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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8 | [문화비평]
진짜 그들이 알아야 할 일
이종민 (2003-04-07 10:44:57)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문화가 돈이 된다는 것을. 산업이 되고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 외치며 문화부를 문화관광부로 개명한 것이랍니다. 그 산하에 체육부문을 포함시킨 것은 두 가지 잘 나가는 '상품'의 결합을 통해 경제적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입니다. 그들은 대규모 문화행사가 체육관에서 치러지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예측이 적중했음을 반겼습니다. 얼마 전 세계적인 성악가 세 명의 초청공연장이 올림픽 주경기장이었다는 사실에는 뿌듯한 자부심마저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문화를 내세워야만 뜰 수 있다는 것을. 밀실 공천에 뒷거래의 풍문을 잠재우기 위해서도 문화라는 그럴듯한 치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치꾼으로 내몰리는 경우에는 더욱더 이 문화라는 허울에 집착했습니다. 하여 그들은 직을 걸고 '문화회관'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덮을 허울이 많을수록 더욱 크게, 크게 짓자고 야단을 떨었습니다. 운영비나 운영방안에 대한 구체적 검토 없이 건물만 크게 올리는 것이 오히려 문화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말 그대로 푸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직과 관계없는 사람들의 한가로운 '타령'일뿐이었습니다. 소중한 그들의 직에 비하면 실로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돈이 되고 뜨게 해주는 문화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국방비의 몇 십분의 일도 안 되는 예산으로는 '문화 대통령'을 표방하기도 낯간지러운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정부예산 '1%이상' 확보를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공약이 빌 공자 공약(空約)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실지로 그들은 감히 그 엄청난 일을 성사시켰습니다. 전투기 몇 대 값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그리고 밖에 나가서는 밝히기도 창피한 비율이지만, 그 장한 1%를 넘긴 것입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기왕 문화로 표를 모으기로 한 이상 표가 나올만한 모든 곳에 적절하게 분산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여럿이 한꺼번에 뜨기 위해서도 서울에만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지역문화의 해'를 표방하고 나섰습니다. 지방자치의 시대라는 흐름과도 얼추 걸맞아 보이는 것도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들 문화사업의 효율 극대화를 위해서도 '촌 것들'의 교화가 시급하다는 것을. '지역문화'라 해서 지역인들에게 맡겨놓았다가는 어떤 낭패를 당할지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기왕의 지역문화나 이를 가꾸어온 일꾼들은 애당초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그 주변에서 노닐고 있는 몇몇 싹수있는, 말하자면 표 모으는 데 도움이 될만한 '문화꾼'들을 조직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호텔이나 콘도에 이들을 모아놓고 '무슨 무슨 세미나' 혹은 '워크셥'을 베풀었습니다. 물론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저들의 발언 기회는 최대한 억제시켰습니다. 문화를 모르는 '촌 것들'이 위대한 '문화사업'의 속뜻을 모르고 엉뚱한 제안을 하고 나오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그들을 자극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알게 되었습니다. 문화가 돈 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진짜 돈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의 긴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정치 십년, 교육 백년, 문화 천년 어쩌고' 하는 뚱딴지같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막연하게나마 깨치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알게 되었습니다. 대규모 문화회관 짓는 것만으로는 표 얻기가 여의치 않다는 것을. 오히려 그들의 정치적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것을. 대규모 하드웨어의 효력이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소프트웨어 구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대규모 건축물에 소요되는 막대한 운영예산이 다른 문화 관련 예산에 악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문화예술인들에게 비판거리만 제공하고 만 꼴이 된 것입니다. 더불어 그들은 알게 되었습니다. 문화인들은 굼뜬 속성을. 예산 올려준다고, 문화회관 지어준다고, '지역문화의 해'를 선포한다고 금자기들 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 굼뜬 줄만 알았던 그들이 자기들 정치적 속셈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어 녹녹하지 않다는 것을 깜냥에는 많은 투자를 하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문화정책에 일대 변화를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아니 옛날로 다시 돌아가기로 한 것입니다. '문화 대통령' '문화 예산 1% 이상 확보' '지역문화의 해' 등이 선거판 구호였을 뿐 문화에 무관심하기는 예전과 마찬가지임을 이제 공공연히 인정하고 나선 것입니다.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문화회관의 처리가 급선무였습니다. 치적용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직접운영을 고집했을 터이지만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된 이상 하루빨리 손을 털어 버리는 것이 상책이라 여긴 것입니다. 그들의 손빠른 조처는 정부예산 편성에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02년도 문화 관련 예산, 특히 지역문화 관련 예산은 예외 없이 전액 혹은 대폭 삭감대상으로 선정해 놓았습니다. 주관 부처인 문화관광부가 체면치레 용 예산안을 마련하면 기획예산처와 국회에서 대폭 삭감하기로 이미 '작전'을 세워놓은 모양입니다. 아아 그러나, 진정 그들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문화가 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문화관광사업의 전망도 양양하다는 것을. 당장의 효과에 연연하지만 않는다면 길게 보아 문화정책이 표 모으는 데에도 상당한 실효를 거두리라는 것을. 몇 년 해보고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정책이라는 것을. 아아, 진짜 그들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문화가 우리들 삶의 텃밭이라는 것을. 그 텃밭을 윤택하게 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정책입안의 고려대상임을. 문화시대의 참다운 뜻은 문화가 돈이 될 수 있는 시대라기보다는, 문화가 공기요 물이요 햇볕과 같이 우리들 구체적인 삶에 귀중한 요소로 대접받는 시대라는 데 있다는 것을. 이런 대세를 거슬러서는 뜰 수도, 표를 모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아아 진정 그들이 알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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