 여기에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문화원이 유지될 수 있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살아 남기 위해서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젊은 운영주체를 영입해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마침 정부는 '사무국장 공개채용 방식'라는 개혁안을 들고 나왔고, 이 개혁안을 따르지 않는 문화원에 대해서는 향후 5년 간 국고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배수진까지 쳤다. 전라북도는 작년 한해, 정부의 개혁안에 따라 전주문화원을 비롯해 완주, 진안, 무주, 고창, 부안문화원이 사무국장을 교체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개혁안이 과연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아직 미지수다. 개혁이 내부의 의지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정부의 개혁안에는 '사무국장 공개채용 방식'이외에는 그 어떤 구체적인 방안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한편에서는 구체적인 방안 없이 문화원 업무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무국장만 젊은 사람으로 교체한다고 내부개혁바람이 일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존재한다. 사무국장 교체로 전문인력을 통한 문화원 활성화를 기대하지만, 젊은 사무국장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문화원 내부의 기득권을 견제해 나가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결국 해결의 실마리는 문화원 스스로가 갖고 있다. 문화원 내부의 개혁의지가 아니고서는 진정한 개혁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하지만 문화원이 지금 이 개혁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자율·참여·분권'을 기본방향으로 흘러가는 문화정책 속에서 스스로 사면초가의 형국에 빠지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